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프로이트와 루이스, 두 존재의 Everlasting Session - 라스트 세션

글 입력 2020.07.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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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라스트세션_포스터(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 본 글은 연극 <라스트 세션>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는 타인을 배척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어떤 가치들은 화합이 불가능하고, 서로 완전히 대립하여 부딪힌다. 옳다고 믿는 명제에 대한 반론이 들어올 때, 그렇구나 하며 넘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을 부정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때때로 그렇게 타인을 미워했고, 그래서 연극 <라스트 세션>을 앞두고 내 입장을 둘 곳을 놓고 고민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영문과 교수 ‘C.S 루이스’,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두 거장의 만남. 연극은 생각보다 유쾌했고, 즐거웠다. 누구의 입장을 옹호할까 고민하며 들어섰던 것은 완전한 실수였다. 연극의 진행에 따라, 내가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곳에서, 인간 ‘프로이트’와 인간 ‘루이스’를 만났다.
 
 
 
인간으로의 회귀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연극이 진행되며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끝이 없는 논쟁을 한다. 전쟁, 종교, 가족, 섹스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기독교인과 무신론자로서 대립한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루이스'는 성경의 이야기를, '프로이트'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갈등의 고조는 둘 중 한 사람의 승리로 이끌지 않는다. 둘의 논쟁에는 정해진 답이 없고, 답 없는 논쟁을 멈추는 건 어떠한 결론이 아닌 외력에 의해서였다. 신념을 넘어서는 통제 불가능한 외력, 바로 공습 사이렌과 프로이트의 통증이다. 불가항력의 두려움 앞에 그들은 한없이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그들은 확신에 찬 저명한 학자들이지만, 그 강한 신념 너머에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인간 '프로이트'와 인간 '루이스'가 있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루이스'는 공습 사이렌을 들으면 패닉 상태에 빠져 두려움에 떨었고, 구강암으로 고통받는 '프로이트'는 "괴물"이라 부르는 입 안 장치로 인한 아픔을 두려워했다. 통제 불가의 두려움 앞에서 그들은 사상을 뒤로 한 채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논쟁 중 사이렌이 들리거나 통증이 느껴지면, 그들은 대화를 중단하고 "존재" 그 자체로 회귀하여 서로를 의지했다. 뜨거운 논쟁을 벌이던 중임에도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바로 그 전의 갈등과 공격이 무색하게 말이다. 연극 내내 둘은 학자로서 멀어졌다가, 존재로서 가까워졌다.
 
 
 
두 존재의 눈맞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신구(4)(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배척과 화합의 영역에서 서성이던 그들은 마침내 가장 큰 공포를 마주한 후 화합의 기로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사실은 두려웠어요."라는 '루이스'의 고백과 함께 연극은 소강상태에 이른다. 극심한 통증을 '루이스'의 도움으로 이겨낸 '프로이트'와 영국군 전투기로 인해 트라우마의 고통에 시달린 '루이스'는, 완전한 민낯으로 서로를 마주 본다.
 
두려움이 그들을 인간으로 수렴하였다고 해도 서로 눈을 맞추지는 않았던 그들이었으나, 결국 그들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마주 본다. 그들의 논쟁에 답이 없다는 사실 역시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에게 동화되거나, 다른 가치관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그 사상 너머의 서로를 알아보고, 또 다른 인간으로서 공존할 뿐이었다.
 
하지만, 공존 속에는 분명한 화합이 존재했다.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음악조차 멀리하던 '프로이트'는 '루이스'가 떠나간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그의 집을 나서며 '루이스'는 "보험이 있다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다. '프로이트'가 그들의 만남을 은유한 농담을 던진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루이스' 역시도 '프로이트'로 하여금 또 다른 변화를 마주했음을 드러냈다.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던 논쟁에서도 깨진 적 없던 그들의 사상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논쟁은 단단한 서로의 가치관에 작은 흠집을 내었고, 그 흠집을 비집고 들어온 인간 '프로이트'와 인간 '루이스'는 그들 삶에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켰다. 물론 마지막 인사까지도 '루이스'는 "신의 뜻"을 찾고 '프로이트'는 그를 거부하지만, 괜찮았다. 끝끝내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은 채 주고받던 "안녕"은, 그들이 존재로서 눈맞춤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했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신구(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다시, 가치관의 차이는 타인을 배척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어떤 가치는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가치관을 갖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간이며,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연극 내 아주 좋은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가장 두려운 순간 서로에게 의지하였고, 함께 아픔을 나눴다. 가치관을 지켜내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 자체가 가치관의 차이에 의해서였지만, 어쩌면 두 사람이 신념을 놓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그 자리에서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이유로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보듬어주기에 충분하다. 타인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아도, 누구든 존재로서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누구든 자기 자신인 채로 말이다.
 
모두 각자 쌓아온 경험이 다르고, 그로 인해 갖게 된 가치관이나 신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로 인해 선택하는 언어가 달라지고, 말의 근거가 달라진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타인을 배척할 이유는 없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확연히 다른 언어와 근거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이 두려움을 나누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석준,남명렬(3)(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연극 <라스트 세션>은 생각보다 즐겁고 유쾌한 연극이었으며, 동시에 기분 좋은 가치를 전달해주는 연극이었다. 곱씹어볼 만한 대사들과 오랜 잔상이 남는 결말로, 9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들의 "라스트 세션"은 끝났지만, 그 자체로 끝나지 않을 두 존재의 만남과 화합, 그들의 "Everlasting Session"이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들이 마지막쯤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시대를 초월한 최대의 미스테리를 하루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죠."라는 '루이스'의 말에, '프로이트'는 하지만 그렇게 신념을 접어버린다면 그건 더 미친 짓이라 답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공존과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열쇠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밀어내거나, 받아들일 것 없이, 잠시 미뤄두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보기 전 내 입장을 가다듬던 일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나와 그들의 입장 차이 이전에, 나는 그들의 아픔을 보았고, 두려움에 공감했다. 신념과 가치관, 인생에 매우 중요한 것들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을 보고 싶어졌다. 당장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제쳐내면, 눈앞엔 한 인간이 존재하고, 우리의 화합에는 거창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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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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