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잘못했다고? 그럼 욕이나 먹어! [사람]

비판보다 짜릿한 비난의 가벼움
글 입력 2020.08.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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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즐겨보고 있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선 극 중 나문희 여사가 빌린 돈을 모른 척하고 갚지 않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을 본 후 나문희라는 캐릭터에 깊은 실망감이 들었다.

 

자신이 고용한 가정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일을 제대로 부탁하지도 못한 그녀였는데, 고작 돈 문제로 신뢰를 저버리는 단순한 사람이었다니. 아니나 다를까, 해당 장면이 담긴 회차의 댓글 창에는 나문희 캐릭터에 대한 욕설이 가득했다. 정 많은 할머니로 모두가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이렇게 비호감으로 전락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해당 장면에 대한 어느 시청자의 의견에 모두가 무릎을 탁 치며 생각을 바로 고쳤는데, 이는 “나문희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되, 캐릭터 자체를 훼손시켜선 안 된다”라는 말이었다. 가상의 캐릭터이긴 해도, 잘못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람 자체를 비난해버린 우리에게 건네는 충고였다.

 

이처럼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비판이 아닌 비난을 건네는 과오를 종종 저지른다. 그리고 이는 특히 온라인상에서 공인을 상대로 원색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비난에만 집중된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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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방송·연예계에 웃어넘길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일부 아이돌 그룹들 내에서 괴롭힘 폭로가 이어졌으며, 유튜버들의 뒷광고 실태가 밝혀졌다.

 

대중들은 관련 기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고, 해당 논란에 대해 저마다 의견을 표했다. 이중 문제에 대한 따끔한 지적과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일리 있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가 그렇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듯 초점이 빗나갔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질책하기보다 논란의 당사자들을 함부로 비난하기에 바빴다. 한 아이돌 그룹 내부에서 괴롭힘 논란이 일자, 대중들은 과거에 게시된 영상의 일부분만으로 특정 멤버의 인성을 논하고 평소 행실을 추측했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멤버의 외모를 비하했으며 그의 가족에 대한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당사자들 외엔 알 수 없는 그룹 내부의 사정을 자세히 아는 것처럼 억측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폭로한 멤버와 가해자로 지목된 멤버 모두를 무분별하게 괴롭히는 것에 불과했다.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 또한 다를 것 없었다. 구독자들은 논란이 된 유튜버를 향해 'He(She) is Chinese'(상대방 및 중국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이는 희롱)라고 말하는 등 채팅창을 조롱으로 도배했다. 물론 고의로 광고를 숨긴 채 영상을 게시한 유튜버들의 경우, 구독자를 기만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했다.

 

구독자들이 이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들을 인격 모독하고 희롱한 사실을 정당화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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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와 화살 사이


 

아이돌 그룹 내의 괴롭힘 논란이든 뒷광고 논란이든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면, 마땅히 비판받고 잘못을 뉘우쳐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팬과 구독자가 진심 어린 지적이나 꾸짖음을 전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란의 당사자들에 대한 조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무거운 문제들을 가십거리로 치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재밌는 놀잇감으로 여기는 것만큼 경솔한 짓이 또 있을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 말라’라는 말이 있다. 회자되고 있는 명언이지만, 이 말의 뜻이 잘 응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익명만이 가득했던 포털 사이트 속 세상은 비판과 비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경계선이 불분명했던 이 공간은 뒤늦게나마 큰 위험으로 감지돼, 결국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선 넘기의 쾌락을 맛본 이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 잘못된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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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손끝의 신중함은 가벼워졌다. 이때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게 과연 따끔한 주사인지, 날카로운 화살인지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주사를 화살로 바꿔버린다. 화살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더욱 공격적으로 상대를 겨눈다.

 

만약 화살임을 알고 있는데도 이를 상대에게 겨누려 한다면, 언젠가 나 또한 어떤 화살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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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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