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교묘한' 장벽의 탄생: 팀 마샬, '장벽의 시대'를 읽고

선택지는 두 개, A 또는 Not A
글 입력 2020.04.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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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을 상징하는 문양.



“저 사람이랑 친해?”

“아니, 친해지기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어떤 대상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그것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넘사벽’이나 ‘진입장벽’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대상과 나 사이에 굳건한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담은 신조어다. 최근 들어 이와 유사하게 자주 쓰이는 말로는 ‘선’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것들이 있다. ‘선 넘지마.’나 ‘선 넘네.’와 같은 말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존재를 체감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벽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당장 개인이 중시하는 가치 중 하나인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만 보아도 이를 체감할 수 있다. 우리는 벽에, 장애물에 익숙하다. 이것은 대놓고 드러날 때보다 은근히 드러날 때 더욱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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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제다이 기사단'이

내세우는 교리는 무엇일까...?

스타워즈 애청자로서 상당히 흥미롭다.


 

 

1. 표면적인 장벽은 무너졌다


 

국어사전이 규정하는 장벽의 뜻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어떤 ‘장애물, 벽’을 암시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팀 마샬은 장벽에 대한 논의를 좁게는 각국의 국경이라는 차원에서, 넓게는 각국 전반에 존재하는 정치, 사회적인 갈등과 문제들의 차원에서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사회는 분리와 분열, 차별을 당연하게 수용하고 이를 국가적 정책의 일환으로 이용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외교 방침, 세계화의 결과로 확장되는 국경에 역으로 심화되는 민족주의적 성향들, 정치 이데올로기의 우경화가 대표적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물리적인 전쟁의 빈도가 낮아지고, 각국의 경제 발전이 촉구되며 민주주의 이념의 보급이 보편화됨에 따라 세계에는 표면적인 평화가 도래했다. 이에 각국을 둘러싸고 있었던 적대적인 장벽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원만하지 못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던 나라들도(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프랑스가 대표적) 서로에게 조금 더 호의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에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같은 서방 국가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게 군사공격을 퍼붓는 것을 상상하리란 어렵다.

 

이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적대심을 표출하지 않는다.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신에 세계화라는 명목 아래에 교육, 경제,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서 국가와 국가 간 협력을 체결하고자 한다. 독일과 프랑스를 예시로 들어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샤롤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엘리제 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협력을 꾀하고자 했다. 양국은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거나,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교육하는 대학 기관을 설립하거나, 독일-프랑스 공동 방송 채널을 운영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유럽연합이 설립된 취지도 유럽 대륙 국가들의 전방위적인 화해와 번영, 평화를 위함이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떨쳤던 러시아 역시, 연방 해체 이후 주도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했고 세계에의 문호를 열었다. 또한 동계올림픽을 주관하는 등 문화면에서도 전 세계와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도 역사적으로 쌓인 앙금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경제나 교육, 문화 등의 면에서 생각보다 원만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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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조약 체결 당시.

 

 


2. “새로운 장벽”의 탄생과 교묘한 분열의 연속


 

하지만 팀 마샬은 표면적인 장벽이 없어진 대신 국가 간, 혹은 국가 내에 존재하는 사회적 갈등들을 심화시킬 “새로운 장벽”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장벽은 “열린 국경”을 향한 발걸음에 장애물이 되고, 우리로 하여금 장벽을 기준으로 형성되는 선택지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종용한다. 민족주의와 우경화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담론과, 다문화주의 및 인본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적인 담론 중 하나를 택하도록 강요한다. 그 사이에 놓인 벽을 하염없이 오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사이를 오가는 외부인을 엄격하게 감시하듯 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유럽연합 내 이주민 문제다. 오늘날 유럽인은 유럽 대륙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환경을 당연하게 여긴다. 냉전 시기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을 예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인류가 전쟁을 멈추고, 자본주의에 입각한 시장경제를 통해 자국의 번영을 촉구하려는 경향이 전 세계적으로 강해지면서 표면적인 평화가 드리웠고,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동독과 서독의 경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이러한 변화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연합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면서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동유럽 국가의 주민들은 부유한 서유럽 국가들도 이주하길 원했다. 가난한 유럽 국가로부터의 이주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렇다면 통일된 독일인가? 통일된 유럽인가?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다. 여전히 끌과 망치가 부술 수 없는 분열, ‘머릿속의 장벽’이 있었다. 그 장벽은 사람들의 여행을 막지는 않지만, 깊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격차를 만들어냈기에 물리적 장벽보다 극복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258p)


 

국경을 열어젖힌 유럽 대륙에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유입됨에 따라 종교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주민들 가운데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던 무슬림 중 일부가, 이슬람교의 교리를 명목으로 엽기적인 테러, 범죄를 자행하자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EU 전역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프랑스에서 심했다. 이렇듯 이주민 관련 문제가 점점 심해지자 영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서유럽의 국가들은 이주민의 유입에, 무슬림의 확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EU의 설립 지침이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것, 즉 인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유럽 대륙 전반의 물적,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던 만큼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긴 힘들었다. 이에 이들은 내부 세력을 모아 교묘한 분열을 계획했다. 독일에서는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인 유럽인들(PEGIDA)”과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라는 극우 단체가 탄생했다. 여타의 유럽국에서도 극우적인 성향을 위시하는 정당들이 힘을 얻고 야당으로 등극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차별 정책을 내세우는 대신에 내부적으로 이처럼 통합을 지양하는 강경한 흐름들이 나타나면서, 팀 마샬이 주장하듯 “새로운 장벽”이 탄생했다. 이 장벽은 굉장히 교묘하고, ‘은근하게’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서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이주민을 수용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을 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극우적인 입장이 표방하는 민족주의적 정책, 담론 등을 동원해 이들을 ‘은근히’ 차별한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장벽을 만들고 “그들”이 “우리” 안에 섞일 수 없도록 분리한다. 그리고 “우리” 안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그들”이 있다면, 이주를 오기 전의 국가에서 형성했던 본인의 자아를 버리고 완전히 “우리” 국가의 정체성에 동화되라고 말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해당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샬이 말하고 있듯 장벽의 존재를 지울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오히려 이와 같은 교묘한 장벽들의 숫자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 위기가 닥치고 정보화 시대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극우 세력을 포함해 전인류적인 통합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이전보다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역설적으로 사람들 간,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담론의 성격은 단순해지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인 입장과 진보적인 입장을 절충한 입체적인 논의를 개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쪽에 서거나 저쪽에 서라는 식으로 논의를 단순화하는 쪽이 편 가르기에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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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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