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내의 어머니는 뭐라고 부르지? '마더 인 로' [영화]

글 입력 2020.05.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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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놓고 즐기며 볼 수 있는 영화. 대낮에 볕을 맞으며 봐도 기분이 좋은 영화. 어지러운 오후를 지나온 늦은 밤, 아무 고민 없이 볼 수 있는 영화. 방 안 작은 캔들이 퍼트리는 묵직한 삼나무 향에 어울리는 영화.

 

이런 영화는 많지도 않고, 많더라도 꼭꼭 숨어있다. 눈만 돌려도 재생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불쾌함을 대비하고 봐야 하는 영화들이다.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다가 별안간 헐벗은 여자들이 남성 주조연을 접대하고, 화면 가득 달콤한 공기로 채워 간질거리다가 느닷없이 등장한 폭력마저 그 공기 안에서 서술한다.

 

딱 반절의 시야를 가진 그런 영화들을 나는 피해왔다. 잡히는 대로 보지 않고, 심사숙고를 통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최근, 이런 내 심사숙고의 무게를 훅 덜어줄 플랫폼, ‘퍼플레이’를 발견했다. ‘퍼플레이’는 여성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소개에 따르면 여성이 만들거나,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고 성 평등의 가치를 담은 영화들을 제공한다. 반가운 마음에 후다닥 사이트에 들어갔고, 별 고민 없이 이런저런 영화들을 만났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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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첫 번째로 본 영화가 신승은 감독의 <마더 인 로> (2019)이다. 딸 현서(임새라)의 자취방에 들른 엄마 형숙(안민영)은 딸의 집에서 예상하지 못한 인물, 민진(손수현)을 마주한다.


분명 친구와 같이 산다는 말은 없었는데,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민진이 형숙은 탐탁지 않다. 냉랭한 형숙과 달리 민진은 가리는 낯을 애써 숨기며 열심히 형숙을 대접한다. 옷이 몸을 삼켜버린 것 같은 형체로 혼자 바쁜 대화를 하며 머쓱함을 뿜어낸다. 생각나는 이야깃거리는 김치밖에 없는지, 형숙이 담근 김치에 대한 예찬을 장황하게도 풀어놓는다.

 

이런 민진의 시도에도 방을 가득 채우던 아슬아슬한 기운은, 민진의 높은 성적 덕에 틈이 생긴다. 민진의 보기 좋은 성적표를 발견하고 나서야 민진이 가까이해도 될 만한 인물이라 느낀 것인지, 형숙은 슬그머니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역시, 친해지는 데에 최고인 대화 주제는 공통의 적. 형숙이 자연스럽게 등록금도, 장학금도 제멋대로인 대학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어떻게 참았나 싶게 우수수 터져 나오는 형숙의 수다 덕에 민진도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둘이 만들어가는 분위기는 짤막한 영어 강의를 주고받으며 온도를 더해간다. 하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온도는 민진과 현서가 그냥 친구 관계가 아닌, 연인 관계라는 것이 발각되며 다시 심연으로 떨어진다.


웬만한 범죄자보다도 더 수그린 고개와 시뻘건 눈을 한 민진, 같은 눈을 하면서도 영어가 적힌 종이를 챙겨가는 형숙. 단순히 연인과의 동거를 기별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면 등짝 몇 번 맞거나 호되게 한 소리 듣고 끝날 일이다. 근데 형숙과 민진은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혼란스럽고 무거운 마음을 진 채 헤어진다.

 

누군가는 겪었을 법한, 누군가는 절대 겪고 싶지 않은, 누군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상황이다. 어찌 되었건 쉬이 노출되지 않는 그림을 영화는 현실적이고 이질감 없게 그려낸다. 누구나 겪는 어색한 첫 만남을 지나고, 누구나 먹는 김치찌개를 먹는 사람들. 따로 이름이 붙여지진 않았지만, 그 형태는 여느 가정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관계. 이름이 붙여지고, 정상 범위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

 

마지막 순간 울린 벨 소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온 형숙이 딸과 딸의 애인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찾아온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둘의 현실을 어질러 놓으려고 온 것일까. 후자의 옵션이 너무나도 쉽게 딸려오는 둘의 관계이기에, 나는 전자로 확신하고 싶다.

 

민진이 좋아하는 그 김치를 오래도록 먹고 살았으면.


 



[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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