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가 들어야 할 '존엄성 수업'

글 입력 2020.06.2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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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 생명권, 평등권, 표현의 자유, 노동권, 동물권. 학창시절에 한 번쯤 들어보았을 권리의 이름이다. 교과서 귀퉁이에 나열된 단어들을 암기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 태어날 때부터 가지게 되는 천부적 인권. 시험에 나올 것이니 권리의 종류와 의미를 암기하라던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에게 존엄성, 생명권, 평등권, 재판권과 같은 권리들은 여전히 교과서 지면 위에 박제된 채 의식 속에 남아있었다. 개념적 정의만 희미하게, 실제와는 잔뜩 괴리된 채로 ‘언제 그런 걸 배우긴 했었다’ 정도의 지식으로만 잔재했다.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행복추구권과 같은 말은 일상생활에서도 질리도록 입에 담지만 그 단어들의 본질과 맥락을 자세히 공부해본 적은 없었다.

 

‘존엄성 수업’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권리를 원리부터 파헤치는 책이다. 다양한 소설과 신화, 철학과 과학 등 권리가 포함하고 있는 맥락을 하나하나 짚는다. 책을 읽는 동안, 흐릿하게 알고 있었던 존엄성의 본질이 제법 명료하게 초점화되는 것을 내내 느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그런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과 무수한 다른 주인의 배경이 되어 협력해야 하는 두 가지 위대한 과업을 짊어진 존재로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가운데 각자 자기가 아닌 맞은편 사람의 가슴에 달아주는 존재 증명의 훈장이 인간의 존엄성이다. (...) 이야기의 중심을 인간으로 삼자는 진지한 제안,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각자 그리고 서로 지켜주기 위한 목적적 가치이자 도구가 인권이다. (39~40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존엄성은 ‘감히 범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한 성질’을 뜻한다. ‘감히’, ‘높고 엄숙한’이라는 단어들에서 존엄성이 가지는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누구도 범할 수 없고, 범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이고 숭고한 가치가 바로 존엄성이며, 인간 존엄성은 인간이기에 가지는 존엄성이다. 개개인의 인성에 가치판단이 주입되기 전부터, 즉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부여되는 ‘높고 엄숙한 성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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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인간의 모든 권리는 존엄성에 기초한다. 평등할 권리, 재판을 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 생명을 가질 권리 등, 모든 권리의 기초에는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명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완벽히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은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존재하기 힘들다. 차별이라는 것이 없는 세상, 누구나 행복한 세상, 누구나 자신의 생명에 자유를 가지는 세상은 아쉽게도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완전한 평등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이루어본 적도 없고, 현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미래에 이루어지리라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바람직한 세상은 하나의 대상이지 반드시 현실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차이와 차별에 대한 세세한 구별 작업이라도 끊임없이 반복하며 평등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계속 미래로 더 밀고 나아가는 행위가 사회적 인간의 운명이자 의무다. (107쪽)
 

 

권리에 대한 시선도, 정의도, 정도도 시간이 갈수록 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권리와 존엄성을 외친다. 특히 책에서, 늘 최선의 상태를 목표하기 때문에 권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어느 정도의 정치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문구가 인상 깊었다. 더 존엄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걸음이 쉬울 리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존엄성 수업’은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권리들의 본질을 파헤친다. 특히 이 책의 특이점 중 하나는 문학과 철학, 과학, 신화 등 갖가지 텍스트에 담긴 권리와 자유의 맥락을 짚는다는 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밀의 화원’, ‘작은 아씨들’과 같은 고전 문학부터 ‘해리 포터’나 ‘딸에 대하여’와 같은 현대 문학, 그리고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같은 신들의 이야기에서도 책의 주제를 찾아낸다.

 

이 책은 딱딱한 정의에서 벗어나, 실제 한 시대의 역사와 사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텍스트를 활용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한 사회의 단면을 보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창작물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문학을 애호하는 한 사람으로서, 거대하고 묵직한 개념 틈틈이 자리한 문학의 단락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문득 2020년 현재를 돌아보게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과 맞닥뜨린 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올 때 문제의 그림자에 가려 묻힌 많은 목소리들을 생각했다. 사상 초유의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이혼율이 높아지고 가정폭력 건수가 올라갔다는 씁쓸한 뉴스 뒤에는 우리 사회 이면에 자리한 차별이 존재했다. 극한의 상황에서야 가시화되는 폭력을 바라보며, 그 아래에는 얼마나 뿌리 깊은 차별이 자리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제작한 가정폭력 관련 공익광고

 

 

물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빠짐없이, 차별 없이, 평등하고 올곧게 지켜지는 날은 마냥 아득하다. 아마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서 말했듯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생명의 존엄성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존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더 존엄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들어야 할 ‘존엄성 수업’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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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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