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도 지구는 돈다면, 너의 별을 쫓아 - 최후진술 [공연]

글 입력 2020.03.30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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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사랑한 대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시를 사랑한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던 동갑내기 두 인물이 천국 가는 길에서 만나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지지한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로마교회의 종교재판을 받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살기 위해 자진하여 맹세한다.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의 ‘속편’을 저술하겠다고!

속편을 쓰기 위해 피렌체의 옛집으로 돌아온 갈릴레오는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고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의 최후진술은?
 

2017년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랙 초연 이후 매년 성공적인 재공연을 이어온 창작뮤지컬 <최후진술>이 새로운 캐스팅과 함께 예스24 스테이지로 돌아왔다. <최후진술>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천국에서 만난다는 재치 있는 설정의 뮤지컬로, 소극장 공연만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이해하기 어려울까봐 긴장하며 공연장을 찾았고, 걱정이 무색할 만큼 뮤지컬은 즐거웠다. 역사적 지식 없이도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뿐더러, 통통 튀는 인물들의 매력 때문에 한순간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뮤지컬 <최후진술>은 아름다운 무대 배경과 신나는 음악, 개성 있는 인물들이 어우러져 관객에게 에너지를 전달한다. 총 23개의 넘버로 이루어진 뮤지컬을 따라, 별처럼 빛나는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에 함께 설렐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최후진술>의 인물들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별을 쫓던 두 남자


과학자 '갈릴레오'와 극작가 '셰익스피어'. 참 멀어 보이는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다른 듯 서로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속에 빛나는 별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펜과 노트를 통해 별을 바라보았다. 별을 바라볼 때의 그들의 눈은, 그 별처럼 빛이 났다.
 
죽은 후 천국으로 가는 길에까지 '갈릴레오'는 천체 관측을 위해 망원경을 보았다. 그는 별을 보며 황홀감에 젖었고, 우주의 신비를 노래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삶과 죽음조차도 별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었다. 지동설을 부정하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지 하지만, 별을 향한 그의 진심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 '갈릴레오'의 모습을 보며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글에만 너무 빠져 주변 사람에게 상처도 많이 줬지만, 그는 죽어서까지도 여전히 이야기를 쓸 생각에 설레한다. '갈릴레오'를 자신의 주인공이라 부르며, 새로운 소설을 꿈꾼다. 그의 마음속 문학이란 별은 공연 내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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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른 곳을 향했지만, 별을 품은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1564년생 동갑내기 둘은, 별을 너무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대과학자, 대문호가 되기까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열정을 쏟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별을 쫓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가슴이 뛰었다.


 
진실도 진심도 없던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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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모두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진실임을 아는 시대에 사는 나는 그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진실이었다. 그 누구보다 '갈릴레오' 자신이 가장 절망적이고 무력했을 것이다.

살아서 했던 그의 진술과 그가 준비하던 속편은 전부 그를 위한 것들이 아니었다. 세상과 타인이 요구하던 것에 맞춘, 진실도 진심도 없는 허울뿐인 진술이었다. 최후 “진술”을 하라며 거짓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사실상 ‘갈릴레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토록 빛나는 별을 품고 있음에도 홀로 빛을 잃어가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함께 아파야 했을 테다. 극 중 ‘갈릴레오’가 속편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한 ‘존 밀턴’이 실망 섞인 목소리로 거절하는 장면 역시 돌이켜보면 참 아팠다. ‘갈릴레오’의 별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한 ‘최후진술’


하지만, 결국 ‘갈릴레오’도, ‘셰익스피어’도 마음속의 별이 외치는 진술을 해낸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진짜 “진술”을 해낸다. 시대는 아직 천동설을 원하고 있었지만, ‘갈릴레오’는 당당하게 외쳤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의 심판에 관여해서는 안 되었던 ‘셰익스피어’ 역시, 규칙을 어기고 그의 진술을 돕는다. 결국 마지막에 진술해낼 그의 주인공 ‘갈릴레오’를 위해, ‘셰익스피어’는 임무를 포기한 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한다. 마음속 별을 사랑한 두 사람은, 결국 그 무엇보다 가치있는 것은 바로 그 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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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최후진술>은 그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곳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일을 했고, 믿는 것을 따랐다. 분명히 통했을 거라 생각한다. 사후 세계에서 만난 고인들은 ‘갈릴레오’의 업적을 인정했고, 천동설이 틀렸음을 알았다. 그들은 죽어보니 ‘갈릴레오’가 맞았다고 했다. 진실이라면 언젠가 밝혀진다.

확실한 건, 최후진술을 하던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는 그 어떤 때보다 자신감 있고, 빛났다. 확신에 찬 눈은 그들이 쫓던 별을 담고 있었다. 세상의 잣대가 그들을 어디로 보내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진술에는 진실과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걸로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거짓된 진술을 해야 했던 ‘갈릴레오’의 죽어 있던 눈빛은, 그가 아니었다. 매일 망원경으로 별을 바라보던 때의 설렘, 그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는 진술이 그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진짜 살아있지 않으면 어떻고, 시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는 그의 별을 따랐기에 가장 빛날 수 있었다.

별을 쫓던 두 남자,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 뮤지컬 <최후진술>은 창작된 판타지 극이지만, 실제 17세기의 그들이 마음속의 별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지금까지도 가장 빛나는 역사적 인물들로 남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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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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