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린 늘 그렇듯 언젠가 이별하겠지만 [동물]

글 입력 2020.05.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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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고 커다란 눈망울에 홀리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의 생명체.

 

먼 예로부터 불운과 불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뱀과 함께 요물이자 영물로 알려진, 사뿐히 내딛는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워 나비가 아님에도 나비라고 불려온, 녹녹하리만치 유연한 몸놀림으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구석구석을 자유로이 유랑하는 방랑자.

 

모두가 곤히 잠든 그윽한 새벽을 틈타 먹이를 사냥하고 영역을 다투는 도시의 무법자.


 

바로 길고양이.


나는 길고양이를, 그 작은 짐승에게서 새어 나오는 기묘한 오라를 사랑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생명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외려 어릴 적 내게 개와 고양이 따위의 동물은 친구가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었거늘.

 

십여 년도 더 전, 제 몸집만 한 책가방을 끌고 다니던 조그마한 소녀에게 털로 뒤덮인 네 발의 생명체는 그저 괴이했고 그들이 왠지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았으며 그 짖음과 울음에 지레 겁을 먹어 낯빛이 희어지곤 했다.


동생이 길고양이에게 물리는 것을 옆에서 보았던 것이, 옆집에서 기르는 대형견들의 거친 짖음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걸까. 등굣길 골목에서 배회하는 떠돌이 개나 고양이를 마주치면 지각을 하더라도 동네를 빙 돌아가기 일쑤였고 때로는 도망칠새 없이 얼어붙어 꼼짝 않고 제자리에 서 있기도 했다.

 

*

 

그렇게 나는 개와 고양이를 친구로 사귀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캠퍼스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교수님도, 선배도, 동기도 아닌 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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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예동이'. 공예과 학생들이 공예동에서 돌보아 주는 고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꽃노을 같이 붉은 털, 보동보동하게 오른 살집, 졸음에 취한 듯 게슴츠레한 연둣빛 눈. 마치 유명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현실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은 외모의 녀석이었다. 성격은 또 어찌나 애교가 많고 살가운지. 고양이라는 존재만으로도 긴장하던 내게, 녀석은 느릿한 걸음으로 먼저 다가와 복숭아뼈 부근에 머리를 비비고 자신을 무릎에 앉히라며 뭉툭한 앞발로 내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으며 수년간의 경계와 적대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찰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전적으로 예동이 덕분이었다.

 

녀석은 힘든 대학 생활의 활력이었다. 교수님께 혼이라도 나는 날이면 울적한 마음에 예동이 앞에 앉아 넋두리하곤 했는데 그럼 녀석은 갸우뚱한 표정으로 다가와 배를 뒤집으며 재롱을 피우곤 했다. 그 아이는 모두가 고된 작업에 지친 새벽이면 실기실에 살금살금 들어와 웃음을 주곤 했으며 길에서 우리 과 사람들을 마주치면 저 밥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는지 쪼르르 쫓아오곤 했다.

 

예동이는 퍽 수다스러운 고양이였는데 야옹야옹 울음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쓰다듬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 종종 수업에 늦을 뻔하기도 했다. 때로는 다리에 앉는 것을 유독 좋아하던 녀석을 위해 맨바닥에 앉아 책상다리를 틀기도 했다. 그럼 그 아이는 곧잘 올라와 잠들곤 했는데,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자장자장 엉덩이를 토닥거리면 듣기 좋은 골골 소리를 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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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동이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 따뜻한 이부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내 행복이고 기쁨이었다. 작은 식물 하나조차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던, 아니, 소지품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나보다 유약한 생명을 애정으로 보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며 두 번의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맞이하는 세 번째 봄,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가 오기 전, 예동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버렸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 아이의 치료비를 모금했고 간절히 쾌유를 기도했지만, 이는 길고양이의 숙명이었던 걸까. 야속하게도 나날이 수척해지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우린 그저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고 녀석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도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예동이를, 그 사랑스러운 길고양이를 만나고 사랑하게 됨과 동시에 이별도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떠나고 수 밤을 홀로 울며 지새웠지만 누굴 탓하랴.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줄 걸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만남과 이별은 온 지구의 이치이자 자연의 섭리인 것을.

 

*

 

예동이가 떠나고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아이만 우리 곁에 없을 뿐 그 아이의 집, 그 아이가 쓰던 담요, 그 아이가 쓰던 밥그릇조차 그대로였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수업을 듣고 작업을 하며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을 보냈으며 예동이 없는 공예동에 차츰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따뜻한 봄볕은 지고 캠퍼스는 푸르른 녹음의 계절이 맞이했다.


비어있던 예동이의 집엔 어느덧 새로운 길고양이 식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예동이처럼 붉은 털이 아닌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얼루기들이었다. 예동이를 위해 사두었던 사료는 그 아이들의 끼니가 되었고 얼루기들은 우리의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떠난 예동이가 보내준 선물일까? 밥그릇을 채우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래, 우린 늘 그렇듯 언젠가 이별하겠지만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길 멈추는 것처럼 바보 같은 것이 또 없지. 얼루기들아 내 사랑을 담뿍 줄게. 우리 잘 지내보자.’

 

이제는 안다. 생명과의 만남 후에 찾아오는 이별은 꽤나 공허하고 허무하며 괴로운 것임을, 그럼에도 그저 순복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하지만 이별 뒤엔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생명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도피하지 않을 것이다. 예동이에게 그랬듯이 온 감각을 다 해 새로운 아이들을 아끼고 보듬으며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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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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