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A

글 입력 2020.05.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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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치는 지인이 많아서 궁금했던 사람이다. 분명히 이곳저곳 친구가 되어 있는데 잘 몰라서,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했다.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그렸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우선 자기소개 해주실래요?"

"아하하, 뻘줌하네요. 그냥.. 취준생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이런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수없이 고민하고 계속해서 쓰고 말해왔던 내용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알아가고 싶어서 대중적인, 통상 으레 하는 질문을, 인사를 했다. 미안하게도.

 

"저는 영향력이 있는 직무를 하고 싶어요. MD나 기획자 이런 쪽으로. 얼마 전에 강점분석을 했는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나오더라구요. 전 연예인도 아니고 (웃음) 저 자체 사람으로써는 인정받기 어려우니까, 저는 제가 소개한/기획한 상품이 대중에게 사랑받고 인기있으면 좋겠어요. 상품은 내 대리자인 것처럼."


말투, 목소리가 정갈해서 듣기 좋았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회색 배경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로 배경을 회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콩테로 머리카락을 먼저 그리고, 얼굴을 지나갔다. 상의도 간단하게 그렸다. 보라색 머리카락, 초록색 눈이 느껴졌다. 눈은 덮었다. 나는 당신을 아직 알아가는 중이니까. 얼굴 묘사는 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파악했다. 옷은 흰색으로 덮었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잡힌 후. 애매랄드와 파란색, 그리고 자주색, 노란색 등으로 조금씩 아쉬운 부분을 채웠다. 기본 색감에서 빠진듯한, 빈 부분이 느껴지는 곳에 색을 아주 조금 채워 넣으면 훨씬 더 풍부해진다.


그리면서 알았다. 회식 때 볼 때마다 인사만 하고 지나갔는데, 매번 왠지 알듯 말듯 미묘하게 흐르는 이 감각은, 카리스마였다.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 그래서 회색과 보라색, 초록색의 대비가 느껴졌나보다.


"카리스마가 좀 있으신 것 같아요."

"카리스마요? 음.. 제가 스스로에게 단호한 편이라 그런가? 가끔 듣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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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을 그려줬으면 해요? 외모에 대해 스스로 드는 생각이 궁금해요. 그림은 어차피 외적인 모습만을 그릴 수밖에 없으니까, 완전히 집중을 해보자면요."

"저는 어디 구체적인 부분이 예쁘다, 좋다 보다는 인상이 좋고 싶어요. 인상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낯빛'이라는 단어도 얼마 전에 썼고."

"좋아요, 그럼 웃는 모습 그리는 거 어때요? 어떤 색 좋아해요? 좋아하는 색으로 그려드릴게요!" 

"노란색이요. (웃음)"


새로운 도전이어서 신났다. 좋아, 그럼 노란 얼굴을 그려야지. 일단 얼굴을 노랗게 칠했는데, 이제 어쩌지..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웃는 눈을 그렸다. 그리고 보라색 머리카락, 헤어스타일이 참 마음에 든다. 초록 눈썹도 그리고. 에메랄드색 상의도 그리고, 더 기분 좋은 입꼬리도 넣었다. 회색 배경도 넣었다. 노란색 포인트도, 군데군데 섞고, 볼에 쓴 붉은 색을 머리카락에도 조금씩 넣었다. 상의는 더 밝은 느낌을 주고 싶어 흰색을 좀 더 덮었다. 확실히 쓰이는 색깔이 첫느낌이랑 비슷하다. A님은 이런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구나. 콩테로 라인까지 넣으니 캐리커쳐 느낌도 났다. 평소에 그리던 스타일이 아니라서 조금 어색하고 낯설기도 했다.



A 2.jpg



"밝고 활기찬 기운이 그리는 데도 많이 느껴지네요. 짠, 여기 그림 완성됐어요. 어때요?"

"와, 내 웃는 모습이다. 어? 음.. 지은님 다른 그림들에 비해 뭔가 제 그림은 다른 느낌이 들어요. 아, 주황색 빨간색 이런 붉은 계열이 없네요."


그러게요. 그냥, 이런 느낌이 들어서 표현했을 뿐인데.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당연히 답하기 어렵죠. 이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걸요.' 라고 시원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줘서 고마웠다. 웃으면서 그림을 봤다. 나는 내 그림이 어색한데,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

 

"저 이거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궁금했어요"

"전 예전에 '유럽에 내 영혼이 있어'라고 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어요. 한 학기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끝나고 배낭여행도 혼자 갔어요. 일반적인 유럽과 미국 이미지가 있잖아요? 도시 안에 있는 공원같은 소소한 자연 느낌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유럽을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서울도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서울숲이에요."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긴장도 풀리고, 어색함도 풀려서 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내 고민과 일상, 살아 온 얘기를 풀어내고 A님도 이야기하고.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또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고. 나도 듣는 게 너무 좋아서 대화에 집중했다. 너무나 힐링되는 시간. 단어 선택을 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신중하면서도 배려가 많고, 진중한 태도가 느껴졌다. 그래서 무게감? 같은 카리스마가 보여졌나보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난번에 친구와 호주를 같이 갔었더니 함께 하는 여행의 맛을 알게 되버린 거 있죠." 

"저는 외향적인 편이라서 혼자 여행하면 별로일 거 같은데, 왜 혼자 여행하는 게 좋았어요?" 

"평소에는 다른 사람 신경을 너무 많이 쓰는 편이어서요, 날 아무도 모르는 그런 여행지가 좋아요. 한국어가 들리면 또 신경쓰이고 하니까. 아는 사람 하나 없으면 해방감이 든다고 해야할까요. 좀 더 자신있어지고, 활기차지고, 자주 웃게 되는 제 모습이 좋아요."


여행 이야기를 하는데, 얘기하는 모습의 자세 -어깨선과 머리카락이 연결되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는 색 많이 안쓰고 단촐하게,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살구색과 애매랄드 색만 썼다. 노란색 포인트 조금. 콩테 선맛에 색깔 아주 조금. 아, 마음에 든다. 이런 담백한 느낌이었거든. 회색바탕에 보라색과 초록색, 민트색을 가진 사람이다.



A 3.jpg

 

 

사람을 만나고 환기를 해야 해. 어차피 잘 될 거니까. 비슷한 점도 많고, 또 반대되는 점도 많아서 끌리고. 이렇게 종종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차피 겹치는 그룹이 많으니 가끔씩 보겠지만. 이제는 어색한 인사가 아닌, 웃으면서 근황을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기쁘다. 이렇게 하나씩 사람을, 사람의 세계를, 세상을 알아간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는 책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사람 그 자체인가보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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