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내가 글을 쓸 수 없는 이유

글 입력 2020.07.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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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주제로 나의 지질했던 10대 시절, 대학교에 다니며 느낀 것, 미디어에 등장한 학교의 모습 등을 글로 쓴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에세이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라는 주제에 관해서 만큼은 늘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연재하기 전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학교에 관한 단상을 정리했고, 그것을 길게 늘이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오피니언을 연재했던 지난해 초보다 글이 신나게 써지지 않는다. 처음에 15일 간격으로 연재하기로 했던 에세이를 교환학생과 인턴 활동으로 한 달 간격으로 연재하기로 해 시간적 여유를 두려는 시도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재 마감일인 매달 셋째 주에도 무엇에 관한 글을 쓸지 정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글을 완성하기를 벌써 몇 달째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연재 1주년을 맞이하여, 에세이에 관한 메타 에세이를 작성해보려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1. 자기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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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남들이 잠든 늦은 시각, 소란한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을 꺼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명 ‘새벽 감성’이라는 단어로 명명되는 이 현상은, 다음날의 끔찍한 후회와 ‘이불킥’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나에게는 이 에세이가 그렇다.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고, 소리 내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의견들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문제는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이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에세이를 쓴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렸고, 그들은 기꺼이 나의 열렬한(?) 독자가 되어주었다. 오피니언을 연재했을 때부터 글을 읽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SNS를 통해 나의 블로그를 방문해 에세이에 관해 알게 된 지인도 있다.

 

대부분은 글에 관해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때문에 자연히 내가 에세이의 독자로 상정하는 사람에는 아트인사이트의 방문자뿐만 아니라 나의 지인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나의 글을 읽으며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신경쓰는 편이다. 특히 그들이 이야기에 등장할 때는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꼭 나와 친하지 않았더라도, 경멸해 마지않았던 사람이라도 부정적으로만 비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나의 모습을 먼저 들여다보려 한다.

 

그게 불가능할 것만 같다면, 애초에 그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해버린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2. 주제와 방향성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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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주제로 에세이를 기획할 때, 처음 의도한 방향은 내가 관찰한 학교생활의 단면을 심리학, 예술 등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소재를 접목하여 표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메모해놓은 간단한 주제들을 다시 떠올리고, 기획 당시를 상기하며 긴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첫 에세이에서 예고한 주제가 다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동하게 하는 새로운 소재들은 끝없이 나온다. 최근 읽은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아픔이 길이 되려면> 등의 도서와 최근 시청한 넷플릭스 드라마 <컨트롤 Z>에서 다루어진 학교 폭력에 관해 쓰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고, 학교 안에서의 아르바이트와 인턴활동 경험에 관해 쓰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주제를 떠올리는 건 결국 마감일이 다 되어서이기 때문에, 충분한 자료가 없어 늘 포기하곤 했다.

 

최초의 기획 단계에서 더욱 구체적인 연재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던 것이 화를 불렀다. 언제까지나 나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글을 써내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자니 나의 역량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연재의 방향성을 더 명확하게 설정해야겠다.

 

 

 

3. 인풋이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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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다니던 학교를 의도치 않게 일 년이나 떠나있었다는 것이다. 한 학기는 교환학생으로 다른 나라에서, 한 학기는 휴학 후 인턴 활동으로 강의실이 아닌 다른 건물에서 일하느라 학교와 수업에서 멀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학교라는 주제에 관해 쓰기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낸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맥락에 의존한다. 도서관에서 공부한 기억은 시험장보다 도서관에서 더 잘 인출될 수 있고, 밤에 공부한 내용은 낮보다 밤에 더 잘 인출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학교에 관한 기억이 더욱 잘 떠오를 텐데, 해외에서는 낯선 문화에 적응하느라, 지금은 인턴 활동으로 일만 하느라 과거에 적어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

 

 

 

4. 게으름과 번아웃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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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나의 게으름이다.

 

휴학 후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보려 했는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기는 했지만, 문이 좁은 출판사에 채용을 넣어보고 싶지는 않았고, 영화산업에 발을 들여볼까 했지만, 코로나 19가 확산된 이후로 극장에 간 것은 딱 한 번뿐이다.

 

쉼 없이 학교에 다니고 나의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기도 했다. 정말 쉬려고 한 휴학도 인턴 생활로 새로운 피로를 누적시키고만 있는 기분도 든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자는 것이 평일의 일과고, 주말에는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규칙적인 일과가 있어도 거기에 글쓰기가 포함되지 않아서일까. 이전만큼 새 글을 쓰기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다.

 

오피니언을 일주일에 한 번 연재하던 때에도, 일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에세이를 연재하던 때에도 단 한 번도 글을 밀리지 않고 써온 나인데, 이번은 정말 휴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글 권태기가 어서 지나갔으면 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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