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안녕, 다음에 또 만나요 - 최은희 필진 인터뷰

글 입력 2020.05.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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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나눠요!”


최은희 필진과 만남을 약속했던 날,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 받았다. 어렵지 않게 쓰일 수 있는 평범한 인사말인데 기분 좋을 것까지 있나 싶겠지만, 그날의 내겐 꼭 필요했던 문장이었나보다.


긴장하면 귀밑을 꾹꾹 눌러대는 습관이 있다. 덕분에, 낯선 사람을 만날 땐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낯을 가리는 중이라는 건 누구에게도 들통나지 않았으면 싶다. 부끄러운 건 둘째 치고 상대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있다.


그날도 비슷한 고민에 시달리던 밤이었다.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서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귀밑을 눌러대던 밤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건넨 명랑한 인사말에 괜히 녹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걱정 대신 설렘을 채우고 잠에 들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지 하면서.


 


안녕,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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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겨울의 끝에 내리는 눈은, 12월의 첫눈과 2월의 끝눈 사이에 끼인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곧 따뜻해지겠구나’하는 설렘과 마음이 물렁해지는 것에 대한 괜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함께 공존하는 그 미묘한 느낌도 좋아한다.

그녀의 글을 처음 읽었던 것도 마침 2월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눈이 많이 쏟아졌던 날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며, 다음 겨울까지 이만큼의 많은 눈을 볼 수 있는 날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안녕, 눈사람'이라는 제목에 시선이 멈췄다. 끝눈을 생각하는 요즘의 내 마음 같은 문장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그녀의 글 [안녕, 눈사람] 우리 가족은 비정상이 아닙니다를 클릭했고, 다음글 또 다음글로 옮겨갔다.

빈센트 반고흐가 ‘다만, “더 행복한 화가”가 되었을 것 같아서, 그러길 바라서 마음이 계속 아프다’는 문장으로부터, 에둘러 말하지 않고 아프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글 [Review] 이 빛이 그대에게 닿기를 - 빈센트 반 고흐 [공연]과, ‘나는 어쩔 수 없는 “머리에 설탕만 가득 찬” 사람이었나. 단것만 삼키려는 비겁한 사람이었던 걸까. 사탕을 녹이는 내 혀가 부끄러웠다’는 고백에, 혀의 윤리를 고민했던 글 [안녕, 눈사람] 소금물을 뱉고 싶을 정도로 짰다 - 티타임/밀사의 찻잔, 여러 글을 지나 다다랐던 '안녕, 눈사람'의 프롤로그 [안녕, 눈사람] Prologue: 안녕을 묻다가 기억에 남는다.
 


따뜻함이 그리우면서도 그 온기에 녹아내릴까 두려운 마음. 안녕하지 못한 마음을 들키면 왈칵 울어버릴 것 같은 걱정. 언젠가 들이닥칠 봄에 나만 홀로 뒤처지진 않을까 싶은 마음. 우리 마음속 작은 눈사람의 이야기이다.


- [안녕, 눈사람] Prologue: 안녕을 묻다 중에서



그리고 결국 안녕하지 못한 마음을 들키고 말았던 이 글의 말미에서야, 두려움과 불안함에 취약했던 나 눈사람 독자는 겨울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쏟아지는 눈에 미련 없이 내년을 기약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문장이 그렇게 따뜻한 문장인 줄 미처 몰랐다. 그리고 5월의 어느 날, 겨울 아닌 봄에 그녀를 만났다.

 
 
어둠과 아픔, 이야기가 있다면 어디든 가는 글


명색이 인터뷰인데 뭐라도 적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으로 들고간 노트북을 어색하게 펼쳐 두고 시작된 만남은, “이건 필요 없을 것 같아요!”라고 외치며 노트북을 덮던 나와,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문장을 주고받던 기분 좋은 인사들로 끝이 났다. 봄이 오는 건 두렵지만 당장의 축제는 즐기고 싶은 두 명의 눈사람이 개최한 축제 같은 만남이었다.

귀밑을 마사지하며 우왕좌왕 허둥대던 나는, 어느새 그녀 앞에서 시인의 꿈을 꾸었던 학창시절 얘기부터 자유롭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현재의 소망까지도 두서없이 늘어놓는 중이었다. 전부 말해놓고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하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나 그때야 비로소 내가 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그로써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건 넓디넓은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녀의 글을 읽고 경험했던 막연한 단어들은 비로소 문장으로 빚어졌다. 그녀의 글은 어둠과 아픔,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글이었다. 그 걸음의 이유는 명료했고 또 분명했다. 치유를 위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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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삶의 다양한 지점들을 자유롭게 디뎌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신과 의사를 꿈꾸던 날이 있었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공연예술의 매력에 빠지기도 했다. 아트인사이트의 필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더 많은 곳으로 시각을 넓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날들은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라는 꿈으로 촘촘히 또 단단하게 귀결되는 과정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문화예술로써 글의 소재는 제각각이었지만,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에 망설임이 없는 글, 그리하여 부단히 어둠 속을 들여다보고 그 어둠이 직접 되어보기도 하며 아픔과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글이라는 점은 같았다. 궁극적으로는 치유로 닿는다는 것도.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그녀와 내가 주고받았던 두서없는 이야기에 이름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대화의 이름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치유’였다. 무엇이든 치유가 될 수 있었다. 치유는 심리학이면서 공연이기도 했고, 문학이면서 글을 쓰기 위한 펜이기도 했다. 또한, 치유도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오늘의 앎이 되는 것,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또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모두가 치유였다.

‘정상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사람이 자신의 글을 통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알게’ 되는 일, 일면식 없는 독자로부터 글을 잘 읽었다는 인사를 전해 듣는 일, 글을 공유하면 누군가는 시간을 내어 링크를 클릭하는 일, 그녀가 목소리를 내는 일에는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녀의 글도 어딘가에 위로와 힘이 될 것이라는 작은 믿음 하에, 그녀는 세상에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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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범했던 어느 겨울날에,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침대에 누워 뉴스 기사 제목을 읽어내려가던 순간 머릿속에 흐르던 몇 초간의 정적을 잊지 못한다. 방엔 나 혼자뿐이었고 어떤 소리도 없었던 건 당연했는데, 그 정적이 그렇게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곧이어 추모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그의 팬이었던 그녀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도 추모의 자리에 함께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안고 그녀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문장을 전했다고 했다. 덧붙여 어두움과 아픔이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마음 아프지만, 그녀는 그래서 더더욱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엔 확신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글에 담긴 진솔한 목소리가 문장으로 발화되는 데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녀가 세상에 묻는 안녕, ‘안녕, 눈사람’의 수신자에는 그녀 자신의 눈사람도 포함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과 세상을 부단히 들여다보는 일, 안녕을 묻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렇게 ‘안녕’이라는 물음에 깃든 수많은 주저함과 진심, 노력, 그리고 용기를 상상했다.
 
 

Dear.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몇 글자를 적었다.

공연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엔 공연리뷰를 위한 글이 아닌, 오늘을 모조리 저장해버리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담긴 순전히 기록을 위한 글을 쓴다. 그리고 오늘, 그녀와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불편한 자세로 무릎에 노트북을 얹고 메모장을 열었다. 글을 위한 글이 아닌 기록을 위한 기록.

오늘의 만남이 특별했던 건, 그녀는 내 글을 나는 그녀의 글을 읽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 글로부터 베이지와 브라운 사이의 어떤 색을 떠올렸다던 그녀의 말은, 거창하다 덧붙이며 웃었지만 정말로 나의 오늘을 살게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작은 진심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함께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심만으로도 통하는 세상이 가능했던 하루였다.

간만에 바람이 선선하고 적당하게 부는 날이다. 오늘 같은 날들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 바람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이렇게 시원한 날, 기분 좋은 날. 오늘 같은 날들이 부디 내 삶에 또 그녀의 삶에 조금 더 자주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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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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