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사람들을 너무 일찍 만났다 [사람]

나는 누구에게나 좋았을까
글 입력 2020.03.2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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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친한 친구의 글을 읽었다. 늘 사유하려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진 친구였기에, 그가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의 여러 글 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손님들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겉과 속이 달랐던 세 손님과의 일화였는데, 이들 모두 친구를 하대하며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어떤 순간에 마주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약자로 취급하며 친구에게 돌을 던졌던 그들 또한 어떤 이에겐 인심이 넉넉한 사람 혹은 천사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왜, 이름 모를 아르바이트생에게만큼은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었을까. 친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애써 감싸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들도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어른이기에 미숙한 실수를 저질렀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리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나 좋은 인상을 심어준 사람이었을까.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과거를 곱씹다 보면 늘 아픈 손가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아픈 손가락들은 모두, 내가 미숙했던 시절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는 이들이었다면 소주 한 잔과 함께 진솔하게 털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관계가 끊긴 사람들이다. 어리숙한 관계였기에 끊기기 쉬웠고, 그래서 후회가 남는 사람들인 만큼 가끔 더 생각날 때가 있다.

 


 

후배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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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중 제일 아픈 이를 꼽자면, 이는 바로 후배 A이다. 3년 전,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난생처음으로 후배가 생겼다. 물론 후배라는 개념을 정의해보면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들도 전부 후배였지만, 진심으로 챙겨주고 싶은 동생은 처음이었기에 첫 후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정말 착했다. 그리고 순수했다.

 

선·후배 관계를 맺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A는 내게 너무나 과분한 생일 선물을 주었다. 대학생이라 용돈이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성심성의껏 생일을 축하해주려는 마음이 예뻤다. 그리고 학보사 특성상 밤샐 일이 많아 나흘째 밤을 새우는 내게, 그는 다가와서 애교 섞인 말투로 힘내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냉정한 말투로 문장을 다듬어오라는 나의 지적에 서운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본인 또한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에 선배를 위로하려는 행동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다정한 선배가 되지 못했다. 어느 날 신문사의 비상계단에서 A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학생이 짊어지기엔 많은 양의 학보사 업무가 부담됐나 보다. 수업 시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 될 만큼 바쁘고 고되었던 우리의 틈에서, 후배는 어떤 즐거움도 얻지 못했다.

 

자신이 그만둘 수밖에 없는 힘든 심정을 고백하는 후배를 보며, 나는 크나큰 자책감에 휩싸였다. 마음고생으로 얼굴이 상한 후배의 얼굴에서 컴퓨터 타자기만 두드렸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됐다. 힘든 몫을 나눠주는 선배가 되고자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저 내 업무에 매진하기만 했다. 눈앞의 마감에만 집중하며 따뜻한 말보다 따끔한 지적만 내세웠던 선배에게서 어떤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A는 학보사를 그만뒀다. 여전히 바빴던 나는 ‘나중에 따로 밥 먹자’라는 A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바쁜 건 핑계였다. A의 얼굴을 보게 되면 또 무심했었던 나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아서, 그런 그에게 면목이 없어서 회피했다. 만나는 자리에서 미안하다며 후회 가득한 말을 하게 될 자신이 보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A의 얼굴은 점차 희미해졌고 그와 관련한 기억도 자연스레 희석됐다. 후배가 그만둔 후 한동안 허전하고 우울했던 나날들도 점차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로 변모되어 갔다. 그 평범한 하루에 문득, 그리고 비로소 A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강의 시간에 무심결에 펼친 다이어리 때문이었다. 평소 잘 관리하지 않다가, 강의 자료를 깜빡하는 바람에 필기할 공책이 필요해 챙긴 다이어리였다. 그 다이어리에서, 아는 의문의 쪽지를 발견했다.

 


“선배는 정말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될 거예요. 늘 감사했습니다”


 

이는 A가 학보사를 떠나기 전, 내게 남긴 편지였다. 길지도 않은 그 한 마디는, 적어도 후배는 끝까지 우리의 관계에서 성숙했음을 보여줬다. 미안한 감정이 싫어서 후배 자체를 기억에서 지우려 했던 나와 달리, 그는 나를 다정한 선배로 기억하겠노라 다짐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편지를 떠올리면 정말이지, 나는 끝까지 부족한 선배였음을 깨닫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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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서 배우 윤은혜 씨는 “좋은 작품을 너무 일찍 만났다”고 말했다. 좋은 작품을 만나고 끝을 맺는 과정에서, 배우로서의 자신이 너무 미숙했다는 의도였다. 배우는 아니지만 나 또한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좋은 사람들을 너무 일찍 만났다.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나로 인해 마음에 상처 혹은 생채기가 난 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생긴 상처를 제때 제대로 치유하지 않고 도망간 것에 대해 사과한다. 그때보다는 더 노련해진 지금 이들을 만난다면, 미안함을 이유로 애써 숨지 않을 것이다. 머쓱한 얼굴 대신 반가운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 혹은 ‘네가 좋다’라는 말을 더 건네고 싶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이다. 어떤 순간에 만나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친구의 말처럼, 지금도 상황에 따라 나에 대한 평판은 시시각각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숙해지고 있으며 또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대한 모든 이와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이 글을 빌려 나라는 사람을 끝까지 후배로서 지지해 준 A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마디 더 하자면, 나 또한 당신을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전하고 싶다. 이제는 아픈 기억이 아닌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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