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과 현실의 경계, 연극 '환상동화' [공연예술]

현실은 환상 같은 것. 환상은 현실 같은 것. 꿈꾸는 자에게 그 경계는 무의미하다.
글 입력 2020.03.3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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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 나는 유독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디즈니스러운 것’과 애니메이션, 동화책을 좋아하고,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꽉 막힌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며, 환상을 좇는 사람을 아직 현실을 잘 모르는, 차가운 현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문화예술을 소비한다는 것은 ‘사치’가 되기도 한다.

 

나는 항상 이런 말들에 반대하며 문학과 문화예술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각종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마주할 때면, 혹시 문화예술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수단,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지 않을까, 이게 정말 이 막막한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로는 절대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이 자꾸만 든다. 꿈과 환상이 정말 현실에 필요할까.

 

 

전쟁도 현실은 아냐

현실보다 잔혹한 환상


사랑도 현실은 아냐

현실조차 망각한 환상


예술도 현실은 아냐

현실을 닮은 고귀한 환상

 

 

연극 <환상동화>는 제목처럼 동화 같다. 객석에 들어서면 오래된 서커스 무대처럼 어딘가 환상적이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치 동화 속 공간 같은 무대가 보인다. 그곳에 자신들이 신이라 우기는 세 광대가 등장한다. 전쟁광대, 사랑광대, 예술광대, 이들은 각자 전쟁, 사랑,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며 실랑이를 벌인다.

 

결국 세 가지가 모두 나오는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무대의 막을 올린다. 그리고 무대 위에 한스와 마리를 창조시킨다. 광대들이 릴레이 소설을 읽듯 이야기를 만들고 주고받으면, 한스와 마리는 그것에 맞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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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광대는 이들을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차가운 현실 속으로 던져놓아 좌절하고 주저앉게 한다. 한스는 전쟁으로 귀를 잃었고, 마리는 눈을 잃었다. 예술광대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의 음악과 춤이 멈추지 않도록 이끈다. 사랑광대는 예술을 통해 교감하는 한스와 마리가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사랑하게 한다.


하지만 전쟁광대는 ‘달콤한 환상은 현실의 비극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비웃는다. 사랑광대와 예술광대가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가 한스와 마리가 행복해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끼어들어 사랑과 예술을 논할 수 없는 잔혹한 현실 속으로 다시 끌어들인다.

 

"사람이란 비명과 함께 태어나 고통과 함께 살고 결국 절망하며 죽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전쟁광대가 주로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랑광대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들의 고통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다급하게 끼어들어 한스와 마리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안을 얻게 한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싹튼 사랑으로 조금의 희망을, 작은 불빛을 보게 한다. 그 불씨를 꺼버리려는 전쟁광대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칠흑 같은 어둠에 빠져 모든 의지를 잃었던 마리는 사랑을 통해 다시 삶의 달콤함을 맛보았고, 꿈꾸듯 춤을 추며 어둠을 이겨나간다. 소리를 잃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던 한스는 마리의 춤에서 세상을 채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한스와 마리는 서로의 춤과 음악을 통해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사랑의 고뇌처럼 달콤한 것은 없고 사랑의 슬픔처럼 즐거움은 없으며 사랑의 괴로움처럼 기쁨은 없다. 사랑에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다."


"인생이란 가시 돋친 장미나무이며 예술은 그 나무에 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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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극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광대들은 한스와 마리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을 마리오네트로 이용해 동화 구연을 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다. 자신들을 신이라 자칭하는 광대들과 그 신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되고 움직이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이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 마리오네트들은 광대의 조종을 벗어나 자신들의 의지로 움직인다. 인간은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한스와 마리도 광대들이 창조하고 움직이는 대상이었지만, 마지막에는 그것을 깨고 그들이 창조한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잔혹한 현실은 여전했지만, 한스와 마리는 이제 그 어둠 속에 주저앉아있지 않는다. 그들은 예술과 사랑이라는 환상을 멈추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고, 그 이야기의 끝도 스스로 쓸 것이다.


 

예술광대  현실은 환상 같은 것. 환상은 현실 같은 것. 꿈꾸는 자에게 그 경계는 무의미하다.

사랑광대  한스와 마리의 환상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전쟁광대  하지만 밖은 여전히 전쟁터. 한스와 마리의 현실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그렇게 사랑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예술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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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도 현실도 모두 삶의 일부이며, 둘 중 하나만 있는 삶이란 없다. 그 둘은 애초에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한 편의 연극, 환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전쟁, 사랑, 예술 또한 모두 환상이자 현실이다. 사랑과 예술도 마냥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은 죽음과 이별, 괴로움과 슬픔을 수반한다. 예술도 고뇌를 통해 탄생하며, 절망과 희망, 삶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그린다.

 

전쟁과 공포는 언제나 인간의 곁에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랑과 예술도 항상 인간에게 있을 것이다. 그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사랑과, 전쟁과, 예술은 계속된다. 인간은 환상이든 현실이든 꿈꾸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괴도 창조도 가능하다.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절대적인 힘에 의해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그 불투명 속에서 삶을 계속하게 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인간은 슬픔과 환희가 뒤섞인 사랑과 예술, 그리고 전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쓴다.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사랑과 전쟁과 예술 모두이다. 그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은 채 스스로 생각하고 꿈꾸는 자에게 환상은 현실이 된다. 적어도 그 사람의 세계는 변화하고 새롭게 탄생한다. 그렇게 창조된 세계에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엔딩을 정할 수 있다. 그 엔딩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든.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영원히 남는다.

 

 

꿈꾸는 자에게 동화는 동화책에만 존재하지 않고 환상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들은 꿈을 꾸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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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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