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가 저루샤 애벗의 가치를 증명하는 편지들, 키다리 아저씨에게 [문화 전반]

저루샤가 보내는 편지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가
글 입력 2020.03.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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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 벽장 혹은 스미스씨의 마음을 움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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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루샤는 스미스씨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제기한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스미스’라는 이름만으로는 옷걸이 혹은 벽장에게 편지를 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목석 같은 스미스씨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존 그리어 고아원 생활에 염증을 느낀 저루샤가 끄적인 <우울한 수요일>이라는 수필이었다.

 

저루샤는 누구나 우울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당차고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저루샤의 글에는 그러한 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가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씨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 보면, 어떻게 딱히 특별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일상 속에서 이런 재미있는 상상과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것이 바로 저루샤의 글이 가진 힘이다. 그녀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어느새 그녀의 일상 속에 들어가 기웃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저루샤의 글은 남들과는 다른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미건조한 일상 속의 조그만 의미조차 놓치지 않는 그녀의 세심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창에 앉은 다리 많은 거미를 보면서도 키다리 아저씨를 떠올리고, 수영을 배우면서도 젤리 속에서 헤엄을 친다면 어떨지에 대한 상상을 한다. 저루샤를 보면서 느낀 것은 글감은 꼭 특이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치는 대상 앞에 멈춰 앉아 한참을 생각하고 상상해보는 일이 글의 시작이다.

 


 

양복을 빼입고 지팡이를 짚은 평의원 스미스, 다정한 도련님 저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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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루샤가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스 도련님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황상 그녀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독자는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그 누가 저루샤의 입장에서 여자아이는 싫어한다던 평의원 스미스씨와 제멋대로이지만 귀족가의 격식을 싫어하고 다정한 저비스가 동일 인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을까?

 

스미스와 저비스 도련님은 키다리 아저씨의 이중적인 자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비스는 허영과 무의미한 격식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펜들턴가를 벗어나고 싶어하며 일탈을 즐기는 자유롭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그는 수요일마다 양복을 빼입고 존 그리어 고아원에 방문하여 원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차를 마시며 보고서를 읽고, 일렬로 선 아이들을 한번씩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는 평의원 스미스씨가 된다.

 

물론 저루샤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특별 케이스다. 그녀의 글만 읽고 여자 아이는 후원하지 않는 다는 그의 원칙을 깨고 저루샤를 대학에 보내주기로 한 스미스씨이지만, 그가 모두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고아원 아이들의 상황을 헤아리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이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저비스는 펜들턴가의 권력주의적인 모습이 싫어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고아원 평의원으로서 자신의 모습은 펜들턴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이러한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후에 저루샤에게 상처를 주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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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필자가 인상 깊었던 점은 저루샤의 시점으로만 쓰여진 소설과는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저비스의 고민과 고뇌를 다루었다는 점과 소설 속에서는 저비스가 키다리 아저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루샤가 그저 놀라는 정도에 그쳤다면, 뮤지컬에서는 저루샤가 받은 상처를 표현했다는 점이었다.

 


 

키다리 아저씨의 연인 저루샤가 아닌 작가 저루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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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뮤지컬을 불문하고 키다리 아저씨의 서사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사실 결말 부분이다. 저루샤는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스였다는 사실과 그의 진심을 알게 된 후 그의 연인이 된다. 두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필자가 이러한 결말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저루샤가 사랑 없이는 의미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재치 있는 문장력과 글을 이끌어 가는 능력에 키다리 아저씨는 저루샤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그러한 저루샤의 작가로서의 능력보다는 키다리 아저씨와의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저루샤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관계와 로맨스를 중점적으로 다룬 결말로 인해 키다리 아저씨가 저루샤를 특별히 여기는 이유도 그녀의 능력 때문이 아닌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필자는 키다리 아저씨의 서사를 정말 좋아하지만, 결말 부분만큼은 ‘저루샤와 저비스가 결국은 연인이 될 것인가’가 아닌 ‘저루샤가 앞으로 어떠한 마음과 방식으로 글을 써갈 것인가’를 보여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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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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