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일하지 않는 마을 [영화]

<안경>(2007)이 보여주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글 입력 2020.09.0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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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것을 업으로 삼게 되면 그 일이 싫어진다는 말이 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일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으면 미치도록 하기 싫어지듯이, 책임감을 느끼고 ‘일’을 하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다.

 

일하는 현대인들에게 책임을 내던지고 떠나는 여행, 생산의 고통은 없고 소비의 쾌락만 있는 여행은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자 선물이다. 이런 여행과 휴식의 낭만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나 책, 영화는 아주 많다. 현재 방영 중인 tvn <여름방학>도 이에 속한다.

 

이 글에서는 <카모메 식당>의 감독인 오기가미 나오코가 2007년에 제작한 <안경>이 보여주는 ‘아무도 일하지 않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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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여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우리가 영화에 기대하는 많은 것을 덜어낸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다. 휴식을 원하는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인적 드문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떠나 작은 숙소에 머물게 된다.

 

숙소에는 주인인 유지(미츠이시 켄)와 숙소 앞 바닷가에서 빙수를 파는 사쿠라(모타이 마사코), 종종 숙소로 와서 식사하고 가는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가 있다. 이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에는 바닷가에서 체조를 하고, 때가 되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각자의 일을 하다가 다시 모여서 식사를 한다.

 

대체 이 마을에서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냐는 타에코의 질문에 유지는 ‘사색을 한다’고 답한다. 당연한 듯이 함께 식사하자고 권하고 아침에는 직접 깨워주기까지 하는 이들의 호의에 부담을 느낀 타에코는 숙소를 옮기려 하지만, 한없이 느긋한 공기가 감도는 이 마을에는 타에코가 기대했던 관광지나, 편안한 호텔은 없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온 타에코는 점차 이들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사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영화에서 이 작은 민박집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이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사쿠라가매년 봄이면 이 마을로 와서 빙수를 팔다가 봄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이유나, 빙수를 팔기 전에 했던 일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는다. 유지와 하루나도 각각 민박집 사장, 생물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이 마을로 오게 된 계기나 과거의 사연은 알 수 없다.

 

주인공 타에코도 마찬가지다. 한적한 마을로 여행을 올 정도로 휴식이 절실한 직장인(어쩌면 교사)이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자세한 사연은 알지 못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인물의 사연을 여백으로 남겨두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공통점은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 머무른다는 것뿐이다. 사쿠라와 타에코는 한 철만 머무르다 떠나는 외지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묶어주는 것은 ‘매년 봄이면 마을로 돌아온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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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매년 봄이면 마을로 돌아온다’는 문장을 사용했는데, 사실 마을로 ‘돌아온다’는 표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마을에서 봄을 보내고 원래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쿠라는 한 곳에 적을 두지 않는 방랑가일지 몰라도 타에코는 생업이 있고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바닷가 마을과는 상반되는, 북적이는 도시일 그곳에서 타에코는 여느 현대인과 같이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매일 아침 바닷가에서 체조를 하는 어린아이들이 있고, 생물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으니 이 마을에는 분명히 학교와 편의 시설이 있고 노동자가 있을 텐데 영화는 그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다. 타에코가 민박집을 떠나 새로 찾아간 호텔에서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육체노동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때의 ‘일’은 순전히 ‘사색’하는 민박집 사람들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타에코는 온종일 밭일을 해야 한다는 호텔의 규칙을 듣고 경악한 뒤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온다)

 

유일하게 일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인물인 유지와 사쿠라에게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 자체가 없어 보인다. 사람이 많이 오는 것이 싫어서 민박 이름을 아주 작게 써놓는다거나, 빙수값을 물건으로 받는 이들에게는 경제활동을 할 의지도, 그럴 이유도 없는 듯하다. 대체 이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결코 이룰 수 없는 판타지이며,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주인공인 타에코에게 이 마을이 ‘잠깐 머무르는 곳’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일하지 않고 사색하는 삶은 여행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영화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여백으로 남겨놓은 것은 판타지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그 아름다움은 바닷가의 풍경을 통해서 충분히 전달된다. 그러나 체조, 사색, 식사 같은 소소한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과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일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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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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