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4. 장래희망

장래희망이 뭐냐면요
글 입력 2020.08.01 14:1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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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 <장래희망>으로 이어갑니다.

 

*

 

장래희망이란 단어의 풀이는 국어사전에는 장차 하고자 하는 일이나 직업에 대한 희망, 영어사전에는 future hope라고 되어 있다. 이제 이야기 하는 것들은 두 풀이 모두에 해당하나 영어사전 풀이에 더 가깝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뭐가 될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죽을 때까지 뭐가 됐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다.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 나를 처음 만난 어른들은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었다. 엄마 아빠 따라서 간 결혼식에서 뷔페 먹으면서도 그랬고 장례식에서 육개장 먹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교수님이 될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엄마랑 아빠가 내가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 선생님보다 높은 게 교수님이라고 배웠으니까 나는 교수님 할 거라고 했다. "얘 좀 봐라 못 말린다" 하는 문장 속에 느껴지는 자랑스러움이 좋아서 그랬다. 그때 내 장래희망은 아마 엄마 아빠가 웃는 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아라는 게 생기자 지금은 사라진 메신저인 버디버디의 홈페이지에 백문 백답 같은 걸 올려놓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냐며 훗날 밤마다 이불차기 좋은 질문을 해댔다. 그때 내 허영심은 가히 하늘을 찌를 때였는데 그 허영심이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친하게 지내는 반 친구들 8명이 현장학습가는 버스에서 나와 앉고 싶어 했기에 더욱 그랬다.

 

인싸 시절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고 어쨌든 나는 교실 뒷문에 걸려 있는 거울을 하루에 적어도 120번은 봤으며 당시 여학생 최고의 인기 지표인 학교에서 틀어주는 아침 방송의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안경만 쓰면 몰라보게 못생겨 진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이해가 없던 때에 단지 티비에 얼굴만 뽐내면 된다는 생각에 아나운서 오디션에 안경을 벗고 갔으며 티비 화면에 나오는 테스트용 자막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어서 눈만 찌푸리다가 떨어졌다. 내게 남은 건 담당 선생님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본격적으로 소설책을 읽고 외국 영화를 즐겨 보게 됐다. 그때 나는 판타지소설이나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평범하게 지내던 내가 사실은 왕실의 공주이며 그때부터 내 삶이 달라지고 왕자를 만나 어쩌고저쩌고 하는 또는 뱀파이어 남자친구와 늑대인간 남자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주인공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의 남자들은 지나치게 시시해서 그런 욕망은 귀여니와 가그린의 인터넷소설로 달래곤 했다.

 

고등학교 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지만 남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없는 나'이고 싶었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수학을 못해 수학 시간만 되면 골이 잔뜩 나있는, 남자애가 반에 찾으러 왔다가 안경 낀 나를 몰라보고 큰 소리로 뭐야 홍비 없네 하고 간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다. 근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갑자기 장래희망을 쓰라고 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고 해외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엄마와 아빠를 데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고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전부 먹어보고 싶어서 승무원이라고 적었다.


스무 살이 된 뒤로는 내게 뭐가 될 거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뭐냐고 했다. 몇 살이냐고 했다. 학교가 어디냐고 했다. 무슨 과냐고 했다. 지역이 어디냐고 했다. 아무도 내게 꿈이 뭐냐고 묻지 않았다. 이제 내가 직접 해야 했다. 그동안 남이 해준 질문은 남의 시선 속에 살게 했다. 비로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잠재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애썼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편의점, 맥주집, 레스토랑, 영화관, 카페, 옷가게, 국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꼬질꼬질한 돈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재수를 해서 학교를 옮기고 봉사동아리에서 벽화를 그리고 연극동아리에서 연극을 올리고 독서토론동아리에서 토론을 하고 도청 기자단으로 취재를 했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편집해서 올렸다. 그림을 그렸다. 글을 썼다. 시를 썼다. 요가를 했다. 나는 저기요였고 아가씨였고 학생이었고 재수생이었고 직원이었고 선생님이었고 배우였고 기자였고 유튜버였다.

 

이렇게 내가 주체성을 찾고 있을 때, 달콤한 꿈은 너의 것이 아니라는 듯이 사람들은 꿈을 묻는 대신 전공이 뭐냐고 묻고는 그럼 취업 어디로 하냐고 했다. 나는 머뭇거렸다.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될 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떤 나는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고 있고 어떤 나는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있고 어떤 나는 남의 글을 만지고 어떤 나는 작가가 되어 내 글을 만진다. 어떤 나는 인테리어를 하고, 어떤 나는 옷을 만들고, 어떤 나는 요리를 한다. 어떤 나는 경제학자가, 아 이건 아닐 것 같지만.

  

이제는 뭐가 될 거냐고 묻지 않고 차라리 뭐라도 되라고 한다. 나는 눈만 감으면 무엇도 되는데 상상력 없는 사람들이 나의 잠재력을 망치고 한계라는 울타리를 반지름이 아주 작은 원만큼 두른다. 그런데 나는 어떤 무언가도 아닌 내가 되고 싶다. 나를 더 잘 알고 싶다. 오롯이 나이며 털 끝 하나도 거짓 없는 나인데도 모두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직업을 갖고 또 잃더라도 나 자체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현재의 내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바다로 향하고 싶은 물고기가 우물 속에 갇혀 그 벽이 하루하루 더 높게만 쌓이는 것 같아도 부단히 헤엄쳐 물길을 좇아야 겠지만.

 

좋아하는 그림 유튜버인 이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로 태어난 그 누구도 아닌 나로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세상이 파도라고 한다면 나는 항해사로 태어났으니 키를 쥐고 파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그냥 안전하게 배에 타고만 있다면 그건 항해사인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해파리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랬다.

 

*

 

이번 글은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쓰는 글이었습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게 결국 제 꿈인데요.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열심히 진중하게 글을 쓸 것 같습니다.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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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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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지
    • 당신 글 넘 술술 읽히는 것,,, 내용 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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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아
    • 이 글을 읽은 후부터 나한텐 작가님인데요... 에세이집 나오면 사인 받을래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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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남친
    • 진짜 대박 .. 데뷔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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