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 [드라마]

아주 가까운 절망을 그린 드라마, <이어즈&이어즈>
글 입력 2020.09.0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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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재택근무가 당연시되어 ‘출근하기 운동’까지 벌어지는 세상. 드론의 상용화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은행이 파산해 그동안 은행에 맡겨두었던 돈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며, 곳곳에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는 세상. 트럼프가 대선을 위해 중국에 핵을 발사하고, 자극적이고 차별적인 정치인의 발언에 열광하는 세상, 난민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더욱 짙어지며 거의 모든 동식물이 멸종하고 산불, 폭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로 고통받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와 꼭 닮아있지만 사실 이 모든 일들은 가까운 미래를 그린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Years & Years)’ 속 그려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디스토피아

현대의 부정적인 부분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가상사회를 일컫는다. 인간이 꿈꾸는 가장 평화롭고 완벽한 사회를 뜻하는 유토피아와 반대 개념으로, 역-유토피아(Anti-utopia)라고도 한다. [출처_다음백과]

 

 
드라마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장밋빛 미래 대신 회색빛 범벅인 이 작품은 사실상 초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이므로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고 때문에 더 섬찟하다. 2019년, BBC와 HBO가 공동 제작한 이 드라마 속 디스토피아는 이미 소름 끼칠 만큼 하나씩 하나씩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다. 혹시 이 드라마를 토대로 누군가 세상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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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 없는 입담과 날 것 그대로의 행동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는 정치인 '비비언 룩'의 행보를 배경으로 대부분의 사건은 진행된다. IQ 70 이하에게는 투표권을 박탈하자든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든 X도 신경 쓰지 않는다든지 하는 그녀의 발언에 사람들은 통쾌함을 느끼며 그녀를 지지한다.
 
혐오와 차별로 범벅된 비비안 룩의 갖은 정책들은 그런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하나둘씩 차근차근 실현된다. 자신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드라마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로 아주 신랄하게 묘사한다.
 
작품은 이런 비비안 룩의 행보를 3대에 거친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에 버무려 보여준다. 이야기는 3세대를 거친 대가족이 매해 할머니네 집에서 모이며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드라마는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에피소드마다 가족 구성원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그 속에 은행 파산, 일자리 감소, 트랜스 휴먼(인간의 디지털화), 딥페이크, 난민 혐오 문제, 등 각종 사회 문제들을 녹여낸다. 가족 구성원 개인 개인은 각 사회문제의 대표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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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극도로 현실적이고 그렇기에 더 암담한 이야기들을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우리 앞에 펼쳐 보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마치 빙하가 녹는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듯한 경험을 안겨준다. 우리는 모니터 앞에 앉아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세상의 문제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세상을 파괴하는지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한다.
 
“다 너희 잘못이란 사실은 변함없어. 전부 너희다. 은행, 정부, 불경기, 미국, 룩 총리, 잘못된 일은 모두 다 너희 탓이야. 왜냐하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당 탓을 하고,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불평하지, 우린 너무 무기력하고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이야.
 
난 모든 게 잘못되는 걸 봤다. 시작은 슈퍼마켓이었어. 계산대 여자들을 모두 계산기로 바꾸기 시작한 것부터였어. 20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거리 시위는 했니? 탄원서는 썼니? 다른 곳에서 장을 봤니? 아니, 씨근덕대기만 하고 참고 살았어. 이제 계산대 여자들은 다 사라졌다. 우리가 이지경으로 놔둔 거야. 실은 우리도 좋아해. 그 계산대를 좋아하고 원해. 거닐다가 장 볼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되거든. 게다가 계산대 여자와 눈 마주칠 일 없지. 우리보다 적게 버는 여자 말이야.
 
이제 없어졌어. 우리가 없앴고 쫓아낸 거야. 참 잘했지?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마지막 생일파티 날 할머니 '뮤리얼'의 대사는 마치 그동안 모든 문제에 방관하고 있기만 했던 우리들을 훈계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개인 개인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열심히 살아갔어도 공동체 의식이 부재한다면 어떤 비극이 찾아올 수 있는지 날카롭게 통찰하는 대사였다. 작품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찰하게 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또 살게 될 디스토피아에 꼭 맞아야 하는 백신 주사 같은 작품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드라마를 모두 보고 나면 내면에 ‘이디스’의 끊임없는 경고의 메시지가 마음 깊이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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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려워요.
세상은 점점 뜨거워지고
빨라지며 미쳐가는데
우린 멈추지도,
생각하지도,
배우지도 않고
다가올 재앙으로 질주하기만 하죠.
이다음은 뭘까요?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멈추는 날이 오기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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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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