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열차가 닿는 곳의 이야기 - KTX 매거진 [도서]

“삶은 여행, 여행은 삶”
글 입력 2020.05.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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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KTX에 오른 건 4월이 떠나가면서 5월과 함께 6일의 황금연휴를 맞이하는 시점이었다. 일정하게 출퇴근하는 사람으로서 맞이한 연휴는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어디 멀리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결국 나는 그 기간을 본가에 내려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도착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기차를 타러 가는데, 역과 열차의 칸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석가탄신일부터 어린이날까지의 황금연휴를 맞이하는 설렘과 더불어 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분위기가 이질적으로 차내에 가득하다. 답답함을 느끼며 다시 한번 마스크를 고쳐 쓴다.


숨쉬기는 갑갑하지만, 열차가 출발하면서 창밖에 비치는 풍경을 보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탁 트인 기분이 든다. 어느 상황에서건 기차만이 주는 감성은 항상 그대로이다. 철로를 따라가며 마주할 수 있는 펼쳐진 논밭과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아직 떨어지기 아쉬워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꽃들과 그게 무색하게도 맘껏 뽐내고 있는 녹음까지. 계절에 상관없이 기차를 타며 차창에 비치는 고즈넉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 그저 종착역까지 열차에 머무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전에 기차를 언제 탔었나, 또 어디를 가기 위해 탔는지 떠올려보았다. 대부분 일을 하기 위해, 그리고 본가를 들르기 위한 것이었음을 떠올린 후, 제대로 기차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울적하다. 마음 한 쪽에 있었지만 항상 나중에, 다음에 하는 식으로 미루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창을 다시 바라보니 스쳐 지나는 풍경이 아쉽다. KTX에서 중도하차라는 이룰 수 없는 상상을 떨치며 창에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그러자 앞 좌석에 부착된 그물에 담긴, 잡지 표지의 슬로건이 눈에 들어온다.

 


“삶은 여행, 여행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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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 여행은 삶.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 이만한 슬로건이 또 있을까. 내려야 할 역을 벗어나 무작정 계획 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에 왜인지 위로를 건네받은 기분이다. 싱그러운 푸름이 가득 담긴 사진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하동에 대한 궁금증이 일게 한다. 책 속에 담긴 풍경을 넘겨본다. 고속 열차만큼 익숙한 이 잡지는 KTX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KTX 매거진이다.

창간한 지 16주년이 된 KTX 매거진은 KTX가 개통하면서 함께 탄생했다. 매월 10만 부 이상 발행되며 KTX뿐만 아니라 ITX-새마을, ITX-청춘 전 좌석에 고정 비치돼있다. 각 지방 여행지와 KTX 서비스, 코레일 관련 소식 등을 담고 있으며 탑승객들을 위한 열람용 잡지이다. 2012년 1월부터 온라인 열람 및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열람도 가능하다.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KTX 매거진의 올해 출간호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기사를 소개하려 한다. 아래 이미지는 KTX 매거진 열람 사이트를 통해 해당 기사 속 사진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2020년 01월호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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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연한 과거가 현재를 빛내 주는 충남 공주를 여행했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를 소개하며 여는 첫 문장이 마음을 끈다. 항상 공산성과 그 앞의 흐르는 금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수백 년 전 백제인들이 바라보았던 풍경도 이랬을까 하며 시간과 역사의 흐름에 대해 맥락 없이 생각을 이어가곤 했는데, 기사에서는 공주시의 현재의 모습과 더불어 과거의 이야기를 섬세한 문체로 풀어낸다.

김규보 기자는 공주에 담긴 백제의 역사를 중심으로 그 특색이 어린 장소를 소개한다. 그가 송산리고분, 국립공주박물관, 그리고 공산성을 묘사하는 글을 읽고 있으면 수없이 가 보았던 장소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읽고 다시금 공주를 떠올리게 된다. 글을 쓰려는 소재에 대한 그의 지식의 깊이와 더불어 애정이 느껴진다.
 

 

바깥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옛 사람의 충일한 감각이 전해진다. 여기에 성이 없는 장면을 그리는 일을 망상으로 만드는 자연스러움이, 그만큼의 역사가 알차게 숨 쉬고 있다. 겉이 이러하다면 속도 되는대로 꾸밀리 없다. 현재 정문 격인 금서루에서 공산성 여행을 시작한다. 돌이 차곡한 벽을 훑으며 금강과 공주를 대면한다. 이 정경을 무어라 말할까.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는 새로이 드러나는 사물들. 도시가 금강의 흐름을 느릿하게 거두고 물결은 도시를 가벼이 쓰다듬는다. 성벽의 유려한 굽이와 강을 향해 뻗은 나뭇가지가 삶을 염원하는 양 힘찬 기운을 뿜는다. 모든 게 평화롭게 머무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놀라운 풍경이다.

 

 
 
2020년 04월호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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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에 왕위에 올라 즉위 3년 만에 숙부에게 자리를 뺏기고 17세에 생을 마감한 어린 왕. 나라의 강건함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숙부는 어린 조카를 영월의 육지의 섬이라 하는 청령포에 귀향 보낸다. 결국 삶마저 빼앗긴 어린 왕을 안타까이 여긴 백성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버려진 옥체를 찾아 거둔다. 단종의 묘인 장릉에는 268인의 이름이 함께 모셔져 있는데 이는 정조가 당시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선비, 관리, 환관, 노비, 여인 등을 왕과 함께 제향을 올리도록 한 것이다. 이는 조선 왕릉 중 왕이 아닌 이를 모신 유일한 왕릉이다.

이내경 기자는 왕이 자리했던 곳, 그를 보필한 사람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이를 기억하려는 후손들의 발자취가 담긴 영월의 이야기를 담담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기사를 읽다 보면 단종의 걸음이 닿았던 그 장소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면서, 언제나 그랬듯 그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자리한다.
 

 

청령포 곳곳에서 단종의 흔적을 찾는다. 유배 온 단종을 지켜보고, 밤마다 구슬피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관음송은 수 많은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이다. 600년 넘게 이곳을 지킨 노송에는 단종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은 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는 부분에 단종이 걸터앉아 쉬었단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30미터에 달하는 소나무를 올려보다 다시 산길을 따라 오른다. 걷기 좋게 조성한 덱 길을 걸어가는데도 가파르다. 청령포에서도 가장 높은 노산대는 단종이 해 질 무렵 자주 올라 상념에 잠기던 장소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험한 야산을 헤치고 올라 그가 바라본 방향은 한양이 있는 서쪽. 하늘을 보며 한양을 그리워하고, 자유롭게 굽이치며 한강으로 흘러드는 서강에 자신의 마음을 실어 보냈을 게다.

 

 

2020년 05월호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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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5월, 우리의 생활은 작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해도 녹음과 꽃피는 봄은 다시 우리를 찾았다. 때론 나른함을, 때론 싱그러움을 전해주는 봄의 모습이 담긴, 내겐 익숙하면서도 낯선 하동에 대한 이야기가 5월호에 담겨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쉼을 권하는 곳, 그래서일까. 국제슬로시티연맹이 하동 전 지역을 국제슬로시티로 인증했다고 한다.

기사에는 "순한 대지가 바쁜 삶을 되돌아보게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하동에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집와이어와 레일바이크, 하덕마을과 야생 차밭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내가 몰랐던 하동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느림으로 인한 차분함이 기사를 통해 나에게도 전해진다. 그 느림을 피부로 느끼는 날이 오기를, 햇살을 머금어 빛나는 섬진강을 직접 눈으로 담게 되기를 바라본다.

 

길을 걷는 동안 자주 한눈을 팔았다. 다원에서 차나무와 지리산을 곁눈질했고 악양 들판에선 초록빛 대지를 벗 삼아 섬진강을 흘깃거렸다. 금오산 정상에 오르니 가마득한 바다가 푸른 바람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바람이 평화롭게 스치는 찰나를 결이 고운 산등성이와 추억으로 나누었다. 더 이상 열차가 오가지 않는 경전선 철길은 흐드러진 봄꽃을 선물로 건넸다. 유채가 무더기로 꽃을 틔운 마을이 노랗게 여물어 갔다. 그때도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천천히 흘러와 아늑하게 스미었다. 나는 자주 한눈을 팔며 따사로운 장면들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응시하는 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주는 곳, 여긴 경남 하동이다.

 


*
 
기차에서 잡지를 펼칠 때마다 느끼지만, KTX 매거진에는 감성적이면서도 유익한 기사가 항상 담겨 있다. 대체로 섬세하면서도 담담한 문체로 이어지는 글을 읽다 보면 내게 익숙한 여행지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지도 모두 새롭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겨보면 어느새 기사 속 장소에 자리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어서 잠시나마 꿈꿔본다. 이 기차에서 내린 후 이어질 나의 삶도 여행 같기를, 내가 여행 같은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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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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