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독한 방구석 사용법 [문화 전반]

일상에 새로움을 더해주는 사소한 방법들
글 입력 2020.04.0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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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일정들이 무기한으로 연기되면서 기존 계획에 차질을 피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니 이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잠시 멈춤 캠페인'과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이제는 각종 심리 테스트를 넘어서 천 번 저어 만든 계란 수플레까지 만들기에 이르렀으니 이번 휴식기가 모두에게 꽤나 길게 느껴지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기는 확진자가 아닌 확'찐'자가 되어버렸다는 실 없는 소리를 해댄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아무리 집 밖이 위험하다지만 지금으로서는 집 안도 그리 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 방치하고 있던 내 방구석을 다시 살펴보는 건 어떨까. 잠시 창문을 열어젖히고 어느새 다가온 봄도 맞이할 겸 묵혀있던 먼지들을 털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독한 방구석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을 조금은 색다르게 살펴보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팁 몇 가지를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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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hyun Jang

 

 

집과 당신


 

집과 사람은 서로 닮는다는 말에 갈수록 공감할 수밖에 없다. 며칠 동안 밀어두던 방 청소를 하고 나니 깨끗한 방 안을 보며 내 표정도 함께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내가 머무는 공간은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 태도와 항상 함께 한다. 책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는 일상적 장면을 통해 시간과 장소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간 잊고 있던 집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전처럼 최선을 다해 버티거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다.


 

책의 저자인 장보현은 서촌에 자리한 작은 한옥에 살면서 집과 함께하는 계절의 변화를 기록한다. 다 허물어져가는 한옥을 직접 공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녹아들어 시간과 계절을 감각하는 그녀의 태도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계절의 날씨를 담아내는 24절기를 바탕으로 그녀는 모든 시간의 흐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한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잊고 살았던 계절의 이름들을 집의 장면을 통해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어디에 사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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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ceptzine

 

 

슬기로운 염탐 생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게 느껴질 때쯤 어김없이 찾게 되는 매거진이 있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사이즈가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컨셉진'이다. 지루한 일상에 작은 영감을 준다는 문구만큼 방구석 쪼그라든 마음에 소소한 기쁨을 주기에 충분하다.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


 

한 달에 한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별생각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다 보면 어느새 내 작은 일상에 애정을 가져다줄만할 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별것 아닌 것 같은 우리의 삶도 꽤나 매력적이고 개성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렇게 타인의 일상을 염탐하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일상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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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라고 말해


 

적막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TV소리밖에 없다. 주말 나들이를 대체하는 것은 집 안에서 가족과 함께 붙어 앉아 한 곳을 오랜 시간 동안 응시하는 것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이 지겨워질 때 마냥 가슴이 통쾌해지는 사랑스러운 드라마가 필요하다.



난 사랑타령하는 드라마가 좋아.

실제로 할 일은 없으니까.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 <멜로가 체질>을 보다 보면 생각 없이 흩어지는 대사들에 실소하게 된다. 극중 캐릭터 중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으니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잠시 정신줄을 놓아도 좋다.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오랫동안 다물고 있던 입이 나도 모르게 달싹 거린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주절거려도 될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가끔은 잠시 미친척하고 수다스러워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누구나 다 정상적이면 재미가 없으니 말이다. 나 한 명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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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뮤(OIMU)

 


아직 살아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잡념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변을 둘러싼 퀴퀴한 분위기를 가장 빨리 환기시킬 방법이 있는데 바로 공간의 향기를 바꿔보는 것이다. 취향에 맞는 향에 맞춰 인센스를 피우다 보면 잠시 우울해진 마음들을 바로잡고 마음을 단정히 하기에 좋다.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기에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잠시 멈춰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다.


 

인간의 감각 중 후각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초적 감각이라고 한다. 자극적이고 일시적인 감각 매체로부터 잠시 달아나서 숨겨진 감각들을 일깨워주는 후각적 요소에 집중해보기를 바란다. 혹시나 방구석에만 조용히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사 여부를 알리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향을 피우며 가족들에게 전하자. '저 아직 살아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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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R

 

 

방구석 그루브


 

몸이 답답하고 근질근질하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를 켜고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를 봐야 한다. 미국 워싱턴 NPR Music에서 주최하는 채널로 말 그대로 작은 사무실 세트장에서 여러 뮤지션들의 라이브 콘서트가 펼쳐진다. 신예 아티스트부터 유명한 탑 뮤지션들까지 장르, 인지도 불문하고 펼쳐지는 공연들은 그 어떤 대규모 콘서트도 부럽지 않다. 공간은 무척 비좁고 작지만 그만큼 아티스트들의 매력을 세세하게 느낄 수 있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가장 추천하는 영상은 Coldplay의 콘서트다.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친 우리들을 격려해 주는 기분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서로를 향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위로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신나게 춤추고 노래할 음악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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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현실 도피하기


 

지금껏 나열한 팁들이 변변찮게 느껴졌다면, 이번엔 아예 '제대로' 현실을 도피해버리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면 아예 그 현실에서 잠시라도 도피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 어떤 것들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더 쉽고 짜릿한 방법이 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집에 있다면 이 글을 읽고 당장 시도해볼 수 있다.

 

당신의 오랜 무기력증을 한 번에 날려주는 가장 빠른 방법, 바로 찬물 샤워를 해라. 그냥 덜 따뜻한 물이 아니라 골수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미칠 듯이 차가운 물로 한번 샤워를 해보길 바란다.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를 더하고 싶다.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첫 1분은 답답했던 잡념들이 씻겨나가고 5분을 넘게 버티면 당신이 머무는 곳이 완전히 색다른 곳으로 변한다. 고독한 방구석에 있지만 늘 짜릿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자하는 지극히 사소한 나의 노력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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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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