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뜻한 그림책 에세이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도서]

글 입력 2020.05.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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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림책의 주인이었던 그대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한때 그림책의 주인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어느 그림책의 주인도 아닌 나.


나는 어렸을 때 책을 참 좋아했다. 한글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나도 다른 어린아이들처럼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몇몇 그림책들은 아직도 내용과 그림들이 생각날 정도로 좋아했다.


엄마는 자주 인물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나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시곤 했다. 엄마, 오빠와 셋이 둘러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번이고 엄마가 읽어주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을 내가 처음 엄마에게 읽어준 순간도 생각난다.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던 순간.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떤 그림책의 주인도 아니다. 책을 모아서 어린 사촌 동생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본가의 책장 어딘가를 보면 몇 권 정도는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그걸 ‘나의’ 그림책이라고 부르기에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림책과 너무 멀어진 채로 살아왔다.



 

그림책 에세이,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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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은연중에 그림책은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은 그림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뿐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어른이 쓴 ‘그림책 에세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은 제목, 표지의 삽화들과 문구부터 따뜻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등의 문구들.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



‘그림책에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니!’라는 놀라움을 심어주었던, [곰씨의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교에 온 후로 혼란한 도시 서울에서 타지 생활을 하게 되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홀로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내향형 인간이라 혼자서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이 아니라 아주 많이. 이런 나의 모습이 나와 함께 하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섭섭함을 줄 수도, 혹은 게으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00517_192941440.jpg



그림책 [곰씨의 의자]에는 나와 비슷한 곰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곰씨는 한적한 숲에 놓여있는 의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지친 탐험가 토끼에게 기꺼이 의자의 한쪽을 내어준 후로 곰씨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토끼들이 의자를 떠나지 않는다. 곰씨는 그들을 의자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토끼들은 곰씨와 함께 있을 방법들을 고안한다.


자기만의 세계와 편안한 시간을 지켜내고 싶지만, 토끼들에게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끙끙대는 곰씨의 모습이 가여웠다. 안타까운 건 토끼들도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곰씨는 결국 지쳐 쓰러지고, 깨어나서는 울다가 더듬더듬 이야기한다.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제 꽃을 살살 다뤄 주세요.”

 


곰씨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했을까. 나에게도 곰씨와 같은 용기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에게 있어 토끼들이었던 많은 사람에게, 미숙한 방식으로 대처를 해왔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답장을 하지 않거나, 나를 존중하지 않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우리가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함께’와 ‘홀로’의 시소 타기



[곰씨의 의자]는 마냥 혼자만의 시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책은 아니다. ‘함께’와 ‘홀로’ 사이의 갈등과 소란과 치우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곰씨가 지키려 애썼던 혼자만의 의자는 ‘홀로’의 안온함과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함께’여서 가능한 즐거움과 소통으로부터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 58p

 


작가의 말처럼 ‘홀로’와 ‘함께’는 공존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한쪽에만 치우쳐서 살 수는 없다. 우리는 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며 시소 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곰씨가 혼자만의 의자에서 일어나 숲을 거니는 장면이 주는 메시지처럼, 혼자만의 시간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홀로’와 ‘함께’ 사이를 빈번하게 오갈수록 우리는 더 강해지고 우아해질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단지 우리에겐, 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용기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림책이 어른에게 줄 수 있는 위로



[곰씨의 의자]뿐만이 아니라, 이 에세이에서 소개하는 수많은 그림책들이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왜 그동안 그림책은 단순하고 뻔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을까?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느꼈던 감정들을 맑은 언어로, 솔직하게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은 단순히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그림책이 작가에게 준 위로가 그대로 전달되는 책이다.


자신이 가진 이야기와 그림책의 내용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작가의 서술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나의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세이를 읽으며 나의 뾰족함도 많이 깎여져 나간 것 같다. 순하디 순하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책이었다.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



지은이 : 라문숙


출판사 : 혜다


분야

에세이

 

규격

130*188 / 올 컬러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0년 03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67194-5-6

 

 

 

송진희.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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