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인분의 삶 [사람]

원룸 계약부터 입주까지
글 입력 2020.04.0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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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기


 

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나같이 겁이 많은 인간에게는 무언가 저지를 때 건덕지가 필요하다. 수영 강습을 마치고 들뜬 기분으로 김밥을 포장하고 있다가 집으로 10분 내로 오라는 전화에 김밥 포장을 취소하고 버스정거장 약 네다섯 개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는 동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다리는 달리고 있는데 머리는 멈추고 싶었다. 가족의 일을 감당하고 에너지를 몽땅 쓰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콧물이 뇌를 채운 것처럼 머리가 띵해도 누가 나를 가라앉히려고 애써도 그보다 난 더 애쓰려고 해왔다.


다들 이런 지옥쯤은 있는 거겠지 하면서 수영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얼어버린 땅에도 마침내 봄이 온다고 가르치고 연애도 하고 토익스피킹 시험을 보고 나의 상품 가치를 피력하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그랬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족 운이 없었다고 자조하고 떨쳐버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던 가급적 빨리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부모 품을 벗어나는 것이 서로를 돕는 길이다.

 


모험을 하기로 했다. 아직 졸업도 취업도 못한 상태지만 이런 글을 보았다. 1인분의 삶을 살기로 했다. 어떨지 감이 전혀 안왔다. 단지 내가 나를 기뻐하게 하고 슬프게 할 수 있는 삶을 늘 바랐다. 코로나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결단력이라고 생각했고 이사를 강행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들 또 이사 오기 전 했던 결심들을 기억하기 위해 또 나처럼 자립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한다.

 

 


2. 방 구하기


 

어느 동네로 갈지 먼저 정해야 하는데 나는 아주 멀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동네를 정하고 네이버에 00동 원룸이라고 검색하면 매물들이 뜬다. 그중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보증금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월세 마지노선을 검색조건에 설정한 뒤 괜찮은 방을 가진 부동산에 전화한다. 부동산과 약속을 잡고 방문하기 전 내가 원하는 조건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미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남향인지, 맞은 편에 건물이 있는지, 방음은 어떤지, 수압은 센지, 벌레가 있던 흔적이 있는지, 벽지에 냄새가 베겨 있는지, 화장실에는 창문이 있는지, 방충망이 설치가 되어 있는지, 세탁기와 에어컨 냉장고 등의 옵션이 있는지, 주방과 방이 분리형인지 아닌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신발장이 있는지, 옷장이 있는지, 도어락이 설치 되어 있는지, 버스정류장과 거리가 가까운지 등의 조건 중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선순위를 먼저 정해 절대 포기하면 안되는 조건을 생각해둔다.


그러고 나서 방을 보러 간다. 꼼꼼하고 예리한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면 같이 가는 것을 추천한다. 눈이 두개인 것보다 네개 인 것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먼저 내가 인터넷에서 본 방을 보여준 뒤 비슷한 조건의 방들을 보여줬다. 이때 기억해야 할 건 물건을 살 사람은 나라는 것이다. 아무리 아주머니가 이정도면 괜찮다고 할 지라도 1년 동안 살 사람은 나이기에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첫 번째 방은 단란주점이 있는 상가였고 밤에 얼마나 시끄러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두 번째 방은 나침반 어플이 가리키는 건 남향이었으나 맞은편에 층수가 높은 건물이 있어서 해가 들지 않았다. 세 번째 방은 부엌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네 번째 방은 화장실에 창문이 없었다. 어떻게든 물건을 팔려는 아주머니의 강한 기운에 금세 지쳤다.


여러 방을 더 보았고 마지막으로 본 방은 햇살이 잘 들고 화장실에 창문이 있고 벌레가 없고 널찍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방은 동영상을 찍어 남겨둔다. 많은 방을 보다보면 방의 구조가 다 비슷해보여 헷갈린다. 부엌, 방, 화장실, 베란다 곳곳을 동영상을 찍어 남겨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른 부동산에 가서 방을 몇 개 보다가 전날 본 방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3. 계약


 

전날 봤던 부동산에 전화해 방이 마음에 드는데 한번 더 보고싶다고 한 뒤 계약을 진행했다. 필요한 건 내 신분증뿐이었다. 방을 구하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데 계약은 순식간이었다.


계약서에 불필요한 내용은 없는지 확인하고 인터넷에서 시킨 대로 부동산등기부등본을 뽑아달라고 한 뒤 근저당권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내 보증금은 안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인지 확인했다. 입주날을 정하고 계약서 이곳 저곳에 서명하고 계약금(보증금의 10%)만 집주인에게 송금하면 된다.

 

 


4. 입주


 

이삿짐 옮기는 건 애인의 차로 하기로 했다. 집에서 옷과 책만 가져오기로 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게 되었고 앞으로 함부로 들여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넷 이전신청을 하고 가져갈 책과 가져가지 않을 책을 분류하고 17kg 가량의 옷을 버렸다.


입주 전날 나머지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보낸 뒤 비밀번호를 받아 걸레로 방을 한번 싹 닦았다. 입주날, 짐을 옮기고 가스와 전기를 등록하고 다이소, 이케아, 모던하우스, 이마트 등을 전전하며 집을 채웠다. 인터넷으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고 이사 과정을 마쳤다.

 

 

 

5. 1인분의 삶


 

이 모든 단계를 일주일동안 강행했고 이사온 지 2주가 다 되어간다.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매트리스와 이불만 덜렁 있던 집을 부지런히 돈을 써 채우니 쉴 곳과 잘 곳, 씻을 곳과 먹을 곳이 분리되었고 때문에 지금 글을 쓸 시간도 생겼다.


1인분의 삶은 정말이지 1인분이다. 묻어갈 수 없는 삶이다. 깨끗한 집은 오롯이 내가 만들 수 있으며 건강한 몸 또한 내가 만들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뒤 화장실 개수대에 끼인 머리카락을 빼서 버리는 일, 거울에 내려 앉은, 창틀에 끼인, 조명 아래 쌓인 각종 먼지들을 닦는 일, 청소기를 돌리는 일, 매일 수건과 속옷 그리고 옷을 빨래하는 일, 오늘 하루 힘낼 수 있게 밥을 짓는 일, 마실 물을 끓이는 일, 간단히 꺼내 먹을 수 있는 반찬을 저장해놓는 일, 설거지를 하는 일,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일, 변기를 청소하는 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돈을 버는 일까지 모두 내가 책임져야할 것들이다.


이제야 내 삶을 가꾸어 가는 느낌이다.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그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단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를 돌보고 있는 느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선택한 것들 속에서 앞으로 더 주체적으로 삶을 경영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도와준 사람들이 없었으면 못했을 일이라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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