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정원 -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 [공연예술]

아빠라고 불리는 남자,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
글 입력 2020.08.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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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자유바다 <나의 정원>

 

작. 연출: 정경환

출연: 호민, 구민주, 장민

 

줄거리: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의관으로 군무했던 아빠.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다. 광주에서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아빠의 직업은 의사. 아빠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자기가 만든 정원이라고 생각하며 정을 다한다. 엄마는 꽃, 딸도 꽃. 이 아름답고 소중한 정원을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려는 아빠는 점점 광기를 드러내고 엄마는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빠에 순응한다. 딸은 가정에 대한 불만으로 갈등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엄마에게도 집을 떠나 자유를 찾아 떠나라고 하지만... 

  

 

연극 '나의 정원'은 극단 자유바다 정경환 작. 연출가의 2001년도 작품이다. 올해 8월 제3회 부산 작강연극제를 맞아 다시 펼쳐지는 이 연극은 20년 후 달라진 세상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가.

 

 

 

1. 아빠라고 불리는 남자,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


 

 

아빠라고 불리는 남자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

딸이라고 불리는 여자

남편이라고 불리는 남자

일현이라고 불리는 남자

귀순이라고 불리는 여자

여우라고 불리는 여자

늑대라고 불리는 남자

그냥 여자라고 불리는 여자

여성이라고 불리는 여자

 

당신이라고 불리는 남자

 

세 인물을 대신하는 지칭어들을 읊으며 극은 시작된다. '-라고 불리는'이라는 표현은 아빠, 엄마와 같은 관계적 언어는 그저 기표, 즉 껍데기일 뿐임을 의미한다. 대사에 담긴 진짜와 가짜, 실질과 파생을 끊임없이 추적해야 하는 관객들은 설명을 받아먹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대화와 독백, 내면과 외면, 과거와 현재가 자유롭게 교차되는 본 연극에서 관객은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의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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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2020 작강연극제

 

 

과거 낙태의 경험을 숨기고 살아가는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 그녀는 입대한 애인이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사망하자 뱃속의 아이를 낙태했다. "제가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무서워요..." 여성의 순결을 강요하던 시대에 혼자가 된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낙태를 결심했고 이로써 "구멍"이라고 불리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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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2020 작강연극제

 

 

남자(아빠)는 광주 민주화 항쟁에 투입된 진압군으로서 트라우마 가진 인물이다. 살상과 폭행이 난무하던 당시 시위 현장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지만, 피를 흘리는 시체를 보고 순간 성적인 흥분을 느껴 자위행위를 한다. 극한 절망 속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정욕이 끓어오른 것이다.

 

*

 

(의사인 남편과 구별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성을 붙이겠다) 한 여자 의사는 아내의 낙태수술을 집도하며 다소 괴기한 목소리를 낸다.

 

"항상 고통의 소리는 어쩜 쾌락의 소리와 이리도 같을까?... 극과 극은 만나는 걸까? 그땐 좋았지, 쾌락의 나락, 저 깊숙이 올라오는 환희.. 배를 타고 심장 어디에 자리 잡은 구멍... 그것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을 울리는 나팔소리…!"

 

시위 현장에서 자위를 한 남자의 과거 행적이 연상되는 대사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 태도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아빠를 '나쁜 놈'으로, 그의 행동을 욕망을 참지 못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총성 소리에 귀만 막고 있다가 옆구리가 터진 채 죽어가던 소녀를 발견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그냥 살덩어리, 그저 욕정일 뿐…!' 공포 속에서 회피하고 싶은 하는 내적 심리가 발동하여 '극한 공포'가 '극한 쾌락'의 형태로 전치되어 발현된 행위로 읽을 수 있다. 극에 달하면 반전하게 되는 인간의 역설적인 심리적 메커니즘을 담고 있다.

 

이렇듯 아내와 남편은 성별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구별되는 트라우마를 가지지만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사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극중 연쇄되어 등장하는 자극적인 행위들은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 했던, 국가가 국민을 죽였던 비극이 남긴 상흔이었다. 공포의 극치를 극한 쾌락으로 상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 그는 결국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 꽃과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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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2020 작강연극제

 

 

남자도 한때 자신을 용서한 적이 있었다. 죽으면 받게 될 자신의 죗값은 잠시 접어두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보통의 단란한 가족이었던 이들의 짧은 행복은 한 소풍 날을 기점으로 뒤바뀐다.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기자에게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사의 축하 인터뷰를 요청받게 된다. 거짓으로 뒤범벅된 세상은 무의식에 존재하던 광주사태의 트라우마를 자극했고 그는 분노를 토해낸다. 이 사건 이후 남자는 거짓된 바깥세상과 순결한 가정을 구별된 것으로 규정하고 향기에 집착한다. 하지만 점점 안에서 풍겨져 나오는 악취... 가족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가 된다.

 

아빠의 정원에서 엄마는 꽃이다. 아빠는 순결한 자신의 정원에서 아내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길 원했다. 낙태의 아픔이 있는 엄마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향수라는 거짓을 뒤집어쓴다. 아빠는 거짓된 악취의 근원이 아내라고 주장하며 집에 감금시켰다. 지우지 않고 남겨둔 끔찍한 과거는 언젠가 현재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다.

  

 

아빠: "당신은 꽃이야.. 여기 정원의 여왕 꽃.. 품위를 지켜라!"

엄마: "꽃이지만... 사람이잖아요? 

아빠: "사람이지만.. 여기선 꽃이야... 식물성! 더러운 세상의 벌레로부터 보호받으려면 당신은 꽃으로서 품위만 유지해"

  

 

아빠는 엄마에게 '나의 정원'에서 당신은 사람 이전에 꽃이라고 말하며 철저하게 객체가 되길 요구한다. 가부장제 사회에 여성은 가정에 소속되는 순간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상실하고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 다리 대신 뿌리를 내려 정해진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식물은 말도 없다. 그저 조용히 보기 좋은 자태와 맡기 좋은 향기를 뽐내는 게 전부다.

 

반면 딸은 이렇게 소리친다. "너의 시대의 상처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 나는 나야!!" 기성세대의 폭력과 상처가 대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체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너는 여기 있어, 나는 밖에 벌레들과 놀 테니" 품위 있는 정원의 공주로서 보기 좋은 마네킹이 될 바에는 벌레들과 어울리겠다 선언하는 것이다. 이후 감금 당한 엄마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엄마는 스스로 정원으로 들어감으로써 두 인물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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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2020 작강연극제

   

 

딸: 내가 이 정원에서 뭔가요?

엄마: 물론 꽃입니다!

딸: 꽃이 뭔가요?

엄마: 정원에서의 여왕입니다. 아.. 먼저 여기 엄마 꽃이 있으니까... 공주입니다!

딸: 그럼 아빠는? 왕인가요?

엄마: 왕? 독재자를 두려워하다 독재자를 닮아버린

딸: 벌레를 두려워하다 벌레를 닮아버린

엄마, 딸: 벌레의 왕!

  

 

정원, 꽃, 여왕, 공주, 이 모든 지칭어들은 철저하게 아빠를 중심으로 탄생한 상대적이고 의존적인 언어이다. 다른 가족들이 자신의 정원의 꽃과 같은 부속품이 되길 바랐던 아빠에게 엄마는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여긴 '나'의 정원이야. 나는 꽃이 아니야.

나는 이 정원의 주인이야!"

 

아빠는 결국 정원의 독재자이자, 악취의 근원인 벌레가 되고 정원의 넝쿨로 목을 졸라 스스로 인생을 끊었다. 극 초반에 엄마가 언급한 더러운 정원의 쓰레기는 남편의 시체였다. 이제 그녀도 정원의 주인이 되어 시체에 "안 나가세요?.."라는 대사를 남기고 막이 내린다.

 

 

 

3. '나'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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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2020 작강연극제


 

'나의 정원'은 과거의 명분 없는 학살을 경험한 한 남자가 이후 순결한 가정을 꾸미고자 하지만 개인의 의식 속에 깊게 각인된 폭력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을 파괴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국가가 국민을 죽였다. 무고한 시민들, 노인, 임산부, 학생, 닥치는 대로 총으로 쏴 죽였다. 전체주의 아래 철저하게 무시된 개인, 지울 수 없는 상처는 한 사람의 삶, 한 세대를 파괴시키고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끼친다. 총구멍, 낙태의 구멍... 운명에 의해 만난 깊은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본 연극은 가정의 꽃이 아닌, 개인의 삶에 있어 주체적인 여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시각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성 역할에 대한 논의를 넘어 폭력의 역사 속에서 지켜야 할 인간 '자존의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관계성이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정원의 주인이다.

 

 

"'과거는 잊히지 않고 현재를 가만두지 않았으며 미래마저 파괴한다.' 자기 스스로 유폐시킨 나의 정원은 두 사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정화의 공간이어야 했다. 모순과 거짓으로 만든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공간에 칩거하면서 악몽의 기억을 잊으려 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려고 하지만 가족에게까지 죄의식을 전염시켜 가족을 파괴하고 만다. 과거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지워야 하는 것이다."

 

_정경환 연출의 글

 




[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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