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시를 쓰듯 글을 쓰는 사람 - 김해서 에디터와의 인터뷰

5월의 어느 오후, 그녀와 함께 나눈 이야기들
글 입력 2020.05.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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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듯 글을 쓰는 사람.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정말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장 사이사이 빼곡히 담긴 진심에 마음이 일렁거렸고, 담담한 고백에 때론 눈물이 고였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누구보다도 따스하고 사려 깊었다.

 

글 앞에선 종종 스스로가 부끄러워 멀리 도망가 버리던 나였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진솔한 목소리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섬세하고도 다정한 시선으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2016년부터 아트인사이트에서 오피니언과 여러 에세이를 연재해 오고, [Project 당신]을 처음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던 김해서 에디터.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해서님을 5월의 오후 어느 합정의 카페에서 만났다. 맑은 눈동자로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녀는 진실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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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아트인사이트 가족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자기소개는 너무 어려워요. 제가 누구인지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기보단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선을 통해서 에둘러 말하고 싶거든요. 자기소개라는 말이 가장 안 어울리는 유형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한마디로 정리를 해보자면, 제가 보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이름이 너무 예뻐요. 이름에 담긴 뜻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한자로는 바다 해(海), 상서로울 서(瑞)에요. 여기서 상서롭다는 ‘좋은 기운이 가득한’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거예요. 좋은 기운이 가득한 바다, 또는 좋은 기운이 바다만큼 크다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저도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 아트인사이트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궁금해요.

 

친구의 소개로 아트인사이트를 알게 되었어요.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는데, ‘너는 평소 글 쓰는 거 재밌어하고 좋아하니까 한번 지원해보면 어때?’라고 권유를 받아서 에디터 모집에 지원하게 되어 오랫동안 몸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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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away 매거진 Vol.2 'The Runaway'


 

- 현재 독립 매거진 Hideaway의 에디터, whatreallymatters(마포 디자인 출판 지원센터)의 에디터, 그리고 <오늘의집>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계세요. 에디터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동기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실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글만 쓰고 살 수 없으니 현실적인 방안으로 에디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요. 그저 재미있어서 해 온 활동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니 에디터라는 넓은 의미의 직업이 된 것 같아요.

 

사실 편집자의 일은 순수 창작을 하는 것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죠. 그럼에도 원하는 대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개하는 일은 창작과도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할 때 생기는 재미있는 지점에 흥미를 느껴요. 글만 있는 것보다는 이미지가 함께 있을 때 훨씬 생생한 작업물이 만들어지니까요.

 

 

Hideaway 매거진을 만들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대학생 시절, 광주광역시 문화 재단에서 지원하는 <무명인>이라는 소잡지를 만든 적이 있는데요. 인터뷰를 하거나 개인 에세이를 쓰는 등 총 다섯 개의 호에 참여했어요. 기획에도 상당히 많은 참여를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틀보다는 소주제 내에서만 참여하다 보니 아쉬움이 남았어요. 내 스타일 대로 전반적인 틀과 내용을 구상해서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Hideaway를 만들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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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서 만났던 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저는 Hideaway 2호에 실렸던 일러스트레이터 도담님과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사실 도담 작가님의 팬이었어요. 평소 작가님의 취향이나 그림의 분위기를 동경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의 스타일이 친근한 이미지는 아니라서 인터뷰가 아니면 쉽게 만나 뵙기 힘들 것 같아 꼭 인터뷰하고 싶었어요.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작가님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어딘가 통하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저희 모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어서 그랬나 봐요.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가 몰랐던 지점들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이후로 작가님의 작품에 더 애정을 가지게 되었어요. 작가님과는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어요.

 

 

- 에디터로써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매거진 Hideaway 2호를 출간하고 나서 홍대 ‘모티프 커피바’라는 공간에서 전시했을 때에요. 모티프 커피바는 ‘모티프북스’라는 서점과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Hideaway 1호를 무가지로 배포할 때 모티프북스에 직접 입고를 했었는데 그때 저희를 되게 좋게 봐주셨어요.

 

감사하게도 2호를 출간하고 나서 모티프북스 측에서 직접 전시를 해보라며 저희에게 제안해 주셨어요. 전시는 ‘Hideaway Archivist'라는 이름으로 한 달 동안 진행했어요. ‘사람들 마음속엔 은신처(Hideaway)에 대한 다양한 상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걸 아카이빙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의미로 접근했던 전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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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해서님이 아트인사이트에 연재하셨던 에세이 중 <시를 다시 쓸 때까지>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혹시 지금은 다시 시를 쓰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올해부터 다시 시를 쓰게 되어서 <시를 다시 쓸 때까지>는 중단되었어요. 지금은 박연준 시인님과 함께하는 시 모임 ‘모과’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박연준 시인님이 나중에 등단하거나 책을 냈으면 하는 학생들을 모아 불러 소수 인원으로 진행하는 모임이에요. 한 달에 1번 만나고 있는데, 매번 시 두 편 정도를 작성해서 가요.

 

 

- 처음 시를 썼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음, 아마 중학생 즈음부터 글을 썼는데 그땐 거의 일기와 비슷한 수준의 글이었어요. 시라는 형태를 본격적으로 썼던 건 고등학생 때였고요. 그런데 사실 정확한 시점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제게 시라는 존재는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곁에 자리 잡은 거여서.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보면서 아, 나도 이런 형태의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시인이 될 거야!’라는 생각보다는 ‘문학? 한 번 배워보지 뭐’라는 생각이 더 강했고요.

 

 

-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인지 궁금해요.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사실 좋아하는 시인을 정해놓지 않아요. 좋아하는 작가, 영화감독, 음악인도 없어요. 단지 어떤 ‘작품’을 좋아할 뿐이에요. 작품을 볼 때 사람을 보려고 하지 않아요.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잘 아는 어떤 시인이 쓴 거라고 생각하면 그 시인의 얼굴이 떠올라서 오히려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는 데에 방해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관심 있는 건 왜 이런 제목이 나왔고 어떤 방식으로 문장을 전개하느냐이지 그 문장을 전개한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거든요. 작품 자체에 몰입하는 게 더 좋아요.

 

 

- 그럼 좋아하는 시집은 있으신가요?

 

강성은 시인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김경주 시인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라는 시집을 좋아해요. 그리고 박연준 선생님의 산문집도 좋아해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소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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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님의 SNS 프로필에 쓰여있는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삶에 대한 해서님의 태도를 함축한 문장인가요?

 

네, 맞아요.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문장이에요. 2년 전에 혼자 썼던 시의 한 구절이기도 하고요. 그 시는 마음이 아프거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리면서 버티는 장면을 담은 시예요.

 

사실 삶이란 건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잖아요. 내 삶이긴 하지만 온전히 내 삶인 것도 아니고, 의지대로 되는 것도 없죠.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엄연히 지킬 수 있는 영역이란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글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요. 즉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뜻이에요.

 

 

- 저는 종종 제 감정과 생각들이 부끄러워 글을 쓰지 못할 때가 많아요. 마음을 검열하느라 바빠서 무미건조한 글을 쓸 때도 있었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글을 이내 부끄러워 지워버린 적도 많아요. 그런데 해서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세요. 글 앞에서 진솔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저는 글과 내가 정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면 안 돼’, ‘타협하면 안 돼’라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게 되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내용일지라도 왠지 모르게 쓸 힘이 생겨요. 다 말하고 나면 후련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걸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냥 일단 써요. 내 안에 묵혀두기엔 너무 많은 감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쓰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안 쓰면 마음이 찜찜해요.

 

‘지금 이 문장이 다른 사람 눈에도 정확하게 읽힐까’에 대해서만 고민해요. ‘내가 너무 위축되어 보이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면 내가 너무 형편없어 보이지 않을까’, 같은 건 고민하지 않아요. 지난 Hideaway 2호에 엄마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저희 엄마는 그 글을 읽으시곤 굉장히 좋아하셨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우셨어요. 저는 그때 그냥, 뭔가 더 확신을 얻었던 것 같아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표현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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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그 외에도 다른 취미활동이 있으신가요?

 

네, 필름 사진 좋아하는데 필름 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요즘은 쉬고 있고요. 저는 유튜브 보거나 음악 듣는 거 좋아해요. 주로 듣는 장르는 영화음악이에요. 최근엔 영화 <아가씨> OST를 들었고,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와 크레이그 암스트롱(Craig Armstrong)의 음악도 자주 들어요.

 

 

- 현재 서울에서 살고 계신데,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부암동이요. 윤동주 문학관 있고, 환기미술관 있는 동네요. 버스 타고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내려서 근처에서 밥을 먹고 쭉 걸어 서촌까지 내려오는 걸 좋아해요. 한여름 낮엔 힘들지만 봄이나 여름밤에 걸으면 정말 좋아요. 지대 자체가 높아서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고 싶을 때 가요.

 

 

-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어요. 10년 뒤 해서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10년 뒤에는 제 이름으로 된 책, 시집이나 산문집을 여러 권 낸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꾸준히 써야죠. 그리고 사실 인생에 큰 포부 같은 거는 딱히 없어요. 그냥 언젠가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고, 고양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은 정도예요. 그 정도의 인간. 지금은 비록 고양이를 키우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키우게 된다면 삼색이면 좋겠어요. 검정, 주황, 흰 털이 섞인 아이요. 

 


interviewee. 김해서

interviewer. 임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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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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