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들린 밀러' 유니버스 [도서]

매들린 밀러 <아킬레우스의 노래>, <키르케>
글 입력 2020.07.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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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모르는 이들이 있을까. 영원한 명성을 가진 영웅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전쟁, 이성적 영웅 오디세우스와 10년의 항해. 수천 년 동안 우리 사이를 떠돌며 빛나던 이야깃거리다.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라 한다면, 무궁무진한 언어가 입 안을 맴돌고, 광활한 글자들이 허공을 메울 터다. 하지만 파트로클로스는, 키르케는 어떠한가. 단 한 번이라도 이들에 대한 상상을 해보았는가?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잃은 걸까, 무언가가 이들의 목소리를 찢은 걸까? 그렇다면 되살려내야지. 매들린 밀러의 세계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존재하지만,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미세한 숨결을 틔워낸다. 파트로클로스는 어떤 심정으로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추고 발을 디뎠을까. 케레스가 그를 붙잡은 순간, 무얼 떠올렸을까. 키르케는 왜 아이아이에 섬에 홀로 지내게 된 걸까. 그는 혼자라서 외로웠을까. 언제부터, 어떤 마음으로 방문자들에게 마법을 걸었을까?

 

 

 

파트로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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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왕이었고 왕의 자손이었다.” 매들린 밀러의 <아킬레우스의 노래>의 첫 문장이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의 목소리, ‘나’는 파트로클로스다. 그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쫓겨나, 아킬레우스가 있는 프티아로 간다. 작고, 가냘프고, 빠르지 않고, 튼튼하지 않은 파트로클로스와 찬란한 금빛을 띄는 아킬레우스의 우정은, 어느덧 애정으로 변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비극적인 운명이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

 

파트로클로스가 담아낸 트로이 전쟁은 내 기억과 달랐다. 아킬레우스 또한 그간의 신화에서 봐왔던 모습과 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아킬레우스는 오만함으로 무장한, 거침없고 잔혹한 학살자였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노래>에서 파트로클로스가 묘사하는 아킬레우스는 진지하고 정직하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악의는 없다. 타고난 운명 덕에 모든 이의 기대를 받지만, 사사로운 감정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 옆에 선 파트로클로스는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전차에 오른다. 이전의 전투에서 파트로클로스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죽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싸울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피와 살덩이, 흙먼지가 부유하는 전장에 나서길 선택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사랑하는 이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또한 파트로클로스는 여성 포로들이 병영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그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포로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피고, 무언가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들과 가족이 되고, 솔직한 마음을 표한다. 브리세이스를 돕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배신’(작중 표현을 빌리자면)하기까지 한다. 케이론에게 배운 의술로 부상병들을 돌보기도 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묵묵히 그 길을 걷는다. 그는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손 내밀 수 있는 온화함과 섬세함을 지녔다.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전쟁에 명예가 걸린 왕자도 아니고, 복종의 의무가 있는 병사도 아니다. 없으면 아쉬운 영웅도 아닌, 지위도 서열도 없는 유배자다. 하지만 작중 아킬레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파트로클로스는 ‘놀랍다.’ 그는 누구보다 아킬레우스를 사랑했고, 동시에 약한 이들의 편에 설 수 있는 이였다. 매들린 밀러가 복원한 파트로클로스의 목소리와 힘은 이토록 놀랍다. 나는 이제 ‘트로이 전쟁’이라는 두 단어를 보면, 언제나 파트로클로스를 떠올린다.

 

  

 

키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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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은 이름이 없었다.” 세상에, 내가 아는 그 키르케가 맞나? 내 기억 속의 키르케는, 강력한 ‘마녀’ 그 자체였다. 스킬라의 창조자, 소름 끼치는 명성을 가진 메데이아의 고모, 아이아이에 섬의 마녀, ‘키르케’ 말이다. 그런 그에게 이름이 없다니.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는 키르케의 탄생부터 그의 생 자체를 전복하는 선택의 순간까지를 아우른다. 그야말로 대서사시다. <오뒷세이아>에서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마녀이며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남성적 관점에서의 서술이다. 오디세우스의 항해에서 스쳐가는 ‘대상’으로 존재했던 키르케는 밀러의 손끝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얻는다.

 

키르케는 티탄족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 페르세의 딸이다. 미천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태어나, 조롱받고 멸시받는 순간들을 그저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의 묘한 능력을 깨닫는다. 동시에 아이아이에 섬에 유배당한다. 키르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뚜렷한 의식과 함께, 숲으로 들어간다. 파르마콘을 다루는 자, 파르마키스, ‘마녀’ 키르케의 탄생이다. 키르케는 아이아이에 섬에 머물며 마법을 배워나간다. 매들린 밀러가 묘사하는 마법은 고되다. 키르케는 마법을 거저 얻지 않는다. 끊임없는 질문과 실천으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찾아나간다.

 

유배생활을 하며 키르케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마법을 깨달아나가고,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헤르메스, 다이달로스, 오디세우스, 텔레마코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들 텔레고노스를 얻은 뒤에는 ‘감히’ 아테나와 대적하기까지 한다. 키르케의 성장담은 이제껏 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소설은 키르케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서사시’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신화에서 여성들의 목소리, 말(mythos)의 권위는 인정받지 못했다. <오뒷세이아>에서 텔레마코스가 어머니인 페넬로페에게 ‘어머니, 어머니 방으로 다시 올라가세요. 가셔서 어머니의 직분인 베틀 짜기에 매진하시란 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입니다. 공적 발언은 남자들의 일, 그중에서도 제 일입니다. 이 집안의 권력은 제 것이니까요.’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카산드라의 말(예언)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아테네의 공주 필로멜라는 강간당하고 혀까지 잘린다. 말함의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말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키르케>에서 할 말 다하는 여성들, 그 신랄함을 보고 있자니 이토록 짜릿할 수가 없다. “너는 언제나 내 자식들 중에 가장 못난 녀석이었지. 내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라고 말하는 헬리오스에게, 키르케는 이렇게 답한다.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잠깐이지만 파시파에, 메데이아, 페넬로페의 목소리도 반가웠다. 특히 파시파에가 미노타우로스를 출산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다이달로스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더듬거리자 파시파에가 그의 말을 끊고, “아, 제발. 그리 더듬더듬 얘기하는 걸 기다리다가는 세상이 저물겠다. 내가 그 신성한 황소랑 떡을 쳤어, 됐어? 이제 실 가져와.”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태양과 달의 엇갈린 여정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반복되고, 키르케는 아버지 헬리오스를 ‘협박’하며 유배의 종식을 청한다. 협박이 먹혔다. 키르케를 그저 ‘공간’에 머무르는, 공간화된 존재로 만들었던 아버지의 법은 부서진다. 키르케는 아이아이에 섬을 떠난다. 이제 그는 시간을 사는 존재다. 어쩌면 키르케는 헬리오스의 왕궁에 머물던 시절, “아버지 생각이 틀렸어요.”라고 말한 순간부터 ‘아버지’를 넘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끝과 시작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가망이 없는 묵직한 어스름을 뚫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손과 손이 만나자 빛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태양 밖으로 금 항아리 백 개가 퍼붓듯 쏟아진다.” - <아킬레우스의 노래> 마지막 문장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 <키르케> 마지막 문장

 

 

매들린 밀러의 파트로클로스, 키르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상상의 여지와 힘을 남긴다. 또 혹시 모른다. 다른 누군가가 이들의 흔적을 뒤쫓아 우리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줄지. 개인적으로 두 소설을 동일선상에 놓고 싶지는 않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당시 ‘남성’의 이야기고, <키르케>는 신화 속 최초의 마녀로 기억되는 ‘여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자가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관계’에 집중한다면, 후자는 키르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내게는 <키르케>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사랑스럽다. 밀러의 세계가 사랑스러운 건, 그의 우주가 배제되고 소외된 것들을 감싸 안기 때문이다. 신화는 불변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끝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인류 문명에서 탄생한 신화는 한 번도 완결된 적이 없다. 스스로 고찰하면서 살아있는 상태로 존재했으며, 누군가가 건져 올려 새로운 이야기를 덧씌워왔다. 누군가가 노래하고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한 번쯤은 의심해보자. 누구의 이야기이며, 그 틈새에 누가 숨어있는지 살펴보자. 밀러처럼 펜대를 직접 잡기는 어려워도, 우리의 머릿속엔 저마다의 우주가 있으니까. 그곳에서 아스라이 빛나는 저마다의 의미들을 쫓다 보면,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당신을 덮칠 테니. 자, 우리는 여기서 시작하자.

 

<키르케>의 한 대목으로 글을 맺는다. “하얀 꽃이 한들거리는 배나무를 지났다. 달빛이 비치는 강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첨벙거렸다. 한 발, 한 발 걸을수록 점점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부풀어 오르는 감정이 목젖을 눌렀다. 어떤 감정인지 잠시 후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후회와 세월이 새겨진 거석처럼 너무 오랫동안 칙칙하고 근엄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건 남들이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춘 틀에 불과했다. 이제 그 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었다.”

 

 



[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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