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31.jpg

 
창작으로 이끌어줄 소재를 발견하는 상황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집에서 책을 읽다가 꽂힌 어떤 단어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여행을 하면서 겪은 상황에서 소재를 발견할 수도 있다. 평소 주위에 있던 어느 물건이 새롭게 느껴져 그것을 소재로 쓰게 될 때도 있으며, 꿈에서 힌트를 얻어 글을 써 내려갈 수도 있다.
 
이번 소설 『밧줄』의 아이디어는 작가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의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141.jpg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stefan aus dem siepen)
 
 
독일 시인 두어스 그륀바인의 말에 따라 “독일 소설가 중 맨 앞줄에 속하는 작가”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은 침대에 걸터앉아 전날 밤에 꾼 꿈을 떠올리게 된다. 그게 바로 밧줄에 대한 꿈이었다.
 
그는 이 꿈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고, 꿈을 잊기 전 즉시 수첩을 꺼내 내용을 적었다. 직업외교관인 공무원인 그의 습관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걸터앉아 메모하는 것이었는데, 그 덕에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삭은 행운과 똑같단다.

행운이 너무 커지면 불행이 되는 법이야.”


- 『밧줄』, 14p

 

 
옛날 독일 어느 마을에 농부 베른하르트가 전나무 숲과 맞닿은 초원에서 밧줄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그 밧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밧줄이 아무리 단단하게 잘 꼬아 만들고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의 최상급 밧줄이어도 주인인 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마을의 농부들이 모두 밧줄 앞으로 모여있었다.
 
밧줄의 주인이 없다고 판단한 농부들 중 처음으로 밧줄을 발견한 베른하르트가 밧줄을 들어 올려 당기기도 하고 밧줄을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마을을 파멸로 이끌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다.
 
그들이 엄청난 행동을 한 건 아니다. 그저 밧줄이 놓여 있기에 그 끝이 궁금했고, 그래서 마을을 떠나 원정을 간 것뿐이다.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몰고 온다는 말에서처럼, 그들의 사소한 행동이 마을을 파멸로 이끌기엔 충분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 할 수도 없다. 그들은 단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규명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뿐이었다. 그리고 처음 접한 이야깃거리를 고집스럽게 놓지 못한 것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추수할 때가 다 와가는 데도 원정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욕망 때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마을은 그들의 고향이며 삶의 터전이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곳, 세상과 동떨어진 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곳. 그곳이 바로 그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집과 들판으로 구성된 작은 마을이었고, 그것도 숲으로 둘러싸여 한평생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오로지 거기에서만 겪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웃 마을과의 교류도 없이, 간혹 제일 가까운 마을로 가서 농사지은 곡식을 팔고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오는 게 다였던 그들을 밧줄이 끌어준 것이다.

 

“밧줄은 농부들의 영혼 미지의 영역에 숨겨져 있어 본인들조차 있는 줄도 몰랐던 동경을 일깨웠다. 이게 전부라고 믿고 살았던 작은 세상에서 한 번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들을 집과 마을에 꽁꽁 묶어 두고 있는 천 가지 끈을 신나고 화끈하게 끊어 버리고 싶은 욕망 말이다.”


- 『밧줄』, 81p

 

 
작가는 서문에 이런 말을 언급했다.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나의 이 괴로움을 알리라.”

- 괴테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자 하는 욕망의 끝이 파멸이라는 걸 모르고, 농부들은 하염없이 전진한다. 원정 도중 발견한 빈 마을이 자신들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고, 새로운 밧줄에 허탈해할지도 모르고, 목적 하나로 전진했다. 만약 그걸 알았다면 그들은 과연 어떻게 했을지 의문이 든다. 원정길에 오르지조차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은 여전히 마을 안에서 국한된 인생을 살았어야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 고작 밧줄 하나로,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밧줄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덧붙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밧줄 하나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이미 이 소설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밧줄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들에게 한 번 묻고 싶다. 농부들이 놓을 수 없었던 밧줄처럼, 당신에게도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가. 끝이 파멸이란 걸 알면서도 미련스럽게 놓지 못했던 것이 있는가. 그 생각을 가지며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고, 이 책을 다 읽고서도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