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띠지의 미래 [도서]

글 입력 2020.08.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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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읽은 책들이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 책들의 띠지를 모아둔 사진이다.

 

따로 소장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띠지를 벗겨 책상에 올려놓다보니 어느새 한 곳에 모아졌다. 띠지의 사전적 정의는 '지폐나 서류의 가운데를 둘러 매는 가늘고 긴 종이'다. 즉 책의 하단을 둘러싸고 있는 종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띠지는 책을 읽을 때마다 걸리적거리곤 했다. 작고 가는 띠지의 특성상, 책을 펼칠 때면 붕 뜨거나 흘러내려서 고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몇 번 흘러내리는 거라면 별 상관없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움직임이 느껴지는 게 문제였다. 생각보다 띠지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띠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가 싶어,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띠지의 호감도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대부분은 책을 사면 곧장 빼두거나 버린다의 의견을 갖고 있었고 소수는 책갈피로 쓴다고 했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 찾아보니 2011년 한 출판잡지인 월간 라이브러리&리브로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띠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었다. 7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7%가 띠지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응답했으며, 책 띠지를 어떻게 활용하냐는 질문에는 '즉각 버린다'가 39%를 차지했다. 나와 전문 출판기업의 조사 집단 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과는 완벽하게 상응한 것이다.




가성비 좋은 마케팅 수단


 

독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띠지, 출판사에서는 왜 자꾸 띠지를 두른 책을 만드는 걸까? 그 비밀은 마케팅에 있다. 국내의 대형 서점들 중 하나를 골라 온라인 페이지에 접속한 후 베스트셀러 코너에 들어가보면, 판매량이 높은 책들의 대부분은 띠지를 두르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발표된 ‘국내 북 커버 디자인에서 띠지의 선호도 및 실증연구’(중앙대 김정현·서혜옥)란 논문에 따르면, 그해 10월 교보문고의 소설, 에세이, 인문, 자기계발,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 50위 중 74%가 띠지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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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인 정세랑의 신작, 시선으로부터다. 만약 서점에서 이 책을 마주친다면 사람들은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을 훑고는 파란 바탕에 적혀져있는 저 문구를 볼 것. 띠지에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캐치프레이즈가 담겨있다.

 

독자들은 자연스레 소설 속 내용이 궁금해진다. 20세기의 여성들의 삶과, 나의 가족들중에 이 여성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21세기의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 라는 식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사에 흥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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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를 쓴 정세랑 작가가 추천한 김초엽 작가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이 책의 띠지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유명한 기성작가들의 추천사나 김초엽 작가가 어떤 경력을 갖고 있는지 소개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초엽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인만큼 인지도 높은 작가들의 추천문구를 활용해 홍보하거나 이 작가가 가진 경력을 언급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렇게 출판사는 책의 마케팅 비용을 적게 들여서 높은 홍보 효과를 본다. 책 표지 디자인 자체로는 많은 말을 할 수 없으나, 탈부착이 가능한 작은 띠가 책의 핵심을 짚어주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도 띠지는 고마운 존재이다. 띠지를 사람으로치면 작가의 수상경력, 책의 핵심주제를 프린팅한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광고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띠지는 결코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띠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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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띠지는 딱 포장지와 포장끈 그 이상도 아니다. 띠지가 책을 완성시키는 소재가 된다면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에 부가적으로 붙어있는 종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푸는 순간 종이와 끈이 갖던 심미적 의미가 퇴색되어 쓰레기통으로 가기 일수이다. 매일 생산되는 수많은 책들에게는 여전히 띠지가 달려있을텐데 수많은 띠지들이 독자의 품 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만 제 역할을 하고마는게 안타깝다.

 

띠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볼 때다.

 

사진은 독일의 한 서점이다. 가만보면 띠지가 조금 특이하다. 우리나라 띠지와 비교하면 색감이 화려하지 않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 서점에서는 띠지를 서점 직원들이 직접 만든다고 한다. 직원들이 직접 책을 추천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일종의 후기를 남기는 셈이다. 우리나라 독립서점들도 비슷하다. 직원이 직접 남긴 추천글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손글씨로 적어둔 메모를 보면 그 정성에 마음이 가기도 한다.

 

대형 서점에 유통되는 책들에 일일이 손글씨로 메모를 하는게 무리라면, 띠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건 어떨까. 띠지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책갈피인만큼, 애초에 띠지를 제작할 때 점선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을 접어서 자르면 책갈피가 됩니다'와 같이. 구멍을 뚫어 작은 끈을 동봉해주는 것도 좋다.

 

독자의 품에 안기기 까지의 띠지가 출판사의 편에 서서 자신의 역할을 한다면, 독자의 품에 안긴 뒤에는 독자의 편에서 본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종이와 나무가 낭비되는 일을 줄여 책을 오랫동안 읽고 싶으니 말이다.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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