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수학계의 VA-11 HALL-A - 도서 '하버드 수학 박사의 슬기로운 수학 생활'

글 입력 2020.06.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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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양서적계의 발할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게임 <발할라>를 해 본 적이 있는지? <발할라>가 아니라더라도, <커피토크>라는 게임을 해 본 적 있다면 바꾸어 대입해 보아도 좋다. 두 게임의 공통점은 유쾌하고 매력 있는 바텐더로부터 칵테일이나 커피를 건네받고 소탈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눈다는 데 있다. 또 두 게임 다 선택지나 멀티엔딩이 준비되어 있거나 하긴 하지만 뭐 그렇게 자유도가 높은 게임은 아니다. 애당초 이 게임들의 매력은 무언가 성장시키고 컨트롤을 통해 성취하는 데 있지 않다. 그냥, 여러 흥미로운 소재를 바텐더가 조합해 플레이어에게 건넬 뿐이다.

 

내가 게임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게임들에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게임’으로서의 오락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도 이 게임의 매력에 후한 점수를 주는 사람 중 하나다. 힙한 노래나 일본풍 일러스트도 한 몫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각 스토리의 라인이 꽤 흥미롭기 때문이다. 고유의 세계관 아래에 만들어졌지만, 이야기의 전개 자체는 즐기기에 부담스럽게 표현되지 않는다. 사실 게임의 배경을 생각했을 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누가 칵테일이나 커피를 들이키려고 가게 문고리를 잡았을 때 어깨에 힘을 넣을까?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저, 편안한 장소에 가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바텐더와 도시의 관점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야기가 정말 놀라울정도로 흥미롭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즐길 뿐이다.

 

이 게임들에 대해서 할 말은 많지만, 한 문단을 더 게임 이야기로 채우면 이 글의 정체성이 모호해질까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왜 이런 게임들을 이 책의 리뷰에 앞서 소개했냐면, 이 책의 정신과 전개가 이 게임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아니지만, 재치있는 말솜씨를 가진 유쾌하고 재밌는 바텐더다. 저자 크리스티안 헤세는 이 도서 내내 칵테일 타는 방법을 소개하고, 그 맛에 대해서 간단히 표현한다. 그런 방식으로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칵테일과 커피를 권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에서 들을 수 있는 호로록 소리는 없지만, 저자의 레시피와 말솜씨는 입맛을 다시게 하는 데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칵테일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으로 소개되어있는 데킬라 선라이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시작과 마지막이 기억에 남는 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칵테일이 저자가 말하는 수학의 즐거움을 집약해둔 것처럼 느꼈다. 수학을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재밌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 칵테일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라틴어로 하는 말은 모두 의미심장하게 들린다’라는 라틴어 문장과 함께 말이다. 외국 아재의 썰렁개그지만, 이 책을 같이 읽은 독자들이라면 마땅히 훈훈한 미소가 떠오른다. 아마 이는 일반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수학을 놀이와 재치로 표현하려 한 그의 인격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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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학의 매력을 응축한 책


 

이 책을 게임으로 비유한 것은 단순히 저자의 독특한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하나의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원리를 알려주고, 계속해서 검증해보도록 한다. ‘검증’, 물론 이 익숙하고 짜증까지 나는 단어가 게임이라는 개념과 어울릴 수 있는지 조합이 잘 안 될 수 있다. 물론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난이도는 올라간다. 하지만 책의 흐름은 무겁지 않다. 끊임없이 저자의 농담과 창의적인 표현으로 책의 부담은 쉽게 덜어지는 편이다. 수학이 딱딱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진다는 상상과 다르게, 세상에는 수많은 수세기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의외로 그건 저자의 허풍이 아니다. 최소한 나는 꽤 재밌었다.

 

팍팍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수학의 이미지와 달리, 이 책은 수학에 대해 재밌는 사실을 다 끌어놓음으로써 흥미를 자극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산가지 수학법이나, 로마식 더하기 빼기, 이집트 사람들의 독특한 단위 분수들은 각자의 특성과 법칙이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다. 암산에서는 손가락 세기, 곱하기, 제곱(심지어 세제곱까지), 나누기를 원래 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계산해볼 수 있어서 신기하다. 암산 부분에서는 어떤 계산작업이라기보다는 조합하고 분해하는 레고 놀이 같은 쾌감이 있다. 그리고 역시 예외에 속하지만,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값이 나오는 수식이라던가, 아무런 값을 넣어도 특정 값이 반드시 나오는 마술같은 수식도 있다.

 

실생활이나 수학에 있었던 재밌는 사건들도 소개되어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역시 x의 y%는 y의 x%와 같다는 것이다. 큐브가 맞춰진 것처럼 눈에 번뜩 뜨이는 사실이다. 이런 것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음, 이 책에서 재미를 찾기 어려울 순 있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수능을 보는 그 날까지 수포자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책은 무척 재밌다. 아마 저자가 그만큼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독자들을 ‘입덕’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아쉬운 점


 

하지만 여기서 약간의 진실을 밝히자면, 정말 재밌었던 것은 나눗셈 전까지였다. 나눗셈의 반 정도까지는 어찌저찌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후로부터는 내 정신적인 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왕 게임과 엮으면서 책을 시작했으니, 게임으로 표현하자면 후반부터는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었다. 수학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일반인으로 이 책의 난이도를 평가하자면, 전반부는 몰라도 후반부는 새로운 것을 접하는 즐거움이 이해하는 어려움을 넘어서진 못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섬세하게 이해하고 익히기보다는 그냥 게임이랑 비슷하게 술술 즐기면서 봤다. 그런 방식으로 이 책을 생각하자면, 이 책의 후반부도 즐기기에 나쁘진 않다. 하지만 역시 실제 연산을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곱셈까지였다.

 

그리고 이 연산에 있어서 정말 개인적인 취향으로 아쉬운 면이 있었다. 바로 각 연산의 원리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산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은 재밌지만, 왜 무슨 이유로 그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알 수 없으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무슨 식이든 그 원리를 검증하는 것이 오래 걸리고, 결국 앞서 말했듯 난이도 조절 실패로 이어지지만 어느정도 필요한 부분도 있다. 원리를 단순 대입하는 건 초반까지는 재밌었지만, 저자가 환희하는 수학의 오묘함을 온전히 느끼는 데에는 제한이 있었다.

 

또 이 책의 마케팅 방식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하버드 수학 박사의 슬기로운 수학 생활>이다. 제목 위에는 ‘보는 즉시 문제가 풀리는 ‘3초 수학’의 힘’이라 써있다. 그리고 책의 하단에는 “내가 이 문제를 이렇게 빨리 풀다니!”라는 문장 아래에는 ‘언제 어디서나 바로 써먹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계산의 기술’이라고 쓰여있다. 사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출판사 입장에서 적절할지 모르지만, 이 책의 내용과 비교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이 책에서 다루는 암산기법은 좀 독특하긴 해도 사실 쓸모는 많지 않다. 내가 계속해서 게임으로 이 책을 대하는 것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암산의 기술은 순수한 즐거움의 영역에 사용될만한 것이다. 사실 쓸모를 생각하자면, 암산기법의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보다 스마트폰 계산기를 돌리는 것이 백 만 배 빠르고 정확하므로 유용하다. 하지만 게임이 유용하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 책도 수학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만약 이 책의 제목으로 인해 일반인이 ‘암산 기술’을 획득하고 싶었다면, 기술획득보다는 다양한 연산의 재미를 느끼는 게 이 책의 핵심이고, 암산 기법을 배우는 것은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사실 책에 대해서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해할만한 부분이긴 하다. 수학 연산에 대중적 재미를 부여하려는 저자의 노력처럼, 이 책도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의 이름을 빌려옴으로써 나름의 흥미를 끌어드린다. 그리고 하버드 박사라는 저자의 학위를 끌어와 계산기술을 암시함으로써 어떤 교육적 가치마저 담고 있는 것처럼 가지고 있다. 응? 근데 쓰고 보니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재미와 교육적 가치라니?

 

물론 이 책에서 소개되는 몇가지 방법은 수학 학습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연산 기술은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기술로써 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 책의 순수한 환희를 무시하는 기분이 든다. 책의 표지에 쓰인 문구에는 공감하지 못하지만, 책의 디자인은 마음에 든다. 파이라는 오묘한 기호는, 독자들에게 씨익하고 미소를 지어보고 있다. 정말 이 책 다운 디자인이다.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하나의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책에서 소개되는 문제를 말 그대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오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펼쳐놓은 길이 얼마나 복잡했는지를 떠나, 이 여정을 즐거운 마음으로 마친 사람에게 데킬라 선라이즈를 슬쩍 건넬 것이다. 실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이 유쾌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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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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