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출판저널 통권 518호 - 책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글 입력 2020.08.0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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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책은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선대들의 지식을 모아 후대에 전달하며 더욱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라는 한 장의 종이로, 어느 곳에서는 목판으로, 또 어는 곳에서는 금속활자로, 이후에는 책으로, 그리고 지금 사회에서는 전자 자료로 존재하며 형태에 구애받지는 않으나 책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했으며 책을 보관하는 곳은 국가 차원에서 보호받는 중요한 공간으로 다뤄졌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오래 존재해서 항상 주변에 잇다 보니 익숙해지고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그 중요함이 옅어졌으나 책과 책이 모이는 곳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은 꽤 좋아했다. 중간중간 만화책에 심취해서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들 몰래 만화를 본 기억도 있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 취급받는 개미 기어가는 크기의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있는 책도 즐겨 읽었다. 글로 남겨진 것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이미지를 그리는 일에 흥미가 동하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모르던 지식이나 세계를 이 작은 한 권의 책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매력이 더 컸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책을 사서 모았고 책장에 하나씩 책이 늘어날 때마다 약간의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기에 독서를 꾸준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트인사이트 컬처리스트로 활동하며 책을 읽으면서 전과 비교하면 독서 시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책장에 자리가 없어 곤란한 사태가 도래했다. 지금이야 이처럼 집에 앉아서 편하게 책을 받아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사서 손으로 들고 오는 것이 더 익숙했다.

 

 

문우당서점 현재 매장.jpg


 

문우당 서점처럼 의미 깊은 사연이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지역 서점을 자주 이용했다. 온라인 서점이라는 게 지금처럼 익숙한 개념은 아니었기에 서점이나 도서관에 찾아가서 직접 책을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무거운 팔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더운 여름날에는 피서 개념으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꽤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감성이 담긴 풍경이다.

 

서점 벤치에 앉아 나를 잡아끄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고 괜히 분위기 잡으면서 졸린 눈 붙들고 책 읽는 사람들이나 도서관에서 뭐가 뭔지 도통 모를 도서 목록을 뒤적거리는 일이 귀찮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이 됐다. 집에서 컴퓨터 전원을 켜거나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 어플만 실행해도 다음 날이면 문 앞에 책이 도착해있고 머리 아플 일 없이 컴퓨터에 책 이름만 검색해도 위치를 찾을 수 있는 편리한 사회를 살고 있으나 어째 감성은 죽어버린 기분이다.


문우당 서점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내 고등학교 시절에도 문제다 싶었던 기억이 있다. 교보문고나 알라딘을 비롯한 대형 서점들이 점점 영향력을 넗혀가면서 나도 자연스레 동네 서점보다는 대형 서점을 찾는 일이 많아졌는데 분야의 다양성이나 책 수에서도 격차가 어마어마했던 것은 당연하고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기업 간의 연계를 통한 행사 등 내가 누릴 수 있는 이득이 더 많았으니 발걸음이 향하지 않을 리가 없다.

 

대형 서점도 지점마다 도서 보급의 차이가 있다 보니 사는 지역에 따라 접근성의 차이는 있었지만 온라인 서점의 성장으로 인해서 자연스레 해소됨과 비교하면 지역 서점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서버 구축 및 유지 비용을 지불 할 여력도 없거니와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 두껍지도 않아 출판 산업에서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졌다. 도서정가제를 환영하는 주인분의 입장도 이해가 가면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버릴 수가 없다. 경쟁을 통해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구조 아래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 지난날의 감성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또 다른 변화는 전자책이었다. 읽는 것도 좋고 다양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종이책의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보관에서의 공간 차지와 구매해서 집까지 가져올 때 무게로 인한 불편함이다. 운반 문제는 배송으로 해결하지만 일단 집에 둬야 하니 불가피하게 자리를 차지하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우선 같은 책이 전자책으로도 있는지부터 찾아보게 됐다. 수십 권의 책을 아이패드 하나로 전부 보관할 수 있고 바람에 날린다거나 물에 젖는 것 따위를 걱정할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단순한 소비자인 나로서는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가지는 장점이 더 많지만 출판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단순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종이책을 만들 때는 작가, 디자이너, 출판사, 인쇄 업체, 판매자라는 역할 분담을 통해서 작가가 글을 쓰면 디자이너와 출판사가 전반적인 디자인이나 구성을 다듬고 인쇄 업체에서 책을 찍어낸 뒤에 서점으로 흘러와 나를 비롯한 소비자에게로 책이 전달된다. 하지만 전자책의 경우에는 인쇄 업체라는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이 사라지게 되는데 전자 자료로만 존재하니 굳이 종이로 찍어 낼 필요가 없다. 대형 기업의 경우에는 인쇄에 드는 비용을 홍보나 다른 분야로 돌리면서 또 다른 사업 개발에 사용할 수 있지만 개인 서점의 경우에는 애초에 그 정도의 자본이 없으니 일방적으로 밀리는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오프라인 공간 대신 서버만 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구태여 지역 서점을 방문할 이유가 없어지니 손님은 더욱 대형 온라인 서점으로 몰려가고 지역의 소규모 서점들은 차례 차례 문을 닫는 절차를 밟게 될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이런 경제적인 면을 제외하더라도 전자책의 유행은 나에게 조금 슬픈 미래를 그리게 한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종이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의 소리나 종이의 질감, 책 특유의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들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일도 책을 읽을 때 누릴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기에 이런 재미를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은 달갑지 않다.

 

*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각종 온라인 산업 분야의 성장에 불이 붙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프라인 산업은 점점 쇠락하는 시대의 역풍을 도서 산업 분야도 피하지는 못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을 읽는 시간은 늘었고 나도 책이나 읽어볼까 싶은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면서 도서 소비가 늘어 정기 구독 형태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등장했으나 동네 서점의 풍경은 되레 더 쓸쓸해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들로 꼽히는 의식주도 타격이 큰 마당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지장은 없겠다는 취급 받는 문화 산업은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좀 더 와 닿는다.


사냥으로 고기를 잡던 사회에서 촌락을 꾸리고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키우는 사회로 변헀고, 사람이 직접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대에서 동력기관과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로, 그리고 이제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물리 공간의 제약마저 뛰어넘는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이 모든 변화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다. 종이로 만들어내는 책에서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자료의 형태로 넘어가는 과정도 사회가 변해가는 흐름일 뿐이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에서 만들어진 추억에 담긴 풍경들이 불러일으키는 그 향수가 생각보다 진했나 싶은 것이 이성적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믿고 살아왔는데 그런 모습들을 더는 볼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 조금은 씁쓸해진다.

 

코로나라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문제아가 세상이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부추기고 이제 어디로 갈 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달라져 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한가로운 주말에 따스한 햇볕을 맞으면서 커피 한 잔에 멋들어지게 책 한 권 피고 스르륵 넘기는 분위기 있는 사람이 될 기회를 잡지 못하는 시대로 나아가지는 않았으면 싶다.

 


출판저널 518호 입체표지.jpg

 

 

<출판저널> 통권 518호 (창간33주년호)

 

책문화네트워크(주)

 

224쪽 | 값 24,000원

 

ISSN 1227-1802 | 182*257

 

2020.07.10 발행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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