[Opinion] 한설야의 '대륙'과 만주 [문학]

글 입력 2020.09.09 18: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만주 사변 직후를 배경으로 한 한설야의 『대륙』은 제목처럼 대륙, 다시 말해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 조선인 작가가, 일본어로 만주를 배경으로 썼다는 사실도 흥미롭고, 중심인물에 조선 사람이 거의 없이 일본인과 만주인이 배치된 점도 흥미롭다.

 

특히 조선 사람들은 거의 배경으로만 등장한다. 한설야가 『대륙』을 발표하는 것과 거의 동시기 만주 관련 소설들의 주인공들이 오로지 만주 대지에서 개척과 정착을 위해 고투하는 조선농민이었음을 감안할 때 한설야의 이런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무관심은 매우 이례적이고 흥미로운 일이다.

 

‘조선 농민은 황량한 만주의 처녀지를 개척한 은인’이지만 작품 속에서 그들은 어떤 협상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철저히 소외된다. 이는 아마도 당시 조선인이 처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이요, 작가가 애써 조선인 인물을 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대륙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1) 새롭게 개발되고 안정되고 있는 만주와 2) 만주 개발을 뒷받침하는 이념에 대한 약간의 동조과 경계심이기 때문이다.

 

 

55044133_22e014255f_c.jpg

 

 

만주국은 1932년 세워졌고 『대륙』은 1939년에 창작되었다. 만주 이주에 관한 긍정적인 글이 쏟아져 나올 시기에 작가가 만주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시대적 배경을 만주 정착 초기로 소급한 것은 의도가 분명하다.

 

마냥 대륙 이주를 낙관적으로 보며 현상(現狀)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짚어냄으로써 그 시작에 놓여 있던 사상은 어떠하였고 그 결과는 어떠한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주인공 하야시와 히로시가 만주어를 배우려 노력하면서도 비적과 마적에 대한 토벌대적 태도를 지니는 것을 해석할 수 있다.

 

만주어를 배워 만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만주와 만주인들을 단순히 2등 시민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만주와 대륙은 꽤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조마려와 조노인은 만주에서 나고 자랐고, 그들이 지닌 토착 세력으로서의 힘은 일본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작가는 대륙을 일종의 자기 발견의 가능성을 지닌 공간으로 본다. 유키코가 단적인 예시인데, 분명한 변화를 보여준 유키코가 아니더라도 히로시나 하야시의 말을 보면 대륙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고 지금 자신이 하는 생각도 대륙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에게서 ‘대륙을 비추는 광명을 발견’한다. 대륙에 와서 보고 겪은 일들로 자신들은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계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름다운 선순환이다. 더 나아가서 ‘전사자의 묘지’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삶은 죽음에서, 빛은 어둠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어떠한 결과든 희생은 필연적이며 그 희생에 멈추지 않고, 그 희생을 딛고 일어나 나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그 기저에 깔린 원리로는 사랑이 제시되고 있다.

 

 
“히로시는 사랑을 위해서 싸우고 또 민족적 편견과 맞서 투쟁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대룩에 대한 큰 애착 속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키우려고 했고 이번에는 그 사랑 때문에 대륙에 대한 애착의 밀도가 커졌던 것이다. ... 그를 못 본 체 하는 것은 단지 사랑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 불기 시작한 가장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죽음을 당할 것 같은 아니 혹은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상은 조마려의 생각이다. 조마려와 히로시의 사랑은 민족을 뛰어넘은 어떤 것이며 그 사랑은 대륙에서 싹을 틔우던 화합의 징후이다. 사랑과 화합은 함께 성장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둘의 사랑을 지키는 것은 민족 간의 차별 없는 어울림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8764293219_b70e99a34a_c.jpg

 

 

하지만,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조마려와 조노인은 예외적 존재들이다. ‘만주인인 조마려와 조노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만주인이지만 조마려와 조노인이기에’ 인정받고 화합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만주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 화합을 거스르는 자들은 시민으로 보지 않는다. 사라져야 할 ‘예외’들인 것이다. 포용하지 않고 없애기를 선택한다. 만주국의 기치였던 오족협화가 모든 만주인에게 적용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고 속 좁은 가치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평화와 화합의 땅이자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라고만 볼 수 없다.

 

이때 사라진 조선인의 존재감은 어떤 의미인가? 조선인 인물은 다른 등장인물에게 감정적인 거부감을 줄 수 있으며, 일본인과 구별되는 민족으로 만주인들이 제시되었으므로 그 역할을 맡을 필요가 없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조마려와 조노인도 다른 만주인의 입장에서는 일제의 앞잡이로 보였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토착민들에게 일본의 2등 시민이자 일본과의 모종의 관련이 있을 법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만주에서 조선인임을 내세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임을 내세우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만주는 민족적 수난과 저항의 역사만을 보존한 신성한 공간도, 친일의 오점을 남기기만 한 공간도 아닌, 말 그대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기억과 역사가 얽혀 있는 문제적 공간으로 그려진다.

 

 

 

네임 태그 이승희.jpg

 


참고문헌

손유경, 「만주 개척 서사에 나타난 애도의 정치학」, 『현대소설연구』 제 42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09, 191-227쪽.

이경재, 「한설야와 만주」, 『어문연구』 44권 2호, 한국어문교육학회, 2016, 81-107쪽.

이해영, 「대륙의 주인은 누구인가?-한설야의 대륙에 나타난 현실인식」, 『현대문학의 연구』 62권, 한국문학연구학회, 2017, 187-218쪽.

한설야, 「대륙」, 『식민주의와 비협력의 저항』, 역락, 2003.

 

 



[이승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63756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