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백조 같은 인생을 꿈꾸었지만 - 티끌 같은 나

글 입력 2020.04.2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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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은 처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의 지리, 역사, 정치 등 관련된 소재들이 등장해서 조금 낯선 감은 있었지만, 주인공들 모두가 야망 있는 여자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소설집이 두툼해서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술술 읽히진 않았다. 처음에 나오는 <티끌같은 나>에서, 주인공 안젤라가 가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스토리는 흥미로웠으나, 점점 권력과 섹스에 대한 욕망이 비춰지고 또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걸 보면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티끌같은나_카드뉴스_4.jpg

 

 

 

1. 티끌 같은 나


 

 

전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왜 울어요?" 라고 묻는 사람은 고사하고 그녀를 애써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다 ...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그녀의 슬픔에 빠져들었고, 그들 역시 어느새 훌쩍이기 시작했다. (16P)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은 아내한테 붙어서 살아간다. 그러면 여자는 둘이서 함꼐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반면 돈 많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무례하며 결국은 아내를 버린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로 살 것인지, 자기를 마구 짓밟고 척추를 부러뜨려도 참고 살 것인지... (96P)

 

 

초반에 가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린 안젤라의 모습은 일반적인 소설 주인공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뻘 되는 니콜라이와의 만남과 음악계의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점점 망가져가는 그녀의 모습이 적응이 되질 않았다. 같이 피폐해지는 느낌이랄까.


다른 챕터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 정말 많이 생각이 났다. (영화 이야기는 추후에)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고 너덜너덜해진 안젤라였지만, 누가 그녀의 삶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으로서 희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주인공이 보여준 것 같았다.

 

 

열 시간이 지나서 그들은 쓰나미가 섬을 덮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묵던 호텔도 사라졌다...옆에는 큰 뱀과 짐슬등이 헤엄치고 있었다. 짐승과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 모두에게는 '헤엄쳐 나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88P)

 

반면 레나는 사랑 빼고 모든 걸 다 가졌다. 결과적으로 어떤가? 사랑 없는 부와 명예는 무의미하다. (140P)

 

 

레나와 니콜라이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그들은 돈은 있으나 사랑은 없었다. 중년의 나이에 정열적인 사랑을 하기엔 쉽지 않을테니 공허한 마음이 컸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의 주제가 '여성의 야망과 사랑'이라면, 부제는 아마 '포괄적인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티끌 같은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랑의 형태들이 많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레나의 말이 옳았다. 배신은 고리로 연결되어 또 다른 배신을 낳는다. 가누시키나 역시 언젠가는 사브라스킨을 배신할 것이다. (174P)

 

열정과 악이겠죠. 열정 없는 악은 없으니까요. (175P)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친 남자의 배신을 통해, 자신이 니콜라이를 배신했던 것이 또 다른 배신으로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안젤라. 그 사실을 알기에 안젤라는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 프로듀서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열정이 있는 악은 함부로 미워할 수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그러했다 눈쌀이 찌푸려지긴 해도 그 열정만큼은 인정해줄 수밖에...

 

 

티끌같은나_표지+띠지_앞_도서출판잔.jpg

 

 

 

2. 첫번째 시도


 

이 소설도 쉽지 않았다. 마라라는 주요인물의 독주를 지켜보느라 멘탈이 여러번 깨졌던 것 같다. 이야기는 마라라는 중년 여성의 삶을 지켜보는 라리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주인공은 '마라'라는 인물인데, 나는 거의 라리사의 입장으로 그녀를 보게 되었다. (라리사랑 성향이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마라는 어떤 주인공들보다도 대담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내가 머리를 감을 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지 못한 채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샴푸는 흘러서 눈에 들어가고 물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마라와 통화를 끝내고 무사히 수화기를 내려놓더라도 돌아서다 전화선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전화기도 같이 망가지곤 했다. 그러면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채 혼자서 다리를 저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신이 코앞에서 집게손가락을 흔들며 '쟤랑 놀지 마' 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336P)

 

사샤는 남자의 얼굴을 베이스로 만든 것 같은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단호한 성격을 질색했다. 여자가 아니라 군대 상사 같은 느낌이었다. (339P)

 

 

약 80페이지 정도의 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엔 그녀가 어떤 이미지인지 잘 그려졌다. 캐릭터가 센 이유도 있었지만, 작가가 묘사 능력이 뛰어난 점이 큰 것 같다. 소재가 무거워서 그렇지, 글은 정말 잘 쓰시는 것 같다.

 

 

옛날 일이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지 싶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의 사랑은 지치고 매일 입는 작업복처럼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며 내 미래는 스텝 지역처럼 길고도 단조로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358P)

 

 

마라는 '외강내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러가지 사랑을 하면서, 애인들을 탈바꿈 시키지만 정작 그녀가 기댈 곳은 친하지도 않은 평범한 라리사 뿐이었다. 사랑하는 남자들로부터 여러번의 배신을 당하고 쫓겨날 위기에 처해도, 꼬리 잘린 도마뱀의 꼬리가 다시 회복이 되듯이 그녀는 일어났다. 힘들다는 기색 없이 다시 성공하고, 복수했다.


나는 라리사처럼 이런 그녀의 질주가 무서웠지만, 마라가 라리사에게 툭툭 던지는 말에 같이 찔리곤 했다. 남편을 버리고 새로운 남자를 찾으라는 그 녀의 말이 마냥 철 없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녀의 삶을 지켜봤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는 눈살도 찌푸려지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게 되었다.


그냥 저게 저 사람의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티끌 같은 나
- One of many -


지은이
빅토리아 토카레바
(Виктория С. Токарева)
 
옮긴이 : 승주연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러시아 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3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234-05-4 (03890)





저역자 소개


빅토리아 토카레바
 
193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주, 음악학교에서 피아노 교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63년 단편 <거짓 없는 하루>를 발표했다. 주로 대도시 여성의 심리, 일과 사생활, 여성의 꿈과 연약함을 이야기하는데, 수많은 단편과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1990년대에는 '토카레바 붐'이 일어나 대부분의 작품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재출간될 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영어, 프랑스어, 덴마크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중국어로 번역되는 등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으며, 작품의 페미니즘 성향이 인기의 비결로 꼽힌다.
 
1987년 소련 시기 문학 부문에서 공로가 인정되어 존경징표훈장을 받았고, 1997년에는 러시아-이탈리아 국제 문학상인 모스크바펜네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제53회 칸영화제에서는 문학과 영화 공로상을 받았다.
 
《운 좋은 신사들》(1971), 《용기를 위한 100그램》(1976), 《미미노》(1977), 《개가 피아노 위를 걸었다》(1978), 《탈리스만》(1983), 《없었던 것에 대해》(1986), 《누가 마지막 열차에 타는가》(1986), 《시국》(1987), 《나 대신》(2000), 《눈사태》(2001) 등을 출간했다.
 
 
승주연
 
안양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에서 러시아어 언어학을 전공하고 200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한국어 번역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제15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고,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한 《보리스 고두노프》의 시나리오를 번역하는 등 다양한 문학 행사를 기획했다.
 
《봉순이 언니》 《고령화 가족》 《달콤한 나의 도시》 《불의 강》 《침이 고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을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하고, 러시아 소설 《상처받은 영혼들》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김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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