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관 무료관람의 양면성에 대하여 [문화 공간]

전시 입장료와 관람 태도 사이의 상관관계
글 입력 2020.05.01 12: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성비(價性比)와 가심비(價心比)


 

working-macbook-computer-keyboard-34577.jpg

 

 

우리는 퍽퍽한 삶 속에서도 여러 가지 기쁨을 찾아 즐긴다. 먹는 즐거움, 배우는 즐거움, 취미생활을 하는 즐거움 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 모든 즐거움을 하나로 끌어당겨 포섭할 수 있는 즐거움은 ‘소비하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명백하기 그지없고, 당연하면서도 안타까운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나는 내 돈을 어떤 기쁨과 바꾸어 즐길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국 기준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저렴한 가격 혹은 상품의 질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가성비 좋은 상품’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포화 상태의 시장 속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가성비를 기준으로 최적의 상품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가성비가 제아무리 ‘가격 대비 높은 상품의 질’을 외쳐도 그 고품질은 ‘가격 대비’라는 수식어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지난 2018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가심비’를 선정했다. 가성비(價性比)가 아닌 '가심비(價心比)'는 가성비와는 달리 나를 심리적으로 만족시켜줄 상품이라면 가격대가 높더라도 구매하는 소비 태도를 말한다. 물론 가성비의 시대가 저버린 것이야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가심비’는 저렴한 가격에 못 이겨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를 위해 작은 사치를 즐기고자 하는 우리 마음속의 욕망을 대변한다.
 
 
 
입장료와 관람 태도의 상관관계

 

black-and-white-art-museum-europe-21264.jpg

 
 
그리고 우리가 물리적인 실체로 남지 않는 무형의 체험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돈을 아낌없이 지불하는 영역으로는 문화예술 상품을 빼놓을 수 없다. 녹음도, 촬영도 할 수 없는 뮤지컬과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소비자들은 많게는 10만 원이 넘는 큰돈을 지불한다. 이는 관객들이 90분 가량의 시간 안에서 티켓 가격 이상의 가치를 경험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미술 전시는 어떠한가? 많은 경우 미술관 전시 티켓의 가격 상한선은 15,000원을 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 전시라 할지라도 영화 티켓 가격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전시 관람의 경우 공연 장르가 대부분인 기타 문화예술 영역에 비해 가격 부담이 크지 않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국립 박물관 및 미술관 무료관람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상설전시실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이는 국공립 기관의 미션, 즉 ‘공공의 예술 향유’에 부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무료입장이 항상 이점만을 갖는 것일까? 글머리에서 언급한 ‘가심비’를 생각해 보자. 가심비를 따지는 소비는 일정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을 구입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만족도는 지불한 가격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비가 정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 할 수록 해당 상품의 가치가 그 값어치 정도는 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입장료가 비쌀수록 전시를 관람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내가 지불한 금액이 아깝지 않게끔 눈에 보이는 작품들을 마음속에 최대한 각인시키려 한다. 그리고 작품을 보며 가능한 한 많은 감정들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결국 손해 입지 않겠다는 계산적이고 약간은 속물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시를 ‘제대로’ 관람하게 돕는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연히 전시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진다. 혹여나 전시가 입장료에 비해 실망스러웠다고 할지라도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한 불만 요소마저도 내가 이 전시를 제대로 관람했다는 증거이자 결과로 남기 때문이다.
 
 
 
미술관 무료전시의 양면성

 

claudio-schwarz-purzlbaum-UX-mCYFC1cA-unsplash.jpg

 
 
그러나 무료전시의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료전시는 가끔 우리로 하여금 그 가치를 오히려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무료 상설전과 유료 특별전이 동시에 개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상설전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다시 관람할 수 있지만, 특별전은 당장 한 달만 지나면 막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시간이 부족해 한 전시만 관람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효율적으로 희소성 있고 유의미한 경험을 누리고자 한다. 그런 합리적인 사고 끝에 결국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무료 상설전이 아니라 유료 특별전이다.
 
전시 무료관람은 예술문화를 대중과 공유하고자 한다는 국공립기관의 미션과는 달리, 되려 그곳을 누구나 언제던지 방문할 수 있는 만만한 장소로 여기게 만든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국공립기관의 상설전은 지자체 혹은 정부 차원의 책임 하에서 최소한 1년가량은 지속적으로 공개되므로 더욱 엄격하고 조심스럽게 기획된다. 그렇기에 국공립기관의 상설전이 무료관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휙 둘러보고 적당히 돌아서도 괜찮은’ 전시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
  
미술관 전시의 경우 유달리 입장권의 가격이 관람자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즉각적인 감정 전달이 가능한 공연장이나 영화관과는 달리, 미술관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을 들여 적극적인 수용자이자 전시 관람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술관 입장료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전시 입장료의 가격대는 그 전시가 어떤 가치로 관람자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결정되어야 한다. 물론 그 못지않게 관람자 또한 무료관람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료전시는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인 전시가 아니라, 그 어떤 전시보다도 많은 이들에게 개방되어야 할 전시임을 뜻하므로 그러하다.
 
익숙한 것일수록 그 소중함을 잊기 쉽다. 그리고 국공립미술관의 무료관람 역시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국공립미술관의 무료관람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마저도 당연해졌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무료전시라는 혜택 속에서 우리가 오히려 그 본모습을 흐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컬쳐리스트유수현.jpg

 

 

[유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