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는 모두 변화하는 세계에서 공존할 뿐 - 액체 세대

글 입력 2020.07.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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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지성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우뚝 섰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2017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격동의 20세기를 거쳐 '유동하는 세계'라는 이론으로 작금의 시대를 탐구했던 바우만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다. <액체 근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 국내에서 바우만을 접할 수 있는 저작이 이미 많지만, 이번에 출간된 <액체 세대>는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바우만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젊은 세대와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열정적으로 대화하고자 했다. 2017년, 그렇게 노년의 바우만과 서른 두 살의 청년 토마스 레온치니는 60년이라는 나이 차를 넘어 새로운 교류를 시도한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젊은 사람들이 맞이한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진지하고도 사려깊은 태도로 서로를 경청하고 질문하고 바라본다.

 

왜 노년이 되어서 바우만은 청년 세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걸까? 레온치니와 바우만 모두 세대 간 단절이 심한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과연 그게 사실인지 탐구한다. 그 결과 이들이 느낀 건 우리가 얼마나 다르냐 보다는, 노년층과 청년층은 오히려 공통점이 많은 세대라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시기에는 오히려 서로 공통점이 많은 청년층과 노년층의 단절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진짜 절벽은 오히려 중장년층의 대다수가 주장하는 논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청년층과 노년층, 둘 다 우리의 세계에서 명성을 잃었고 따라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먼저 조언을 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1. 우리 몸의 표면에서


 

대담의 서두는 우리의 피부에서 시작한다. 젊은이들의 가장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 문신, 수염, 성형 수술까지. 문신은 최근의 유행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젊은층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바우만과 레온치니는 '액체 세대'를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60-1980년 초반 태어난 엑스(X) 세대를 넘나들면서 사용한다. 중요한건 이 세대가 아직 젊고 세계의 변화를 그대로 흡수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변형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한다.

 

 

"'주어진 것'으로 여겨지던 신체가 근대 이후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바뀌었다는 점이 바로 변화의 요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필요성과 강제성을 기대하거나 인정하게 된 과제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제는 사회가 제공한 모델과 재료를 이용하여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창조적 재생산"이라는 복잡한 작업을 거쳐 개인에 의해 수행되고 있습니다."

 

- p25.

 

 

항상 문신을 하고 싶어하지만 번거로움과 복잡한 의미 부여에 기운이 빠져 정작 실행에 옮기진 않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을 흥미롭게 읽었다. 근대 이후 개인의 자기 표현은 신체에 무언가를 변형,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건, 더 이상 우리가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어떤 '특별함'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아닐까? 그리고 특별하지 않다는 건 이제 '가치가 없다'는 것과 같게 된게 아닌지. 남들의 시선에 포착되고, 더 특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는 게 액체 세대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고 바우만과 레온치니는 분석한다. 이런 사고 방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바로 성형 수술이다.

 

 

"성형 수술이라는 비즈니스와 같은 비즈니스는 없습니다.... 소비사회인 현대 문화에서는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라는 규칙이 지배합니다. 현재 우세한 트렌드에 합류하려 할 때 신체의 외양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뭔가 모순되고 가당치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문제 있음"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가치를 저하하는 행위로 간주되는 경향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인식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굴욕과 아픔을 불러일으킵니다."

 

- p33.

 

 

문신과 성형의 다른 점은, 문신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문신은 아직 개인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 결정되는 사적 선택이다. 반면 성형은 오만군데에서 성형의 필요성을 말한다. '여기다 문신하면 좋겠다'라고 간섭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타인(특히나 여성)의 신체를 보며 조목조목 '어디를 고치면 좋겠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성형은 더 간편해지고, 범람하고, 세분화되어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 해야 하는 일처럼 여성에게 강요된다. 여성의 가치는 사회가 보기에 이상적인 외양을 갖출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남성의 피부 변형이 대개 문신으로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낸다면,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신체 변형 산업인 성형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성형이 사회에 요구에 의한 강제라기보다는 여성이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방법으로 여겨지는 것 역시 액체 세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성형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더 아름다운 내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변할 수 있다'는 넓은 가능성은 젊은층의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자유로움은 바우만의 말대로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라는 암묵적 강요로 변질되기도 했다. 문신, 성형 수술, 우리 몸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선택이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도 한 것이다.


 

 

2. 불안과 흔들리는 사람들


 

신체를 넘어서 둘의 대화는 젊은 세대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 웹과 소셜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 이 단원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웹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에 가깝다는 레온치니의 말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웹이 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에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뉴스와 이미지의 유통으로 "잠에 취한 방관자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상황은 분명 견고한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웹상에서 우리가 개인 영역을 만드는 방식, 즉 타인과의 접속과 차단을 통해 관계 형성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네티즌의 활동은 민주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소셜 네트워크상의 개인 프로필을 통해 우리는 모두 전체주의적 환상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모른다는 이유로 접근을 금지하고 "접속" 요청을 배제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까요."

 

- p69.

 

 

SNS와 인터넷은 더 이상 환상을 품고 있을 수 없을만큼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다. SNS 속에서 어떤 네트워크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고, 새로운 만남, 연애, 사랑의 많은 부분이 이 익명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이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 사회에 원활히 적응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현실의 관계보다 소셜 네트워크상의 관계 유지가 개인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 이 사회 흐름을 바우만과 레온치니는 씁쓸하게 통찰한다.

 

 

"유동하는 근대에서 불안과 우울증이 눈에 띄게 증가한 반면 비가시성에 대한 경험을 점차 약화되어 사라질 위기입니다. 그러나 유동하는 근대의 전형적 고통인 불안과 우울이라는 두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바로 이 '비가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가시성이 요즘 현대사회에서 최악의 "질병"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네트워크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의 사회적 신분이 상승할 기회는 그만큼 적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섹스와 사랑의 관계가 요즘처럼 빈약했던 적이 없습니다."

 

- p79.

 

 

항상 SNS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만 번거로움과 복잡한 감정 소모에 기운이 빠져 매번 포기하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에 힘 빠진 위로를 받았다. 이제 이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많은 학자들이 이 세대의 피상적 관계 맺기, 익명성과 범람하는 파편적 정보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이 않다. 아마도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 속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리라.

 

소셜 네트워크와 익명의 웹상으로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는 세상은 아직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다. 액체 세대, 그리고 계속 태어나는 새로운 아이들이 그 최전선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며 살아보고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 이 흐름에 대안은 있을까? 노년의 바우만은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자기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 우리의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3. 이 시대의 자유와 안전



 

"더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젊은이들 대부분이 실제로 이런 불안한 상황 자체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입 밖에 내진 않지만 말이죠. 이들이 현대의 유연성, 영구적인 잠정 상태, 혹은 최대한의 협상 가능성 등 현재 상황 자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적절하다고(물론 이상적이지는 않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대안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동안 수 차례에 걸쳐, 나는 좀 더 보람 있고 존엄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가치를 강조해 왔는데, 바로 자유와 안전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치를 동시에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화해시키기란 매우 힘듭니다. 개인의 자유를 축소하지 않고 안전을 증대할 수 없으며, 개인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양보하지 않고 자유를 증대할 수도 없으니까요."

 

- p80.

 

 

바우만의 이 말은, 내게 유례없는 기술의 발전 앞에서 젊은 세대는 자신의 자유와 안전을 추구하는 기술을 새로 익혀야 한다는 것처럼 읽혔다. 어디가 균형점인지는 알 수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에서 젊은 층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대담집은 우리가 유동하는 세계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101쪽의 응축된 글로 알려준다.

 

토마츠 레온치니의 마지막 말처럼, 바우만은 세대 간 투쟁이 확산된다는 건 단순한 환영이며, 동시대에 공존하는 우리에게 세대를 넘은 서로의 시각이 무엇보다도 힘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그의 통찰과 헌신은 대안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오늘날 액체 세대는 가장 좋은 경우에도 그런 수단을 가지지 못한다. 약간의 자원과 경쟁력, 능력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무의식 차원에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라고 말이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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