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은 상처로 성장하지 않는다 [사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글 입력 2020.08.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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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할퀴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무례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이 상처 주기를 의도했던지, 하지 않았던지 간에 상황과 성향에 따라 상처 받는 경우가 꽤 있다. 나는 남들과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던 것 같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나를 해하려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상처투성이였다.

 

최근에 와서야 알아챈 것은 내가 무례한 사람들을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태도로부터 상처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그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들었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나의 부족함을 먼저 인정했던 것 같다.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공격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나의 공격성은 그야말로 0에 수렴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타인의 권리 아닌 권리를 너무 많이 허락해버렸다. 그들의 말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찾아내어 더욱 자신감을 잃어갔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비뚤어지거나, 모자라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폐기 처분하거나, 남들의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에 무방비하게 노출시켜버렸다.
 
필요 이상의 이해였다. 아마 나는 이런 나의 어리석음을 속이기 위해 인간은 상처로 성장한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일각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사람은 상처를 통해 자란다고.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상처로 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상처는 그냥 상처일 뿐이었다. 시간이 덮이면 흉이 지고 마는 상처.
 
나는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황을 살피고 상대와 나의 태도를 복기하며 관계의 습관을 정립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아차 하는 순간이 정말 많다. 상처 받은 마음을 한참이나 곱씹고 나서야, 혹은 많은 시간이 흘러나와 같은 상황에서 건강히 대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내가 나를 방치했음을 알아채는 날이 잦았다.
 
상처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아주 존경받는 성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상처와 흉터는 그냥 그것에 그쳤다. 성장은커녕, 죽은 세포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내 눈을 가리고, 내 걸음을 막았다. 검열이란 그런 것이다. 검열이란 다만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안 되는 이유를 따져 분석하는 일에 가깝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세상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따위는 차고도 넘친다. 이유를 억지로 만들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자꾸 제자리에 머물렀다. 나에겐 안 되는 이유가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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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무례함을 아주 뒤늦게 알아채면 유난히 그 기억이 더 오래간다. 그때 그러지 말걸, 그렇게 넘기지 말걸, 한 마디만 할 걸 하는 후회가 약간은 뒤섞인 모양이다. 가장 오랜 기억은 중학생 때다. 수업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숙제한 교재를 교탁 위에 올려두어야 했었다. 나는 그것을 잊고 있다가 쉬는 시간부터 부랴부랴 시작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숙제를 제출하지 못했다. 내 옆에 앉아 같이 숙제를 하던 친구는 선생님이 오시기 직전에 겨우 제출을 했다. 나는 선생님이 오셨으니 이미 룰을 어겼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너는 너무 미련해.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친구의 말처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멋쩍게 나가 뒤늦게 숙제를 냈더라도 선생님은 나에게 대단한 책임을 묻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고작해야 제출에 늦은 정도의 벌점을 부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탓하여 말할 수는 없다. 어리지만,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던 학생을 존중하거나, 사회생활의 팁을 조금 나눠주면 될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변수를 만든다. 같은 말을 들어도 내가 조금 더 무던한 사람이었다면 몇 년이나 지난 사소한 이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친구와 조금 더 친한 사이였다면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뭐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잘 상처 받는 나와, 조금 덜 친한 친구로 말이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친구가 한 말에 대해 골몰했었다. 내가 정말 미련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미련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바에야 그런 상황을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내게 주어진 마감일은 가능한 한 절대 넘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나를 두고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며 '덜' 미련해졌다고 한들 내가 미련하다는 사실을 귀띔했던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할 일일까? 사례가 조금은 유치해 보일지 몰라도, 대개 비슷한 구조의 상황이 반복된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치밀하고 은밀하게 상처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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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를 지키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도 내 작업물에 대해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평을 듣고 애써 떨쳐내려고만 했지, 내가 상처 받았음을 이해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건 상처가 아니야, 이건 평가일 뿐이야. 내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 일 뿐이야. 내가 더 잘하면 돼.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놀면 뭐하니?>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뮤지의 작업실에 찾아가 곡을 들어보는 장면이었는데 뮤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서로 작업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어요. '별로인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말은 쓰시면 안 돼요.' 그 말을 듣고 이마를 쳤다. 나의 부족함과는 별개로 서로의 작업물에 대한 존중은 지켜져야 했던 것이다. 하나 더 배웠으니 룰을 하나 더 추가한다. 상처되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한 룰이 아닌, 존중받기 위한 룰, 나를 지킬 최소한의 룰을 말이다.
 
인간은, 아니 적어도 나는 상처로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하도록 방치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에 대한 것과 무례함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를 위한 말이라는 사탕발림에 속지 않을 것이다.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자원은 나의 의지와 노력이다. 더 건강하게 자라고 싶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 나의 선택을 가장 강하고 분명하게 지지하는 사람,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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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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