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혼에 대한 고찰 [도서]

결혼의 재정의
글 입력 2020.03.22 16: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릴 적 나는 로맨스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으레 그렇듯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슬로우모션’ 효과로 처리된다.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모르는 사이건, 아는 사이건 상관없이) 자신도 모르게 특정 순간에 반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렇다. 나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낭만적으로 사랑을 정의해온 것이다.



people-2597454_640.jpg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드라마 내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은 힘들다. 온갖 역경은 너무나 많고, 온 우주가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쌍방향의 사랑을 시작하기에 우리는 자연히 예상한다. ‘온갖 역경이 있더라도 결국은 사랑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과정은 너무나 짧고 드라마는 어느새 결말을 향해 달려가 있다.

 


“우리는 러브스토리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27p)


   

그래서 나는 결혼이 무서웠다. 로맨스 드라마, 영화, 소설 심지어 예능까지 모든 플랫폼을 통해 연애를 통한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포장되는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자 모든 게 180도 변화한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다.”, “그때가 좋은 거다.” 자기는 언제 결혼하고 싶어 느냐는 듯이 기혼 남성이 미혼 남성에게 결혼을 만류하는 모습이 하나의 유머로 치부되고, 위자료나 양육권 소송을 담은 이혼 기사들 등 서로를 상처 주는 모습이 당연해지고 낭만의 순간은 모두 사라진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중간에 ‘끝’이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처럼 제목과는 반대로 이혼에 관해 다루는데, 타 영화와 달리 낭만의 베일을 벗고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덜 현실적인 영화이다. 주연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하면서도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인다.


감정이 고조되며 두 사람은 서로의 죽음을 바라며 직접적인 독설을 가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고 싶어 결정한 결혼이라는 선택이, 누구보다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모순을 만들어 나는 결혼을 싫어했다.


 

IMG_2228 크기 수정.jpg

 

 

그래서 이 책에 더욱 빠져들었다. 초기의 내가 정의했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진부한 연애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곧장 제목답게 결혼 ‘후’의 일상, 즉 실상을 밝히며 보기 좋게 낭만을 깨트려버린다. 나아가 그 이상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면모까지 보여준다.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7p)



“분별 있고 예의 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124p)


 

부정하고 싶어 했던 감정들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깊은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 애정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오히려 아직 사랑하기에 발현될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별 탈 없음을 뜻하는 별난 징후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상대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것. 일이 정말로 나쁘게 돌아갈 수 있음을 잘 알 정도로 우리가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신경을 쓸 만큼 충분히 애정을 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81p)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결혼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짝사랑을 시작하거나, 흔히들 ‘썸’이라고 하는 연애 직전 단계를 거칠 때마다 나는 조급해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얼른 확인하고 내 안의 불안감을 종식하고 싶었다.


언제든 이별의 준비가 되어있는 연애보다는 결혼을 하면 더 이상의 불안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불안이 내가 바라지 않는 결혼의 모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도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는가.


*


확실하게 하고자, 나는 결혼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의지해가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오히려 상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결혼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즉 사랑의 ‘중간 과정’을 알아버렸기에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결혼을 고려해볼지도 모른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겸양과 실망을 다룰 줄 아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가 장미의 줄기나 블루벨 꽃잎에 감탄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무엇인가 영구적으로 망가져봐야 한다."


  

나는 꽃을 정말 좋아한다. 그렇기에 꽃을 진심으로 감탄하는 사람, 바닥을 치며 서로를 이해해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감탄을 보낸다. 그저, 나는 아직 두려울 뿐이다.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하고 실망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말이다.

 


 

 

에디터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