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과 사랑과 돈, '티끌 같은 나'

글 입력 2020.04.2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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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같은 나_자켓+띠지_도서출판잔.jpg

 

 

러시아 작가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책이 잔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빅토리아 토카레바는 러시아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국내 번역서로는 지만지 출판사의 '토카레바 단편집'이 있다. 지만지 단편집과 이번 선집에 겹치는 작품은 없으니, 토카레바를 알고 있던 독자라면 더 읽을 작품이 생겼으니 반가운 일이다.


그는 193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피아노 교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63년 발표한 단편 <거짓 없는 날>을 시작으로 수많은 단편과 시나리오를 창작했다. 1987년 소련 시기 문학 부문 공로로 준경징표훈장을 받았고, 1997년에는 국제 문학상 모스크바펜네상을 받았다. 작품들이 다수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2000년 칸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 <티끌 같은 나>에는 다섯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한편 한편이 8,90년대 러시아 여성의 삶과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 <티끌 같은 나>는 180p 가량 되는 중편이다. 줄거리는 시골 마을에 사는 '안젤라'가 가수가 되고자 모스크바로 떠나 겪는 여정이다. 안젤라는 어리고 반짝이고 노랫소리가 아름답다. 그녀는 지인 세르게예브나의 도움으로 오디션을 보러 가지만 돈이 없어 가수가 될 수 없다. 노래를 만들 돈도, 프로듀서에게 낼 돈도 없다. 가진 건 하나도 없지만 안젤라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녀 앞에는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빛나는 목표가 있었다.' 그녀의 모스크바 생활은 돈을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변한다.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몸만 건강하면 여자는 가사 노동을 할 수 있다. 안젤라는 가정부로 어느 부잣집에 일자리를 얻는다. 그 집의 늙은 남편은 안젤라에게 반하고, 그녀는 곧 그의 정부로서 함께 살게 된다.

 


"사랑은 배신을 낳고, '배신은 고리로 연결되어 또 다른 배신을 낳는다. 가누시키나 역시 언젠가는 사브라스킨을 배신할 것이다.'"


 

다음 작품 <이유> 역시 중편이다. <티끌 같은 나>가 새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난 비혼 여성이 혼자 겪어야 할 고난이라면, <이유>는 제도가 보호하지 않는 여성의 삶을 주인공 '마리나'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마리나는 대학생 때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곧 딴 여자와 바람나 사라지고,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홀로 남겨진다. 이후 우연을 통해 루스탐이란 아제르바이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마리나를 사랑했고, 다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무슬림은 다른 종교의 여자과 결혼하지 않기에, 마리나는 오래도록 그의 정부로 살아간다. 자식이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나고, 같은 실수를 하고, 그녀를 버릴 때까지. 성과 없는 사랑과 뜨내기 신세에 괴로운 마리나는 어느 날 다시 한 번 루스탐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들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없다. 하지만 그토록 요란했고 딱정벌레가 그들 사랑의 전설에 닿아서 감전되던 과거는 잊 두 사람의 과거로만 남아 있다. 그런데 과거도 삶의 일부다."


 

세 번째 작품 <첫번째 시도>는 조금 분량이 많은 단편이다. 책 속 작품 중 유일하게 '나'라는 화자가 등장한다. 오래된 수첩을 옮겨 적기 위해 펼친 첫 장에서 '나'는 첫 번째 이름을 발견한다.


A. 알렉산드로바 마라. 본래 이름은 마를린이지만 모두가 마라라고 부르는 여자. 열여덟 살에 왈츠를 함께 춘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 결혼은 다툼과 죽은 아이로 끝났다. 그녀는 그 두 말없고 충직한 디미치카와 결혼한다. 하지만 마라는 곧이어 옆집의 유부남 사샤를 불같이 사랑하게 된다.

 

'나'가 보기에 '내면의 악마 근성이 요동치고, 원래 지옥에 거주 등록이 돼 있는 사람'인 마라는 사랑과 명예를 탐욕스럽게 추구하지만, 토카레바의 작품이 그렇듯 인생은 그녀 뜻대로 흘러주지 않는다.

 


"마라는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워 목이 메어 왔다. 마라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울먹이며 그를 불렀다. "디미치카!" 그리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약을 놓고 갔더라고!"


마라는 약병을 고양이들이 들어 있는 바구니에 던지고는 통곡하느라 비틀거리면서 도망치듯 갔는데, 그 모습이 어린 시절 영화 티켓값 5코페이카가 모자랄 때와 같았다. 이제 그녀는 삶이 모자랐다."


 

<남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와 <어느 한가한 저녁>은 짧은 단편으로, 토카레바의 세계를 가볍게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삶의 기대와 실망과, 그것이 반사되어 빛나는 인생의 순간들.


토가레바 작품 속 여성들의 경로는 인생의 삼요소에 휩쓸려 이리저리 꼬인다. 삼요소란 무엇인가. 꿈, 사랑, 돈이다. 이 요소들은 서로 묘한 장력을 유지하며 인간사의 균형을 맞춘다. 안젤라는 꿈때문에 돈 모으기에 인생을 허비하고, 마리나는 사랑때문에 거금을 허공에 날린다. 돈으로 사랑을 사려한 니콜라이는 배신당한다. 다 가지는 사람은 없다. 소설 속 문장처럼,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인생은 고통이라지만,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상실감만은 아니다. <티끌 같은 나>에 나오는 옛 노랫말, '네가 나를 버려서 슬픈 것이 아니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다'. 나는 이 문장에서 작가의 애정 어린 냉소를 보았다. 얼마나 죽고 못사는 사랑이건, 결국에는 자신의 분별없음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토카레바의 인물들은 가진 게 없다. 우리 삶을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에 온몸으로 부딪치고, 거절당하고, 그 상흔으로 인생에 깊이를 더할 뿐이다.

 

 


 


티끌 같은 나

-One of many-


 

지은이

빅토리아 토카레바

(Виктория С. Токарева)

 

옮긴이

송주연

 

출판사

도서출판 잔

 

분야

러시아 문학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432쪽

 

발행일

2020년 3월 30일

 

정가

14500원

 

ISBN

979-11-90234-05-4 03890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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