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대안영화를 통해 세상 속 나의 좌표를 찾는 방법 - 제20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우리의 깃발, 창공, 파티
글 입력 2020.08.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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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영화는 이렇게 태어났다



사진_네마프2020 공식포스터.jpg

 

 

‘킬링 타임용 영화’라는 말이 있다. 말그대로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락거리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현대에 와서 영화의 의미가 얼마나 퇴색되었는지 보여준다. 요즘 사회에서 영화를 진지한 자세로 관람하며 영화 속에 담긴 세계를 통해 나 자신이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영화를 소일거리나 오락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며 영화의 의미가 변색되어 가는 과정에서 소위 ‘킬링 타임용 영화’라고 불리우는 다소 저급한 내용을 다루는 영화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시류에 대한 각성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대안 영화이다. 대안 영화는 기존 영화의 한계적 상황을 인식, 자각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상업적으로는 독립 영화의 형태이며 저 예산 실험영화로 대안영화는 제작되어 왔다.

 

즉, 대안 영화는 주류인 대중 영화, 그러니까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영화에 대해 미학적,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영화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작가 개인의 미학적 비전을 담거나,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거나, 형식적으로 반고전적인 시도를 하는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왔고, 또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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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메가박스 홍대점 3관에서 관람했던 한국 구애전 장편: 깃발, 창공, 파티는 “KEC 임단협 8년 연속 평화적 무파업 타결”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에 가려진 KEC 노조 지회의 끊임 없는 싸움을 묵묵히 따라가며 다룬다. KEC 지회의 임원들은 제목 그대로, 때로 창공을 향해 깃발을 들기도 하고, 목소리를 내기도 하며, 시위 공간 한복판에서도 케익 한 판을 두고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2시간 4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영되는 영화가 끝을 보이는 그 순간까지도 싸움을 이어가야 했던 것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노동권을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인권을 찾기 위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영화가 끝나갈 때쯤에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공존하기 위해’ 싸워 왔던 것이다. 나 하나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활동이 아니다. 나 하나 잘살고자 이어온 싸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KEC 지회의 회원들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토론을 하기도 한다. 또 다른 노조 조합과 대치를 하기도 하지만, 어딘지 ‘미운 정’이라는 단어처럼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결국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 KEC 지회 안에서도 공존을 위해 그들은 서로의 의견을 듣고 의견 차를 좁히고 서로를 이해해야 했고, 사측 노조 측과도 결국은 견해와 의견을 나누고 설득을 거쳐야 했고, 나아가서는 사측과도 의견 통합을 이루어야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을 ‘투쟁’이라 했지만, 그것은 ‘전쟁’과 같이 무력을 통해 다른 쪽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전달하고, 다른 측의 의견을 들으며 대화하는, 결국은 어떻게든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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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간 중간 카메라는 화분 위를 줄지어 기어다니는 개미떼, 혹은 짝을 이루어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의 행렬을 포착한다. 이러한 프레임들은 ‘공존’의 의미를 더욱 넓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새들도, 개미들도 공존하고 있다. 우리의 눈에는 단순히 짝을 지어 때를 이루어 다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도 나름의 공동체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룰으로 그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KEC 지회는 작업 방식에 불만을 가진 일개미들, 혹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진 새들의 무리이다. 공동체는 곳곳에 존재하고, 그 안에서의 불화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 자신 또한 수많은 공동체에 속해 있고,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학교의 학생으로서, 학교의 행정 처리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의견을 개진한다. 또한, 학생들 간 일어나는 의견 차이에 있어서도 직간접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투표를 통해 내 의견을 표명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내가 속해 있는 동아리, 대외활동들, 어쩌면 사교 모임에서까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견을 내고,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공존해왔고, 또 그렇게 공존해야 한다.

 

 

 

영화를 통해 나 자신을 관람하다



[크기변환]깃발, 창공, 파티 1.jpg

 

 

사실 나는 영화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찾고 세계 속에서의 나를 인식하려는 거창한 노력을 들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킬링 타임용으로 생각하고 본 영화들이 많았다. 특히 요즘 같이 무더운 시기에 시원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쯤으로 영화관을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이번 대안 영화제를 통해 느낀 점은 영화가 이 세계 속에서 나의 위치를 찾아가는 좌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KEC지회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은 아직 취업조차 하지 않은 나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가다 보니,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편견과 차별로 가득 찬 곳이다. 프리뷰에서 사용했던 표현처럼 정말 ‘혐오의 강’과 같다. 그 안에 몸을 담고 있으면 내가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어떤 차별과 편견들이 나를 향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가 참 많다.

 

이번 영화는 하염없이 강을 따라 떠내려 가고 있던 나에게 현재 나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KEC지회 회원들이 겪은 차별과 편견은 나에게도 향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영화를 통해 나는 KEC지회 회원들의 일상안에 투영된 현재의 나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었고, 그것을 지표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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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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