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다 - 세상을 바꾸는 시간, 1211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8.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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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든 무거운 글이든지 간에, 어느 상황에서나 글을 쓸 때면 여러 감정이 들곤 한다. 글이 잘 써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페이지에 마우스 커서만 반복적으로 깜빡일 때와 같은 막막한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치 수련과 인고의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신기하게 한 자리에서 묵묵히 글을 쓰고 지우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덧 한편의 글은 완성돼있다.

 

그 순간 저절로 뿌듯하고 수고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아마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하여 뿌듯한 감정과 함께,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글쓰기를 실천했음을 자각하고 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과정과 결과를 모두 고려해보면, 글쓰기는 사람의 감정을 시시각각 들었다 놨다 하는 가장 변덕스러운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글쓰기가 상반되는 양면의 특성을 우리로 하여금 모두 드러내 보여준다면, 우리는 과연 글에 대해 어떤 태도와 시각을 가져야 할까? 사실, 앞선 의문은 글을 쓸 때 매번 마주하게 되는 고민이자 어려움인 것 같다. 이런 일상의 고민이 나를 둘러싸 지배하고 있던 찰나, 세바시 유튜브에 업로드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는 썸네일이 어느 날 나의 눈길을 끌었다.

 

썸네일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꾸준한 글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이슬아 작가의 강연이었기에, 그가 말하는 글의 의미가 내게 큰 영향을 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망설임 없이 영상을 클릭했다.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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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간' 유튜브

 

 

이슬아 작가는 몇 년간 추진해오고 있는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로 구독자들의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작가가 학생 시절,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시작한 유료 메일링 서비스였는데도 여전히 프로젝트는 절찬리에 진행 중이다. 매월 20편의 수필을 창작해내는 작가의 부지런함과 무궁무진한 기획력. 그러한 능력이 발휘될 수 있었던 창작 근원의 아이디어는 어떤 생각을 기반으로 비롯된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단 15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일명 세바시 강연에서 명쾌하게 제시되었다. 세바시 강연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슬아 작가의 강연은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명백한 이유를 그녀만의 문학적 언어로 풀어낸 새로운 근거였다. 그는 글쓰기를 부지런한 사랑이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을 쓴다는 건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새롭고 참신한 시각을 어떻게든 끄집어내야 하기에, 주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지속되지 않으면 바람직한 진전을 기대해보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며 아껴주고 싶은 대상에게 부지런한 마음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듯, 완전한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쉴 새 없는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그런 부지런함을 동반하다 보면, 몸과 마음은 고될지 몰라도 고생한 만큼의 결과물이 눈앞에 거짓 없이 나타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몇 개월간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 내려가며 막막하고 고민했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기에, 작가의 주옥같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공감됐고 위로되기도 했다.

 

 

 

글쓰기에는 마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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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종종 게으른 마음이 들 때를 실감한다고 했다. 게으른 마음의 상태라고 함은 무언가를 대충 보거나 함부로 단정 짓고, 누군가를 빠르게 판단하기도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부지런하게 쓰게 된다. 즉, 무심히 지나쳤던 것도 유심히 다시 보게 되고 사물이나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된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상에서의 찰나를 포착해 자판으로, 또는 손글씨로 새기는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그 안에서 무수한 가치를 찾기도 한다. 하나하나 되새기며 살펴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평범하지만 찬란한 빛깔을 내포한 그 무언가가 일상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리는 삶에서 뭔가를 잠시라도 붙들어보고, 가능하면 복구해보려는 그런 시도는 오직 글쓰기에서만 가능한 듯하다.

 

작가가 제시한 글쓰기의 속성을 들으니, 문득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생각났다. 단순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시의 구절에 나와 있듯,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이 글이 가진 진정한 속성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라져가는 소중함을 오랫동안 자세히 바라보고,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역할의 탁월성을 겸비한 게 바로 글이기에 말이다.

 

 

 

글쓰기는 아쉬움으로부터 시작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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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은 애석하게도, 삶에 있어 순식간에 무수히 지나간다. 우리는 살면서 차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혹은 슬픈 일을 겪거나 흘려보내기 아쉬운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오랫동안 보존하고 싶기에, 그 이야기를 글쓰기로 풀어낸다. 말로 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휘발되어버리지만, 글로 쓰면 이야기의 수명은 길어질뿐더러 오히려 더 큰 파동을 일며 시대를 초월해 앞으로 뻗어나간다.

 

작가가 비교한 말과 글의 속성은, '쓰기'라는 행위에 필연성을 부여해줌으로써 삶의 전반에 걸쳐 마땅히 행해야 할 행위로 인식하게끔 해주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자주 기록하다 보면 무심히 지나칠 법한 장면이나 대화들을 잘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다시금 꺼내 볼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부여받을 수 있다. 그렇게 비로소, 글을 통하여 삶의 전반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날에는 어쩐지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하루가 두 번씩 재생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겪으면서 한 번. 해석하면서 한 번. 이렇게, 인생이 두 배로 풍부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쓰는 행위는 반복성을 겸비한 재생의 속성을 지닌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하나의 글자를 계속해서 곱씹기도 하며 온갖 신경을 다 쏟는다. 일기나 메모 같은 사적인 영역의 글쓰기는 공식적인 글보다는 덜 부담스럽기에 손이 가는 대로 끄적일 수 있다. 하지만 평가를 받거나, 공식화되어 선보여지는 글은 행위의 처음과 끝을 모두 검토하고 점검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자기 전에도, 다른 할 일을 하면서도 글의 소재와 내용은 어느덧 내 머릿속과 행동 전반에 은연중 침투해있다. 다 쓴 글을 읽고 또다시 읽는 순간, 그 내용은 마치 틀어놓은 오디오와 같이 반복적으로 재생돼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그 결과 필자의 감정, 시선, 가치관이 모두 담긴 종합선물세트나 마찬가지인 글,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자까지도 풍부한 가치를 전해 받게 되는 것이다.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 나 자신에게만 갇히지 않는 멋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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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타인'을 위한 글쓰기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 역시 필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자기 자신을 주제로 한 글은 소재성이 금방이라도 고갈될 위험성을 지니며,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로부터 표출된 단편적인 결과물만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로, 즉 문장의 주어를 타인으로 조금씩 늘려나갈 때 우리는 바빠지고 부지런해지며 폭넓은 의미를 발굴해낼 수 있다.

 

타인을 주제로 설정하면, 글감으로 설정한 대상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되돌아보며 유심히 살피게 된다. 관찰력을 가지고 저절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슬아 작가는 이러한 행동을 두고,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즉, 사랑의 과정으로써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무심히 지나치거나 내뱉었던 혼잣말까지도 기억하고 곱씹으려 하는데 그러한 본능으로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글을 꾸준히, 여러 편을 쓰다 보면 '나는~'으로 시작했던 글을 엄마, 할머니, 동생 등 타인이 주가 되는 글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 주어를 옮겨가고 추가해 확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게으른 내 마음에만 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에 부지런히 접속하는 과정이라는 걸 이슬아 작가는 일깨워주었다.


 

"상대의 여러 가지 면을 포착하고 헤아리려는 의지 또한 사랑이다. 시선의 이동과 입체적인 관찰 모두 글쓰기로부터 비롯되는 부지런한 사랑의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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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을 '나'로만 채우지 않는 것. 이것이 부지런한 글쓰기의 세계다. 늘어나는 주어 속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외부의 대상을 초대해서 그들이 주어인 연습을 갈고 닦는 것이 글쓰기다.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내포한 글은 타인의 삶을 확장하고 변화하게끔 해주며 무한한 가치를 찾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한 글을 쓰기 위해, 필자는 입체적인 특성을 지닌 타인들을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들의 모든 면을 설명하고자 자연스레 풍부한 표현을 준비하고 표출하고자 하는 부지런함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강연의 마무리에 제시된, "내 속에 당신의 쉴 곳 있네"라는 문장은 글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를 함축하고 있는 듯했다. 이 문장을 보며 혹여나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진 않았는지, 내 속을 나로만 채우려 하진 않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보게 되었다. 더하여,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 타인을 주어로 한 다양한 글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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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글쓰기를 추구하고 이루어나가려는 태도. 그러한 태도가 우리의 세상을 바꾸는 진정하고 바람직한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15분간의 강연은 시간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해주었고 이슬아 작가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평생의 글쓰기를 해나갈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과 격려의 감정을 건넸으며, 아름답고 쓸모 있는 글쓰기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몸소 느끼도록 해주었다.

 

병과 약을 모두 주는 글쓰기. 오히려 두 가지의 측면이 모두 공존하기에, 글을 쓴다는 건 매력 있고도 특별한 행위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부지런한 사랑'이 우리들의 삶에 꾸준한 원동력을 전해주듯, 그것의 실체인 '글쓰기'는 존재만으로도 삶의 동력이자 이유가 된다. 작가는 바로, 앞서 말한 존재의 가치를 일찍이 깨달아 '일간 이슬아'를 꾸준히 편찬해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존경스럽기도, 닮고 싶기도 했다.

 

하루하루의 평범한 글쓰기가 모여 환산될 수 없는 특별한 의미의 맥락에서,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의 실체를 마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추천한다.

 

 

이슬아 작가의 강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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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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