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시각예술]

데이비드 호크니의 포토콜라주 이해하기
글 입력 2020.06.2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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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진예술'이라는 단어에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을 예술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사진 작가를 예술가로 칭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진이 처음부터 예술의 지위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사진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개념의, 기술로 여겨졌다. 동시에 사진 매체의 등장은 회화 작가들을 긴장시키는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기록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리는 것보다 찍는 게 간편하고, 정확하다. 이에 화가들은 더 이상 '풍경을 화폭에 옮겨 담아 내는 것'만으로는 회화의 가치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과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은 회화 작가들에게 주어진 일생 일대의 과제였다. 사진을 대하는 작가들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는데, 사진에서 도움을 받아 정확한 구성과 원근법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 화가들이 있는가 하면, 사진이 가지지 않은 회화 만의 특별한 가치를 조명한 작가들도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후자의 그룹에 속한다. 그는 사진의 속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포토콜라주 작업에서 회화만의 가치를 밝히고자 하였다. 회화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사진을 잔뜩 붙이는 포토콜라주 작업을 했다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격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야 말로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정신을 작품에서 선보였는데 이 글에서 회화와 사진에 대한 호크니의 생각을 알아보고 그의 포토콜라주를 살펴보고자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고, 아날로그와 디지텔 두 세대를 모두 겪은 작가이기에 시기별로 두드러지는 주제의식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 왔다. 화풍이나 작업 방식에서도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로, 최근엔 아이패드를 활용한 드로잉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글에선 사진과 회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그의 1980년대 작업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현재 호크니는 다양한 수식어로 소개되는데, 포토콜라주를 이해하기 위해 1980년대의 호크니를 집중 조명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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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작품 중 무엇이 더 정직하다고 느껴지는가? 사진의 등장 이후, 에르네스트 메소나아,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와 같은 아카데미즘 화가들은 카메라 이미지로 작업하여 사진처럼 연출된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세잔과 고갱, 반고흐가 세상을 보고 캔버스에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다. 이들은 사진의 특성을 회화로 끌어다 오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호크니는 이들이 '사진이 실체를 포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말하는데, 이는 호크니 본인의 생각이기도 하다. 세잔의 그림이 부그로의 그림보다 실제와 더 가까운 이유는 ,우리가 대상을 볼 땐 그것을 확정지어 두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움직이며 보기 때문이다. 부그로의 그림은 사실적이고 아름답기는 하나 현실세계에서는 그런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카메라 이미지로 작업해 한없이 연출된 그림인 것이다. 호크니는 위의 부그로의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을 보고 ‘밀랍 인형같다.’고 표현했다. 이 그림은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과 다를 바가 없고 그렇기에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부그로의 그림과 같은 세계보다 반 고흐나 세잔의 작품에 그려진 세계를 더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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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는 동양적 회화관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건륭제 남쪽 순행> 이 작품은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행렬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이 작품을 볼 때 감상자는 황제의 행렬과 함께 도시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다. 두루마리 그림은 한 부분 한 부분을 펼치고 말아가며 보는 방식으로, 전체를 한 번에 눈에 담을 수 없고 계속 돌려가며 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다양한 시점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서구가 추구하던 전통적인 원근법의 한계를 벗난다. 호크니는 “If you are not moving, in a way you're dead’” 라고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떤 측면에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원근법과 소실점을 추구하는 화면은 보는 이를 움직이지 않는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며 회화의 공간은 종이 위에 한정된다. 이에 호크니는 소실점을 거부하하고, 움직임과 시간성이라는 요소를 작품에 넣어 자신이 경험한 공간을 관람자가 다시 경험할 수 있도록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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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블로섬 하이웨이 1986년 4월 11-18일, 1986

 

 

사진과 회화, 소실점의 한계와 두루마리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통해 호크니는 자신의 포토콜라주 연작을 완성한다. 호크니는 회화에서의 층 ‘layers’ 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화가가 물감을 덧칠하는 건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이전의 것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자 한 겹씩의 시간을 더하는 것이다. 호크니가 이야기하는 층은 이 시간과 관점의 두 요소가 쌓이는 것인데 사진에는 이 ‘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층의 부재는 호크니가 사진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이유였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단 하나의 순간과 단 하나의 시선만 담기기 때문에 시간과 관점에서의 제약이 발생한다. 호크니는 이러한 자신의 관점을 이어 콜라주를 회화의 한 형식으로 정의했다. 한 겹씩 층이 더해지는 콜라주는 하나의 시간 층 위에 다른 시간의 층을 얹는 것으로, 회화와 본질적으로 같게 된다. <피어블로섬 하이웨이, 1986년 4월 11-18일>은 호크니가 로스엔젤레스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들을 조각 낸 후, 화면을 재구성해 콜라주 하는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이렇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호크니는 시공간을 결합한 회화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관람자의 시선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들고, 화면 속에 들어온 느낌을 들게 한다. 이제 관람자는 화면과 동떨어진 곳에서 그림 속 상황을 넘어다 보는게 아니라 화면의 주체가 된다. 이 작품을 관람하는 당신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운전자가 되어 시공간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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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집트 양식으로 그린 브리들링턴 스쿨과 베싱바이로드의 모르슨 슈퍼마켓 사이의 스물다섯 그루의 큰 나무들

 

 

이 작품을 보고 언뜻 파노라마 사진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호크니는 이 작품이 파노라마가 아님을 힘주어 이야기했다. 파노라마의 사전적 정의는 ‘둥근 벽에 원근법을 이용하여 연속된 풍경을 그려 중앙에서 보면 풍경에 에워 싸인 것 같이 보이게 한 그림’이다. 쉽게 말하면 파노라마를 보는 이는 한 위치에 고정된 상태로 그림을 보게 된다. 그래서 파노라마는 보는 이로부터 가까이에 있는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인다. 호크니의 <반 이집트 양식의 나무들>은 그림에서 관람자와 대상과의 거리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이 작품을 관람할 땐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프리즈 형식(방이나 건물 윗 부분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띠 모양의 장식을 한 것)으러 작업한 이 연작은 함께 놓인 42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의 순서 그대로 배치되어 있고, 호크니가 자신의 위치를 옮겨 가며 각각의 나무들을 같은 거리에서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 사진들을 겹쳐놓았다.

 

이 긴 작품은 하나의 위치에서는 모두 눈에 담을 수 없으며 걸음을 옮겨가며 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풍경을 보는 방식과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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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스텐 버그 광장

 

 

호크니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면, 호크니가 당신을 자신이 경험했던 공간 속으로 초대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는 관람자는 더 이상 전시장이 아닌 광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게된다. 호크니는 사진을 이용한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화면을 파편화하고 자신이 원하는 실제적인 화면을 구현해냈다. 관람자가 작품을 보는 순간 완성된 화면에서 모든 것을 명료하게 파악하는게 아닌, 시간의 흐름속에서 작품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포토콜로주를 회화로 정의한 호크니를 떠올리며, 그의 그림의 안으로 들어가 호크니의 시공간을 직접 걸어보길 바란다.

 

 

[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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