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지침서 - 트라우마 사전 [도서]

작가는 캐릭터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글 입력 2020.06.10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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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소설과 같은 창작물을 만들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중학생 시절, 한창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에 빠져 살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 내 일과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컴퓨터 앞에 앉아 유명한 인터넷 소설들을 모으고, 다운 받고 그걸 담아 놓은 전자 사전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얼마나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면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전자사전을 집안 어딘가에 늘 숨겨두실 정도였다.

 

한창 인터넷 소설을 즐기던 시기에, 더 이상 읽을 거리가 없을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소설을 탐독하고는 이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글솜씨에 대한 나의 막연한 자신감으로 직접 소설을 작성하기 시작했었다. 그 시절엔 전문적으로 소설을 썼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읽었던 소설 들을 흉내 내며 메모장과 공책에 끄적였던 것이 전부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트라우마 사전’속의 내용처럼 캐릭터들의 트라우마에 관한 딜레마에 늘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크기변환]트라우마1.jpg

 

 

‘트라우마 사전’이 말하듯, 나의 캐릭터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항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고, 그 트라우마는 동기가 되어 캐릭터를 나름의 목표로 이끌고 갔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 썼던 소설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가령, 당시 인터넷 소설에서 유행하던 소재인 일종의 ‘무슨 무슨 신드롬’이라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할머니의 권유로 자칭 정신치료사라 일컬으며 프로젝트를 위한 실험을 하고자 하는 의학대학생들의 실험에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캐릭터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동기를 가지고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설정 자체를 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당시 내게 부족했던 것은 ‘트라우마’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구체적이고 탄탄한 설정을 정해놓지 않은 체 무작정 글을 써내려 갔다는 것에 있었다. 탄탄하게 구축 해놓지 않은 트라우마에 대한 설정은 일약 ‘캐붕’이라고 불리우는 캐릭터 붕괴를 불러일으켰다.

 

나의 주인공은 초반의 설정과 다르게 갑자기 쾌활해지거나, 갑자기 우울해지기를 반복했고, 주변 캐릭터들은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서 그런 상태가 되면 글쓰기를 중단하고 다른 소설을 쓰기 일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트라우마 사전’에서 강조하는 ‘맥락’을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두려움, 자기 의심, 불안을 느끼며 산다. (중략) 더 경험 많고 유능한 누군가가 그런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좀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범적인 예를 찾는다. 그 예가 바로 ‘맥락’이며, 사람들이 이야기 속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 사전> P.21

 

 

사실 정말 그렇다. 비단 소설 뿐만 아니라 만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에 감정 이입하고 주인공의 입장을 변호하려 한다. 같은 행동을 해도 주인공의 행동일 경우, 그 행동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소설과 같은 이야기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처음 책을 펼친 표면적인 동기가 무엇이었든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 하며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내’가 좀 더 잘살아갈 방법에 대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즉, 독자들은 주인공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인지하고, 맞서며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독자들 또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크든 작든 인생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이 ‘트라우마’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의 여정이 시작되는 이유도, 독자들이 시간을 내 책을 펼쳐 읽는 이유도 결국은 트라우마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크기변환]트라우마2.png


 

이 책은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캐릭터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것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감정적 상처를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지, 이러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것인지, 그리하여 결국은 트라우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혹은 해결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트라우마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을 이 책은 백과사전처럼 ‘ㄱ,ㄴ,ㄷ,ㄹ..’ 순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도저히 전부 읽어낼 엄두가 안났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모저모를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와 같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내야할 작가들에게 일종의 지침서와 같다.

 

사실 중학생 시절 소설을 쓰면서 내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어디 까지 적어야 할까 였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와 학교를 가고,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는 모든 과정 중에 어떤 장면을 얼마나 서술해야 할지 등과 같은 고민이었다.

 

‘트라우마 사전’이 말하는 것처럼 캐릭터는 압축된 즐거움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캐릭터들이 구구절절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건 독자들의 일상 속에서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캐릭터들은 현실 세계에는 없는 혹은 아주 드물게 접할 수 있는 압축된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독자들이 책을 읽는 근본적인 목적인 압축된 즐거움, 그리고 교훈은 결국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다.


 

‘캐릭터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장애물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 캐릭터의 과거와 맞닿아 있으며 특히 트라우마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트라우마 사전> P.14

 

 

트라우마 사전 속의 이 말처럼, 결국 캐릭터를 움직이고 그들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의 기저에는 ‘트라우마’가 있고, 독자들은 자신과 공통된, 혹은 비슷한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며 캐릭터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는지에 집중하며 자신의 삶에 적용할만한 교훈을 얻어가는 것이다.

 

나는 ‘트라우마 사전’을 통해 소설의 시작점은 트라우마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과, 그렇기에 그 트라우마에 대한 설정을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튼튼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방법은 또한 이 책 안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들의 언행을 구성하고 어떤 부분을 보여 줄지까지 전지전능한 신처럼 자신이 만든 작은 세계의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고 구성해야 하는 작가들의 곁에서 이 책은 선생님처럼 지침과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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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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