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맨스라 쓰고 성장이라 읽는 영화, '썸원 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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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썸원 썸웨어>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레미와 멜라니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자신 앞에 놓인 상황에 괴로워하고, 부담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그들에게 벅차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현대인의 고질병 불면증, 우울증을 앓고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
차가운 빛깔의 도시를 살아가는 이웃, 두 남녀는 서로의 삶에 어떤 색이 되어줄까. 사실, 두근거리고 설레는 핑크빛 로맨스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영화보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굉장히 의미있고 신선하다.
영화 썸원 썸웨어 스틸컷
blue, 우울
보통 파란색(blue)는 우울을 상징한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배경과 인물들의 옷 색을 보면 푸른색이 많이 나온다. 멜라니의 집, 레미의 옷과 정신과 상담실 벽지, 심지어는 레미의 부모님까지 파란 옷을 입고 나온다.
하지만 이 우울감은 비단 주인공 두 명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님, 자매, 상담을 해주는 정신과 의사 모두 꼭 한 번씩은 푸른 옷을 입고 등장하거나 푸른 방에 갇혀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서사와 우울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우울은 현대인의 숙명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우리는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주변 인물들로 하여금 영화 속 주인공과 관객들의 벽을 없애 그들이 지닌 우울의 무게와 내가 지닌 우울의 무게를 동일하게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영화에서 푸른색이 우울을 상징한다면 붉은색은 이와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미는 영화 내내 지니고 있던 우울함을 내려놓고 ‘춤’을 배우러 간다. 그때, 계속해서 입고 있던 푸른 티셔츠를 벗고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멜라니 또한 벽지와는 대비되는 붉은 소파에 누워, 푸른 바탕에 붉은 꽃이 그려진 옷을 입고 마지막 상담을 하는데 자신의 우울감을 쏟아냄과 동시에 스스로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담을 위해 쇼파에 누워있는 멜라니
오늘날의 만남
페이스북, 틴더를 사용하며 사람을 찾는 현시대의 주인공들을 보며 sns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우리나라 영화 ‘좋아해줘’가 떠올랐다. 물론 sns에 대한 의미를 풀어내는 방법은 다른 두 영화지만, sns를 통해 사람을 관찰하고 만남을 이어나가는 장면들만 보면 서울에서 일어나는 로맨스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내용적인 면에서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진다. SNS로 인해 쉽게 만날 수 있는 관계들이 생겨났지만 이 관계들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과 친숙함은 요즘의 현대인들이 겪는 가벼운 인간관계 속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듯했다.
멜라니는 항암치료를 이야기하며 이는 곧 치료이지만 동시에 '이물질과의 접촉'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레미는 엔진에 대해 이야기하며, 작은 불꽃이 화학반응에서 시작해 움직임을 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 인물이 언급하고 몰입해 있는 대상 모두 만남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느낌을 준다. 모든 만남으로 이루어진 삶 또한 결국은 '이물질과의 만남'이다. 아무리 치료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다른 무엇인가 만나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고 살아간다는 것에는 결코 화학반응이 없을 수 없다.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그에 따른 열과 희생, 고통, 우울감 등을 동반할 수 있으나 결국은 건강한 삶을 위한 발걸음이 된다.
또한, 이는 아주 작은 불꽃처럼 시작되지만 삶에 큰 에너지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두 인물이 각자의 관심사 속에 자신의 일과 취미를 포함시키고 좋아하듯 사랑과 관계는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힘들어도 언제나 갈구하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사랑임을 보여준다.
사랑을 뺀 ‘나’
이 영화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등장인물들이 ‘사랑’으로 삶을 치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는 사랑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행복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나’를 제대로 알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시작하는 것. 그걸 바로 ‘사랑, 즉 로맨스의 시작으로 그려낸다. 영화가 진행되는 110분가량 두 인물은 서로 스치듯 지나기만 할 뿐 만나지 않는다. 마지막이 돼서야 서로를 인지하면서 영화는 끝이 나게 된다.
이는 두 사람의 상호작용이 ‘사랑’의 기본이 아니라 사랑의 주체가 지니는 마음과 생각이 진정한 ‘사랑’의 결을 완성시킨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면 스스로에 대한 결핍을 누군가 사랑하면서 채우려는 요즘의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되새기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현대인인가.
-INFORMATION-
제목: 썸원 썸웨어(Someone Somewhere)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
주연: 프랑수아 시빌, 아나 지라르도
장르: 이웃집 파리지앵 썸로맨스
러닝타임: 110분
개봉: 2020년 4월 29일
[장미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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