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것도 오해하지 않는 것 [도서]

글 입력 2020.05.0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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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오해하지 않는 것



두껍지 않은 책을 단숨에 읽고 나서 다시 본 표지 속의 윤재는 처음 바라보았을 때와 다르게 입체감이 돌았다.


평면에 입체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을 짚게 되는 것과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미지의 세계를 헤아리는 일, 그 끝에서 조금씩 간극을 좁히는 것이며 드물기에 소중해서 나를 성장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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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손원평 2017

 


<아몬드>의 윤재를 보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어떤 것도 오해하지 않는 것과 같게 느껴진다. 선천적 결손으로 감정을 못 느끼는 윤재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윤재의 세계에는 사랑이 없지만 무정보다 더 매정한 연민도 없다. 과잉된 감정과 불필요한 예감도, 단죄도 없다. 때문에 윤재의 아무것도 깃들어 있지 않는 눈빛은 곤과 도라에서 나아가 나에게까지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구보다 무미하고 건조한 사람에게서 대체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이 모순적인 문장은 윤재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보여주는 가능성을 함축한다.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윤재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소설을 보며 ‘정상적’ 범주에 섞이기 위해서 사람이 무엇을 포기하고 덧입히는지를 보았다. 또 그렇게 해서 그들이 만든 세계가 얼마나 황폐하고 가난한지를 확인했다.


너무 어리고 여려서 반항할 새도 없이 아파하는 아이들 또한 함께 보았다. 자란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함과 동시에 비어있는 구석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윤재는 선천적으로 무(無)이기 때문에 앞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만 쌓게 될 것이다. 쓰인 걸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직접 개척해 나가는 세계, 우리에게는 미리 만들어진 정답지를 베끼는 일보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직접 답을 써 내려가는 일이 필요하다.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 소설이니 만큼 소설이 독자에게 느껴줬으면 하는 것들이 비교적 확연하게 보였고 그것들을 그대로 느껴가면서 아주 따뜻했고 뭉클했다. 이 책을 학창시절에 읽었다면 내 안의 무언가가 확실히 변했을 것 같지만 모든 연령대가 읽기에 좋은 책이다.


내게 좋은 소설이란 아직까진 이런 책이다. 현학적인 문장과 기발한 상징, 참신한 형식 또한 물론 좋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것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글은 애착이 생긴다. 그 안에서 가장 평온하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 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책의 끄트머리에서 비로소 조금씩 ‘느끼게 되는’ 윤재를 보며 모든 것을 느끼게 될 훗날의 윤재를 상상했다. 그전보다 흔들리겠지만 분명 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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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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