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도 퀴어면 안불편해? [TV/드라마]

용납할 수 있는 퀴어의 정도
글 입력 2020.07.1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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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보고 갈래?’

 

미국에서 ‘라면 먹고 갈래?’와 같은 의미의 플러팅으로 쓰인다는 이 문장은 우리의 삶 속에 넷플릭스가 상당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넷플릭스 속 영화나 다큐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종류의 퀴어 관련 컨텐츠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쏟아지는 퀴어 콘텐츠 속에는 쉽게 알아채지 못할, 하지만 어딘가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미묘한 불편함들이 있다. 대다수는 눈치 채지 못할 이 미묘한 불편함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퀴어 베이팅이란 미디어 매체 속에서 팬 층을 늘리거나 더 많은 관중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극 중 퀴어인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혹은 그럴 가능성을 내비치는 의도적 마케팅을 의미한다. 즉, ‘퀴어’의 캐릭터가 개인의 서사 없이 영화의 향신료처럼 주인공의 특수성이나 행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를 퀴어 베이팅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퀴어 캐릭터의 등장 자체가 퀴어의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퀴어 ‘서사’의 부재는 퀴어를 다각도로 해석하고 이해할 가능성을 없애며 컨텐츠 속 평면적이고 고정적인 퀴어의 모습으로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퀴어의 왜곡되는 이미지는 다시 다른 컨텐츠를 통해서, 그리고 그런 컨텐츠를 소비하는 우리를 통해서 고정되고 재생산된다.

 

캐릭터의 서사가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는 영화 ‘조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인 ‘조커’는 과거부터 기존의 악당과는 차별화된 악당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단순히 영웅과 대적하는 ‘순수악’의 모습을 한 악당이 아닌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불합리함과 결핍된 애정, 어릴 적의 학대 등으로 인해 한 남자가 분노를 폭발시키는 약자의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다수의 대중들에게 조커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동조의 여론 또한 만들어냈다. 이렇게 캐릭터의 서사는 단순히 캐릭터의 정당성과 특수성을 바꿀 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대중의 인식을 바꾼다. 그런데 미디어 속 지워지는 퀴어의 서사는 대중들에게 그들의 존재 스스로를 설명할 기회조차 빼앗는다.

 

넷플릭스 속 퀴어 서사에는 몇가지 치명적인 한계점이 있다. 첫 번째로 ‘주인공 친구 = 퀴어’의 공식이다. 쉽게 말하면 ‘주변의 존재’ 로서의 퀴어이다. 중심의 존재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주변의 존재로서의 퀴어는 언제나 유쾌한, 주인공의 친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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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데이브레이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세 드라마에는 ‘흑인 게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흑인 게이 캐릭터’, ‘화장하는 게이’, ‘끼부리는, 여성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는’ 게이 캐릭터 모두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게이의 스테레오 타입을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그들의 ‘소수자성’과 ‘주변성’을 강화하는 요소들이 이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인종에서 주변의 존재로 통용되는 흑인에 게이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극 중 아무도 입지 않는 화려한 옷들을 입히고 짙은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성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 모두 게이를 위협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흑인인 게이 캐릭터가 마이너의 특성을 가진 아시아의 ‘닌자’ 문화에 푹 빠졌다는 드라마 설정 또한 그의 소수자성을 부각시키는 요소 중 하나이다. 중심의 존재, 즉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귀엽고, 장난스럽고 유쾌하게 캐릭터를 만드는 것 모두 퀴어를 ‘주변의 존재’로 강화하기 위한 장치들로 해석할 수 있다.

 

게이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 종종 포르노적 부분으로 강조되어 쓰여지는 여성의 동성애 또한 퀴어베이팅의 한 종류이다. 간신, 빌로우 허, 제인 더 버진 등에 등장하는 불필요하게 길거나 성애적 사랑에 치중한 레즈비언의 모습은 자칫 문란하다 혹은 더럽다의 표현등으로 개인의 문란함이 아닌 집단 전체의 문란함으로 환원된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퀴어베이팅의 일종으로서 현실에 존재하기 보다는 영화 속 극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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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종종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퀴어의 존재 자체가 이성이라는 지배 문화의 질서에 균열을 불러옴으로써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초래하는 ‘무거운’ 존재로 간주되곤 한다. 소수자들이 정상적인 사회에 에이즈 같은 불결한 병을 퍼뜨리는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거나 퀴어는 모두 인권 운동자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오해는 퀴어가 '무거운'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퀴어의 서사가 부재하는 퀴어 컨텐츠는 성 소수자가 정체화 하면서 겪는 개인적/사회적 고난과 역경을 지움으로써 퀴어들이 차별없이 세상에 온전하게 섞여서 살아갈 수 있다는 식의 연출을 하고, 이를 통해 그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퀴어 스스로에게도 차별없이 세상에 온건하게 섞여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아직 차별금지법 또한 통과 되지 못하는 나라에서 퀴어에 대한 차별은 보기보다 공고히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다수의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은 콘텐츠보다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콘텐츠 제작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조효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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