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는 시가 필요하다 [문화 전반]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 생기는 순간, 시를 사랑하게 된다
글 입력 2020.07.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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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었다. 단 두 문장으로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을 창을 통해 바라보며 오랜만에 시집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제니 시인의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 시집은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 중에서 가장 많이 펼쳐졌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검정 에코백에 넣어 어디든 가지고 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읽었다. 하루는 소리 내어 읽었고, 또 하루는 직접 펜을 들고 필사하며 곱씹었다.

 

같은 시를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이 시집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 쓴 일기에도 적혀있다. '이제니 시인의 시를 언제쯤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소화하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애를 쓰며 시를 읽었던 것일까? 왜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사실 읽히지 않는 것은 쉽게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니 그저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얼마든지 지나쳐도 좋다. 내게 날아와 박히지 못한 글은 다시 어딘가로 날아가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박힐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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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내가 이 시집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 두 문장' 때문이었다. 시를 읽고 머릿속에 또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지라도 문맥과는 상관없이 단 몇 줄의 문장이 마음을 후벼 팠다. 그 문장들을 일기장에 옮겨 적으면서 나는 내 혼란한 감정을 타인의 언어를 빌려 곱게 정돈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풀어내는 것을 보며 시인들의 결을 닮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읽고 읽었다. 언제라도 시인들은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나를 꿰뚫고 있었다.

 

내가 처음 시에 눈을 뜬 것은, 그러니까 학교에서 시험을 위한 지문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내게 아주 사랑하는 것이 생긴 이후의 일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지러운 이 세상 속에서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 생기는 순간, 아마 누구라도 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적 허용을 이해되지 않는 모든 찰나를 붙잡을 수 있는 문학적 합리화라고 혼자 정의한다.

 

시적 허용이 필요한 것은 엉망이고 복잡한, 이리저리 뒤 엉기고 어질러진 혹은 그 반대로 단순하고 무료한, 흐릿하고 은밀한 것들을 다만 정적인 언어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잠시 '일시정지'를 누르고 와르르 쏟아지는 감정을 모아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글자로 그리면 시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시를 읽다 보면 '와, 이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아 맞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미 스쳐 지난 시간을 되돌려 새로운 감상을 덧입히기도 한다. 바쁜 일상을 지내며 느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나 없이도 잘만 돌아가는 야속하기만 한 이 세상과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목적 없는 무관심을 흩뿌리고 있을 때, 불현듯 내 삶의 빛처럼 '그것'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과 그것으로부터 피어나는 나의 모든 감정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대로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느린 시선', '일시정지'가 너무나도 필요해진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만드는 세상의 그 어떤 존재를 사랑할 때, 우리에겐 시가 필요해진다. 사랑의 대상이 자연이든, 반려동물이든, 애인이든, 시간이든, 나 자신이든지 간에 말이다.

 

이제니 시인의 시집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은 단순히 시가 어려웠다는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인상 깊었던 한 문장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온전히 삼키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조각조각 분석하는 법 밖에는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애씀은 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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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으며 나를 찌르는 단 몇 문장을 마주침으로써 나를 둘러싼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사랑스러움을 드디어 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이미 충분히 그 작품이 가지는 부드럽고도 강한 힘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더 이상 이해되지 않는 시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잘게 조각내지 않아 더욱 온전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직접 건너보지 못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감정도 있구나'상상이 된다면 상상하고, 잘 와 닿지 않는다면 다음 페이지로 넘겨 날 알아주는 문장을 찾아가면 된다. 그 모든 과정이 즐거우면 그만인 것이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 시 역시도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자연히 스며드는 것을 만지고, 돌보기 위해 읽는 것이다. 단 한 줄이라도 내 가슴에 박히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의미 없이 지나쳤던 시구가 불현듯 떠올라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의미를 담고 다시 나를 찾아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꼭 시를 읽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단 한 줄의 문장이 나를 어떻게 웃음 짓고, 눈물짓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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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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