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망, 타진 기원! - 걸캅스 [영화]

글 입력 2020.03.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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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퍼진 세계적 대유행의 바이러스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이다. 사실 디지털 성범죄는 최근의 뉴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디지털 성범죄가 이미 한 두 해의 일이 아님은 모두가 알 것이다. 가장 최근의 n번방 사건을 비롯해 작년에는 버닝썬 게이트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소라넷이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은 범죄가 행해진 공간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똑같다. 한국의 여성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한낱 바이러스가 아니다.

 

 

 

영화 <걸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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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캅스>는 2019년 5월에 개봉한 영화다. 당시 이슈였던 불법 촬영물 사건을 해결하는 여성 경찰들의 활약을 유쾌하게 그려내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90년대 전설의 형사였던 미영(라미란)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민원실의 주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미영을 보며 형사의 꿈을 키운 지혜(이성경)는 강력반 형사가 되어 팀의 사고뭉치를 맡고 있다. 지혜는 미영의 남편이자 본인의 오빠인 지철(윤상현)을 과잉진압해 민원실로 쫓겨나는 징계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신고 접수를 위해 민원실을 찾은 한 여성이 핸드폰을 남긴 채 차도에 뛰어든다. 핸드폰을 본 미영과 지혜는 그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영상이 퍼지기 전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 미영과 지혜는 천재 해커 장미(최수영)의 도움을 받아 비공식 수사를 시작한다.

 

 

 

평범한 다수의 악(惡)


 

약을 먹여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여성을 강간한 뒤 영상을 찍어 유포하는 범죄는 이제 한국에서 특이한 사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수가 많다고 하여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흔하고 많기에 피해자를 사지로 내몬다. 한때 '야동'이 유머 코드로 쓰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산 야동의 상당수가 여성의 동의 없이 촬영되고 유포된 불법 촬영물이라는 것을 안다.

 

작품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자책하는 수많은 여성은 감독의 상상이 아니다. 공권력의 보호와 대중의 연대가 필요한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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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남성 형상들이 불법 촬영물에 대해 말하는 대사는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남성들의 글과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지들이 좋아서 찍은 것 아니냐".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한 여성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남자 형사도 허다하다. 실적이 되지 않는 사건이라며 소홀히 여기는 남자 형사들의 모습은 현실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이렇듯 평범한 성적 욕구가 모여 악이 되고, 평범한 한 두 마디의 말들이 죽음을 부른다.


 

 

지금 필요한 연대


 

한국의 형사 버디물이라 하면 자연스레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 를 떠올리게 된다. <걸캅스>의 플롯은 사실 <투캅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안성기, 박중훈이 아닌 라미란, 이성경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주인공들의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것은 많은 변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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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기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특히 성범죄에서 절대다수의 피해자는 여성이다. 성범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남성이 느끼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남자 형사의 대사 중에 "너도 여자라서 그러냐"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자이기에 강간 및 불법촬영을 큰 범죄라고 느끼고, 남자가 아니기에 별거 아닌 일이라 넘길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피해자와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있었으리라. 앞서 말했듯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만약 피해를 당하더라도 기댈 곳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은 약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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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의 연대다. 미영과 지혜뿐 아니라 장미와 민원실장님까지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연대한다. 영화의 첫 시퀀스인 박미영의 검거 장면을 클라이맥스에 지혜가 이어받아 오마주 하는 연출은 여성의 연대가 이어져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대의 가시화가 <걸캅스>라는 작품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주인공 역할에 라미란 배우를 정해 두고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검증된 연기력과 문제를 두고 볼 것 같지 않은 고집스러운 강인함, 해결사 같은 든든함이 '미영'을 에너지 있는 인물로 만들어 주었다. 파트너인 이성경 배우 역시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호쾌함과 타인에게 공감하는 따뜻한 이미지로 '지혜'를 친밀감 있게 만들어 주었다. 라미란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라는 점 역시 상징적이다. 이제서야 그의 진가를 발휘할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수록 연대라는 힘이 생긴다. 여성들이 언제까지고 숨죽여 울며 자신을 자책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제 여성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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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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