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년 전 내게, 다시 쓰는 편지 [음악]

글 입력 2020.05.1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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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수개월이 지난 초봄에 본, 4문항 정도의 필기 시험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3번 문제였다.

 

3. 1년 전 자신에게 편지를 쓰세요.


편지라, 음. 첫 시작을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볼 지 아님 먼저 ‘소희야’라고 불러 볼 지부터 고민되었다. 막상 내게 쓰려니 운을 어떻게 떼 보아도 거창하고 어색해보였기 때문이다. 막막했다. 눈 앞의 놓여진 편지지이자 답안지였던 A4의 공백만큼이나 내 머릿 속에는 아무것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첫 문장부터 막힌 내게 쓰는 편지엔 결국 내 머릿 속 둥둥 떠다니는 몇 가지 안되는 문장마저도 적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내겐 사적이고 내밀했던 편지글이 결국 형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읽히게 될 거라는, 이상한 찝찝함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무언갈 들키면 안된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뱅뱅 돌려 하고 싶은 말 몇 자를 동어 반복처럼 적어냈고, 돌아오는 길에 아마 그 편지를 구겨버리고(찢고 싶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편지이자 내 답안지이기도 했던 글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문항에 대한 몇 가지 답안을 준비하게 되며 나는 감흥 없는 그 편지내용을 다시 머릿 속으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기억 속 희미해진 글씨를 더듬 더듬 읽어보고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때 무언가를 안쓴 게 아니라 못 쓴 거였고, 실은 몰라서 못 썼을 수도 있었겠구나. 면접에 대비해 미처 다 못담았다고 생각하며 쓴 편지를 말로서 설명해보려 해도 마땅한 이야깃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내게 썼던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년 전의 나는, 된통 막막한 속마음을 풀어낼 곳이 없어 무작정 걷곤 했는데, 걷는 일, 그게 다였다. '어중간한 시간이 그 날의 산책을 부른다. 날씨는 보폭을 결정하고, 늘어논 고민들이 발걸음에 무게를 더한다.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계속 걸으라 말하고, 간혹 보이는 것들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비쳤던 나의 글에 대해 당시 면접관이 내게 했던 한 마디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비유가 많네요." 그리고 그에 대한 조언으로, 글을 다르게도 표현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도움이 될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감사했지만 또 마냥 감사할 수는 없을 것 같던, 변명을 다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면접장을 터덜터덜 나왔다. 괜히 비유의 뜻도 알아보았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이라는데, 사실 나는 빗댄 것이 없는데 - 단지 나는 내 걷기에 관해 쓴 것인데 - 툴툴대며 또 걸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주 자신있게 그 편지, 잘못된 그 답안지를 다신 볼 일이 없을거라 확신했다. (지금은 어딘가 고이 잘 있을 거라 생각된다.)

 

*

 

그리고 얼마 전, 어떤 노래를 듣고선 문득 그 편지를 다시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편지를 써야했던 나는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젠 1년 하고도 더 된 '매일이고 걷곤 하던 애'에게 할 말이 생겼다.


이젠 알고 쓰는, 다시 쓰는 이 편지 역시 아마 비유가 가득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직접적으로 쓸 수 있다고, 흔한 발라드의 가삿말처럼 나 아닌 누군가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닿고자 하는 글일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내게 다시 쓴 편지는 고이 간직한 채, 편지를 대신해 줄 그 고마운 노래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루시드폴 - 종이새


천천히 나를 접어주는 그대

빈 책상 위의 꽃이라도 될까

그래 무엇이라도

난 아무 상관없을 테지


기다리다 하루가 지나 또 잠이 들면

어느새 그대는 내게

이렇게 날개를 주었네

눈을 감으면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천천히 나를 접어주는 그대

빈 책상 위의 꽃이라도 될까

그래 무엇이라도

난 아무 상관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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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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