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등바등 살지 말자 '파도를 걷는 소년' [영화]

파도와 인생
글 입력 2020.05.19 15: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처음엔 막 파도 잡겠다고 안간힘을 쓰면서 탔는데, 가만히 보니 길이 보이더라"


영화 예고편에서 나를 사로잡은 문구이다.

 

파도를 잡으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이 떠오르며 마치 우리네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지 때문이다. 파도는 대자연인 바다가 만들어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는 밀물과 썰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바다가 소통하는 방법처럼 보인다. 넓고 거대한 바다는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준다. 물고기와 해산물을 제공해주며 이득을 줄 때도 있지만 파도를 일으켜 인간을 위협하기도 한다.


바다가 표현하는 분노는 너무나도 거대해 인간을 한 순간에 자연 앞에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인류가 처음 바다로 진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간은 바다를 정복하지 못했고, 파도를 거스를 수 없다. 이런 거대한 흐름을 타고 인생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서퍼'들이다.

 
 


1. 서퍼들의 이야기?



영화 제목과 위에 작성한 서두를 보면 서퍼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포커스는 '서퍼'에 맞춰있지 않다.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며 외국인 노동자가 받는 차별을 다루며 이들이 서핑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다룬다.


주인공 '김수'와 '필성'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브로커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은 조선족 업자 '갑보'이다. 수와 필성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잘 챙겨주는 듯 보이지만 빚으로 묶여있는 관계이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간다. 그렇다. 수는 외국인 노동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주 노동자 2세'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외국인 노동자였고 수를 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수는 갑보의 도움을 받으며 엄마를 찾아 나설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반면 필성은 토종 한국인이다. 그렇지만 갑보에게 진 빚이 있어 수를 따라다니며 함께 일을 한다. 어떤 이유인지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기에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다.


 

6.jpg

 


수는 폭력 전과로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를 선고받고 해변의 서핑 클럽으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똥꼬. 그는 일전에 길거리에서 브로커 일을 하던 수와 만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시비가 붙은 좋지 않은 만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만남은 영화라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만남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똥꼬는 수를 서핑의 길로 이끈다. 수는 처음에는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점차 서핑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후의 스토리는 수가 서핑을 배우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 이주노동자와 서핑의 관계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라는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파도, 서퍼와 이주노동자를 연결 지었을까. 영화의 감독인 최창환 감독은 '방황하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래서 처음 구상한 내용은 ‘파도 타는’ 부분이 빠진 학교 밖 소년들 이야기였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16, 17살 아이들이 주먹질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겪는 혼란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 제작사에서 영화 제안을 하며 '서핑', '청춘' 두 가지 키워드는 꼭 넣어달라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파도를 걷는 소년>이다.


 

9.jpg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주로 건너가 1년을 살며 제주의 문화와 서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서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구나를 깨달았다고 한다.


 

서핑을 하고 있다 보면 바다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무한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든다. “서핑은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까. 서핑을 하게 된 후로 계속 차트와 바다를 보게 되는 일상의 습관도 생겼다. 매일 계속해야만 하는 즐거움이 나를 만들고 살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서핑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제주는 한 달 살기 열풍이 불며 수많은 관광객이 넘어가고 있다. 물론 지금은 안타깝게도 코로나 19로 인해 침체되어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육지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던 현대인에게 청정제주, 여유롭고 하고 싶은 것 모두 할 수 있는 이미지의 제주는 꿈과 같은 곳이 되었다. 그런 반짝이는 제주의 모습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했다. 바로 이주 노동자 2세들이다.



지금 제주는 이주민 문제가 심각하다. 뉴스를 보는데 이주민 2세들은 지표상에 잡히지도 않는다. 1세들은 존재하지만 2세들은 차별이 두려워 자신이 2세임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동력은 물론 결혼할 신부까지 수입하는 나라, 학교 밖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이주노동자 2세들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이 사회가 언제까지 간과할 수만은 없다고 봤다. 도시 출신인 내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제주민들의 마음과, 예상치도 못한 자연의 위대함을 제주도에 살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유입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2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남일로 여기며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만 바라보았다. 시사회 이후 GV 시간에 위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주민 2세들은 기록에도 찍히지 않는다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이지만 이주민 2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순간 그들의 일상은 무너지고 차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면 서양인들이 아시아권을 인종 차별한다고 그렇게 분노하지만 정작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4.jpg

 


이주민 2세,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은 제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과 정부 정책의 사각으로 인해 마땅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다문화 아동 청소년의 증가세는 어느 정도인가


2019년 청소년인구(9〜24세)는 876만5000명으로 1982년 정점(1420만9000명)을 찍은 후 감소 중이다. 2018년 다문화학생은 전년(10만9000명)보다 11.7% 증가한 12만2000명으로 다문화학생의 비중(2.2%)이 전체 학생의 2%대에 진입했다. 다문화 초등학생의 비율은 3.6%로 다문화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취학 아동 사이에서는 훨씬 더 비율이 높다.
 
- 머니투데이 더리더, 박옥식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장, “다문화 청소년, 글로벌 인재 키우자”, 2020.05.19

 

 


위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나라 청소년 인구는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지만 그 안에서 다문화 청소년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은 흘러온 세월에 비해 크게 증진되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미지는 가난하고 무언가 모자라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언제부터 이런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 모르겠다. 무의식에 남겨진 그들의 이미지는 아마 우리 정서 깊은 곳에서부터 굳어진 이미지일 것이다.

 



3. 가만히 보니 길이 보이더라



“처음엔 막 파도 잡겠다고 안간힘을 쓰면서 탔는데, 가만히 보니 길이 보이더라”


파도를 잡으려고 억지로 억지로 몸을 움직이면 파도는 인간을 밀어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파도와 한 몸이 된다. 그렇게 파도와 하나 되어 자연을 즐기고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12.jpg

 


파도는 인생과, 서퍼는 우리로 매치할 수 있다. 이주민 2세로서 차별을 견디고 살아왔을 수가 여전히 불법적인 일을 하며 움츠려 살다가 파도를 만났다. 힘겨운 인생이었지만 파도를 타기 시작하면서 수는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반항적이고 사회 부적응자였던 억지로 파도를 붙잡으려 하다 수도 없이 물을 먹었을 것이다. 마치 그의 인생처럼 말이다. 하지만 흐름을 깨닫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나서부터는 그의 인생이 밝아졌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해야 할 일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억지로 아등바등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말자. 파도를 타듯 흐름에 몸을 맡기고 중심, 균형만 잡는다면 어떤 파도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20200517023715_vggaglpu.jpg

 


[김상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