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 움직이는 눈: 안 보이는 것을 바라보기 [사람]

글 입력 2020.03.2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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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마지막 장면이다. 엄마(김혜자)는 관광버스에서 한이 서린 격렬한 ‘관광 댄스’를 춘다.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춤의 사전적 정의는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엄마(김혜자)의 관광 댄스를 보고 단순히 흥나는 춤으로만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이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빛을 보다


 

앞에서 누군가 춤춘다고 다 같은 춤이 아니듯이, 앞에 보이는 사물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이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명작 <인상, 해돋이>에서 그는 르아브르 항구에서 아침 풍경의 색을 캔버스 위에 칠한 것이 아니라, 빛을 칠했다. 그는 빛이야 말로 풍경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시시각각,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흐름에 따라 빛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주목해 <건초더미> 30여점 의 작품을 그렸다. 모네는 표면의 건초더미의 형상과 색깔을 만들게 해주는 이면의 근원, 바로 빛을 포착해 그린 예술가이자 과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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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으로 빛의 본질을 밝힌 뉴턴, 붓으로 사물의 진실을 그린 모네


 

'보이지 않는 빛을 보고 그린다,' 이는 철학적인 사고라기보다는 과학적인 사고다. 우리 눈과 뇌는 사물이 반사하는 빛의 파장을 인식하면서 특정 색으로 판단한다. 빛은 긴 파장부터 짧은 파장까지 이루어진 전자기파이며 파장의 길이에 따라 에너지 크기가 다르다.


영국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빛이 프리즘을 지나면 무지색이 나타나며 에너지 크기에 따라 색이 정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고 있는 사물의 색의 본질은 파장, 다른 말로 빛이기 때문에 모네는 숨겨진 사물의 본질을 그려내려는 대담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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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은 빛의 파장을 어떻게 색으로 인식할까?


 

모네에게 특정 시간에 건초더미가 갈색으로 보였던 이유는 건초더미가 그 때 갈색 파장을 반사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과정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사물이 반사하는 빛의 파장은 우리 눈의 각막을 통해 수정체를 지나 망막에 도달한다. 이 때 망막에 있는 시각세포에서 전기 신호가 발생하여 신경을 지나 대뇌로 이동한다. 뇌는 빛의 파장과 그 에너지를 인식하여 우리는 특정색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시 모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모네가 같은 건초더미를 수십 개의 버전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날에는 건초더미가 갈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물감으로 건초더미의 ‘색’이 아니라 ‘빛’을 그려야 건초더미의 본질에 더 가깝게 그릴 수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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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빛보다 더 본질을 추구하는 미술 운동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초에 등장한 입체주의다. 3차원의 사물을 2차원 캔버스에 옮기는 미술 운동이었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원근법, 형태, 그리고 색채를 무시했다. 그들은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그렸다.


대표적인 입체주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그린다”는 명언까지 남겼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생각’함으로써 이를 붓으로 캔버스에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서 보는 정보가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모습도 있는 것이고, 때로는 그것이 진실일 수 있다. 영화 <마더>에서 엄마(김혜자)의 관광 댄스이 흥겨움이 아니라 상처가 깃들어있다는 것이 춤의 본질일 수 있다.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 말투, 차림새, 등에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이면의 모습을 알아봐주길 바란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는 해맑게 웃거나 과장하면서 상대방에게 재미를 주는 이들의 눈동자를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는 울음과 한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난 문득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날씬했던 몸은 온데간데없어졌으며 희끗희끗한 머리, 양쪽 볼에 검버섯, 그리고 눈가에 깊게 파여 있는 주름이 보였다. 65년의 세월 안에 지혜와 연륜, 그 안에 수많은 희로애락의 증표인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알수 없는 이유로 퉁명스럽게 나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의로 상처주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표면적인 엄마의 공격 안에는 그런 상처를 받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보이는 모습, 들리는 말, 이런 밖으로 드러나는 요소로 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우리 어머니만 볼 수 있던 아버지의 가능성


 

“너희 아버지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했어!” 우리 어머니는 20대를 회상하면서 말을 건넸다. 우리 아버지는 대학원생 때 엄마와 결혼해서 단돈 몇 만원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프랑스 유학길을 떠나셨다.


어머니 주변의 친척들은 다 말리셨다고 했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 가난한 집안에 대학원생과 결혼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겉모습이 아니라 미래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과 희망을 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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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파리

 


 

가능성과 희망을 보기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은 때로는 어렵다.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할까봐 두려울 수 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최근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난 십년 전에는 너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신의 아들과 딸에 대한 어떤 상상을 펼쳤을 테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모습에 한탄하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기대하래?’ 라며 울컥 반항심이 들다가 문득 생각해봤다. 아버지께서는 십여 년전, 별 볼일 없는 어린 나에게 특별함을 봤던 것이 아닐까? 다만, 아버지로서 약간의 욕심이 가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모습이 되던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고 말씀하신다. 현재 내 모습이 너무 ‘특별’한 것이 없어서 미래의 모습이 상상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계속 기대하고, 상상하고, 희망을 갖고 계신 아버지께 감사할 따름이다.


세계적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20대 때 지역방송의 기자였다. 전 세계 15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SNOW FOX)의 CEO 김승호 회장은 한 때 미국 마트 김밥코너 작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모두 현재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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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플라톤은 이런 말을 남겼다: "타인에게 친절해라. 그대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현재 그들의 삶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 그 사람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해야할 것이다. 이게 그 사람의 본질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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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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