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와 딸이 공존하는 법, '엄마와 딸 사이' [도서]

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가요?
글 입력 2020.04.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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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가요?


엄마, 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이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고,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 화가 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화도 나고, 눈물도 나는 사람이었다.

 

가족 내에서 친한 사람은 거의 엄마 뿐이었다. 아빠는 전형적으로 나도는 성격이었고, 오빠는 이성이라 그런지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오늘 있었던 이야기도, 고민도 전부 엄마한테 털어놓았고 엄마도 내게 그러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나는 엄마와 나의 긴밀한 관계가 불편했다. '나도 생각이란 게 있는데', '엄마는 왜 날 못 믿지?'라고 하며 속으로 불만을 키워왔다. 화도 내고 싸움도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싸움은 원인의 해결이 아닌 문제의 폭발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는데 그걸 엄마는 불편해했다. 치료하는 걸 말리진 않았으나 탐탁치 않게 여겼다.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감시했고 난 죽을만큼 우울한날에도 엄마의 기분을 살펴야 했다.

 

하루는 정말 너무 힘든 날인데 엄마가 잔소리를 했다. 폭발하기 직전이었지만 꾸역꾸역 참으며 "네"라고 답했다. 문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엄마는 아빠에게 "쟤 표정 좀 봐, 저거 저거 어쩜 저래?"라고 말했다. 대놓고 표정 풀어, 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 등 뒤에서 아빠에게(그것도 나랑 사이가 안 좋은) 내 흉을 봤다. 폭발했다.



난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 내가 왜 이딴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고!



그리고 자살 시도를 했다. 도저히 우울해서 참을 수 없었다. 가족관계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영향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는 나를 모자란 자식 보듯이 하고, 엄마는 나를 위로해주면서도 내 고민과 감정들을 아빠에게 그대로 전했다. 아무리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그래도 부분데....'라고 하며 결국 알렸다. 내 편지를 몰래 보거나 '왜 고민을 엄마한텐 안 말하냐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아빠에게 실컷 맞은 날에는 엄마가 아빠에게 반발했으나 다음 날이면 나만 빼고 모두 멀쩡해졌다. 정말 나만 빼고 가족 같았다.


그래서 수능 땐 무조건 집에서 먼 대학으로 가겠다고 우겼다. 왕복 10시간이라고? 완벽했다. 아쉽게도 그렇게까지 멀리 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대학생이 되어 집을 벗어났다. 매일 같이 싸우던 날들도 없고, 자유롭게 살면서 나는 최대한 독립적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크게 아파도 부모님께 안 알리고 돈이 갑자기 궁해져도 밝히지 않았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나았다. 자취방이 내 집같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고향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었다. 매일같이 엄마에게 연락하던 오빠와는 달리 나는 간간이 생존신고만 하고 집에도 잘 가지 않았다. 명절에도 어떻게 하면 집에 안 내려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엄마는 내게 '정 없다', '애가 왜이렇게 무심하냐'고 했다. 그러면 화가 나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가 아빠로 인해 힘들어 한 날에는 엄마의 표정이 안 좋았다. 그 표정을 읽지 못하면 대부분 불똥은 나한테 튀었다. "아빠도 그러는데 넌 또 왜 그래, 진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빠의 흉을 끊임없이 보면서도 내가 아빠를 미워하면 '그래도 아빠잖아'라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서 아빠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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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족을 잃은 나는 남자친구나 친구들에게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너무 가까이 오면 부담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 괴로웠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까, 하며 한탄하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도피처였으며 남자친구는 가족 대신이었다. 그렇게 바깥에서 산 지 5년, 적당한 거리감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 무렵에 나는 다시 집으로 왔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엄마가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버거울 뿐이었다. 엄마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싫었고 내 결심도 엄마의 한 마디면 순식간에 무너졌다. 엄마는 '친구 같은 딸'을 원했으나 태생적으로 잘 안 됐다. 진짜 어린 애였을 때도 안됐던 게 이제와서 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를 맞추기 위해 가끔 시내도 같이 나가고 게임도 같이 하며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내 할 일이 있어도 엄마의 부탁은 거절을 못했다.


하루는 엄마가 '너는 운동도 못하잖아'라는 말을 장난삼아 했다. 매일같이 듣는 말인데도 이젠 더 참을 수 없다고 느껴졌다. 엄마에게 "엄마, 절 비난하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도 말아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가족한테 그런 얘기도 못해? 알았다, 알았어. 나는 네가 날 비난해도 웃어 넘길 수 있을 건데"라고 말씀하셨다. 가족인데도, 가족한테. 그런 말들로 인해 나에게 가족은 어느샌가 복잡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착한 딸은 아니었지만 못된 딸은 되기 싫었다. 나에게 엄마는 닮고 싶지 않은 인생이었으며 나를 묶어두는 말뚝이었고, 말로 나를 현혹시키는 간사한 사람이기도 했다. 눈물로 호소할 땐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 같기도 했다. 놓아버리고 싶은데도 놓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고 가장 인정 받고 사랑 받고 싶은 존재이기도 했다. 나에게 엄마는 수많은 의미를 지닌 사람이었고 그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책 <엄마와 딸 사이>는 딸이 엄마와 공존하는 법을 다룬 가벼운 심리학 서적이다. 많은 엄마들이 딸에게 자신을 희생한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부은 딸이 떠나가겠다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니.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다. 여기서 엄마는 딸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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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낸 딸 : 엄마, 나도 힘들다고요. 제발 그만 하세요.


수동공격형 엄마 : 알았다. 너만 잘 살면 된다. 내가 뭐라 했니.


책 <엄마와 딸 사이> 중

 


엄마가 직접적으로 딸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죄책감을 자극하며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는 이쪽이 대부분이었다. 왠지 내 말에 엄마가 져 준 것 같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 찝찝하고 나아진 게 없는 느낌. 그래서 이렇게 다투고 난 다음엔 자꾸만 엄마의 눈치를 봤다.


엄마는 손쉽게 남을 비난했고, 남의 힘든 이야기를 가쉽거리로 삼았으며, 거기서 자신의 행복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나는 결코 이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중용적인 자세, 독립적인 자세, 모두를 이해하는 자세'를 가지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엄마처럼 말하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수많은 딸들이 엄마와 같이 살지 않으려고 자신을 부정한다. 엄마랑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엄마의 그림자는 더욱 가까워졌다. 딸은 엄마와 닮았다. 오히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꾸만 '나'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나쁜 사람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건 엄마를 닮은 거고, 그리고 이건 나쁜 짓이기도 해. 근데 어쩌겠어, 내가 원래 이런 걸. 그니까 배우기라도 해야지.


엄마와의 관계는 연인간의 관계속에서 재생산된다. 어릴 적 생성된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바르지 않다면 이는 곧 연인(다른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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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엄마와 너무 가까웠고 집착적이었다면 몰입형

② 엄마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다면 회피형

③ 엄마를 딱 하나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혼란스럽다면 미해결형

④ 엄마와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적절한 거리감이 있다면 안정형이다


나는 미해결형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서 멀어지거나 안 친한 사람이 있다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싶지만 상처 받는 것, 간섭받는 것에서 오는 공포감으로 인해 가까워지면 멀어진다. 아주 귀찮은 성격이다.


딸은 때로 엄마와 너무도 가까워 자신과 엄마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다. 엄마 역시 딸을 인생의 뮤즈로 생각하며 딸을 놓아주면서도 너무 놓아주지는 않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엄마와 딸은 모순적인 관계다.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가장 사랑하고, 그래서 멀어지고 싶기도 하고 가까워지고 싶기도 한 그런 애틋하고 이상한 관계.


나에게 엄마란 무슨 의미일까. 딸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엄마에게 딸은 어떤 의미일까. 더 이상 착한 딸, 착한 엄마를 그만둬도 된다. 엄마가 나의 인생에 너무나 개입이 심하고 나의 자존감을 자꾸만 훔쳐간다면 선을 긋자. 최소한의 안전선을 유지한 채로 엄마와 공생해 가는 거다. 나는 나, 엄마는 엄마다. 엄마도 딸도 개인으로서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말이 쉽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다. 엄마와 매일 마주하면서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똑 부러지게 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1월 중에 또 다시 혼자 길을 간다. 그렇게 무서웠던 서울에 가기로 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모아놨던 돈을 풀기로 했다. 엄마는 공부에 돈을 또 쓰는 게 싫은 내색이셨지만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미뤄놓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우울증 치료를 받기로 하셨다. (일단 약속은 했는데 지키실지 모르겠다)


이젠 엄마에게 있었던 미안함, 원망을 내려놓고 엄마와 거리를 가지려 한다. 나로써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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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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