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펜하겐에서 떠올린 애착에 대하여 [여행]

글 입력 2020.07.0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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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의 소재로 '아끼는 것'을 종종 꺼낸다. 상대가 어떤 것을 아끼는 지 궁금하고 반대로 내가 아끼는 것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에 모든 형용사들의 뒷편에 접착제가 붙어있고, 그 단어가 가진 의미의 세기에 따라 끈끈함의 정도가 다르다면 아낀다라는 단어는 좋아한다보다는 끈적거리고 없으면 안된다보다는 덜 끈적거리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내가 아끼는 것들의 대상은 큰 자국을 남기지 않고서 여기저기 깔끔하게 옮겨다녔다.

 

현재 스물네살의 내가 가진 '아끼는 것' 폴더에는 노래, 그림, 영화에서부터 사람 유형,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뭉실뭉실거리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들어있다. 많이, 그리고 종종 생각하는 주제인만큼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릎을 맨날 깨뜨리던 어린 나에게 '아끼는 것'이란 지금이란 훨씬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기억나는 최초의 물건은 붉고 노란 꽃이 이리저리 수놓아진 극세사 담요이다.

 

담요에 얼굴을 파묻으면 느껴지던 섬유유연제 냄새와 보들보들한 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담요와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했다고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꼬맹이의 귀여운 애착이 눈에 선해서 웃음이 난다. 지금도 촉감이 부드러운 담요를 만나게 되면 나의 애착담요가 떠오른다.

 

20년이 더 지났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지내려나. 되도록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담요가 그때의 형태를 온전히 간직한 채로 누군가의 온기가 되어주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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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공장에서 애착이 어떠한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궁금해하는 게 있다. 바로 '하트'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마주하는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구경하다보면 그들이 아끼는 누군가와 나눈 카카오톡 캡쳐본이 올라오곤 한다.

 

이 때 그들이 상대방을 저장하는 방법에는 주요 이름 뒤에 하트를 붙이는 것이 쓰인다. 이 하트가 궁금하다. 자세히 말하자면 하트에 담긴 역사가 궁금하다. 보통 단순한 호감에 그런 이모티콘을 붙이진 않으니까. 하트를 계속해서 줌인해보면 네모난 픽셀 속엔 그들의 술냄새나는 대화, 수많은 커피잔과 함께 찍은 사진, 웃음과 눈물이 함께 담겨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딱 한 잔의 커피만으로도 이름 뒤에 빨간색 하트를 붙여 저장하고 싶은 사람이 여러명 있는 걸 보면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하트는 평균 사람들보다 많나보다. 더군다나 나는 카페인의 효능이 알코올만큼이나 강렬하게 나타나는 편이라서 카페에 있다보면 충동적으로 카카오톡을 켜서 지인들에게 나의 하트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주는 것에 만족해하는게 성숙한 성인의 사랑이라는데, 부끄럽게도 그건 어렵다. 어떻게 하는 지 감이 오지 않고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런 사랑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딱히 열심히 찾지 않는다.

 

언젠가 이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쌍방의 호의적인 마음 교환을 사랑의 전제로 두지 않는 식으로. 그런 아가페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 그건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자. 현재의 나는 상대방에게 준 만큼의 사랑을 받고 싶으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다음에 자세히 말해야겠다.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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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사람만큼 커다란 양의 애착을 주는 대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옷이다. 새내기때만 해도 난 주로 안전지대에 머무르는 옷을 입었다. 안전지대란 매체에서 보여주고 정의내리는 '페미닌함'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왜, 플라워 원단의 원피스나 흰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 같은 조합을 가리켜 '새내기룩'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그 시기 옷장을 차지하는 옷들은 주로 블라우스나 원피스였다. 반대로 바지를 입으면 살집있는 하체를 그대로 내놓는 느낌에 내가 어딘가 둔하고 흐리멍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슷비슷한 원단과 패턴의 치마들을 아주 많이 입고 다닌 결과, 치마가 몹시 지겨워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설레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바지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쇼핑몰들을 참고하는 식으로. 하지만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예뻐하는 바지라도 실제 입었을 때 마음에 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바지를 한 눈에 알아보기란 유니콘과 비슷하겠다고 생각하며 빈티지샵의 문을 등 뒤로 닫고 나온게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경험에서도 얻은 것은 있었으니 내 옷장에 차지하는 바지의 비율과, 바짓단의 너비가 점점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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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코펜하겐의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커피 콜렉티브를 가는 길에 눈에 띈 빈티지샵을 한 군데 들렸다. 앳된 얼굴의 남자 직원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빈티지샵 특유의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나지 않아 코가 간지럽지 않았다.

 

내가 정해놓은 바지 선정 기준으로는 '품이 넉넉하고 뒷태가 둔해보이지 않게 맵시 있는 디자인을 가졌으며 색깔은 흑청이어야 한다'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가게 안에 이를 충족하는 바지가 있어서 구입했다. 지금 나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새로 산 바지는 날 기분좋게 만들고 있다. 넉넉한 바지 크기만큼 내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듯 하고.

 

이렇게 '아끼는 것'들을 두 팔로 감쌀 때의 나는 평소보다 낙관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들이 부서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나는 더 튼튼해지고 싶다. 좋은 접착제를 써서 나와 내가 아끼는 것들을 견고하지만, 서로 엉겨붙지 않도록 잘 붙여놓고 그들을 오랫도록 사랑하고 싶다.

 

2020년 1월 28일 코펜하겐에서.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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