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함은 어둡고 무서운 감정인가요? [사람]

우울함에 익숙해지기
글 입력 2020.03.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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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 것 같다. ‘집에서 쉬는 것도 하고 싶을 때 해야 행복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정 시간 이상 집에만 있으면 나태해지고 몽롱해지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정지’ 상태가 된다. 이때 우울함은 바쁘게 살며 억지로 눌러놓았던 틈을 비집고 나와 사람들을 쉽게 지배한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자극이 있어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은 큰 자극을 받아야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우울할 때 우리 각각은 다른 무게의 고통을 느끼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러나 우울함은 분명히 모두에게 존재한다.

 

겨우 20대인 나에게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고민 상담을 부탁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느꼈고 성장했으며 공유하고 싶은 내용도 있다. 지금은 우울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많은 이야기 가운데 자신이 우울함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다.

 

지인은 며칠째 어지러운 꿈을 꾼다고 했다. 자는 순간부터 어둡고 이상한 꿈을 꿔서 잠들기 무섭다고. 나는 물어봤다. “그 어두운 꿈속에서 너는 어떤데?” 지인은 자기가 꿈속에 없다고 대답했다. 특정한 사람도 사건도 없는 적막의 시간에서 헤매다 언제부턴가 현실에서도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우울한 꿈을 꾸어서 현실이 우울한 것인지 현실이 무의식중에 우울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인지 혼란스럽고 힘들다고 말하는 지인은 정말 그 상황을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보였다. 그런 지인에게 나는 이상한 말을 했다. “아예 우울해지려고 노력해보는 거 어때? 애매한 경계의 우울함 말고.”

 

지인은 황당해하며 나에게 물었다. “너는 우울했던 적 없어? 너는 없을 것 같아. 아, 물론 있겠지만 잘 이겨낼 것 같다는 말이야.” 나는 이 말을 듣고 나의 우울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내가 필연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의미 없는 편 가르기를 보며 왜 사람은 저렇게 이기적일까 우울해졌고 내가 재미없다며 다른 친구에게 가버린 친구를 볼 때면 마음이 우울함으로 가득 차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그토록 싫어했던 이기적인 마음을 정작 내가 품고 있다는 것에 대해 비관하며 우울해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 다인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고 세상에 대한 비관으로 항상 우울했다. (고등학교 때 나를 웃게 해준 소중한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울의 늪 그 이상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우울함을 느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우울함을 먹고 살아가는, 그래서 필연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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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함이 극도로 심했을 때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다들 즐겁고 설레는 시기에 나에게는 우울증이 왔다. 학교에 대한 불만족도 새로운 관계에 대한 무서움 그 무엇 때문도 아닌 나 자신에 관한 문제였다. 하루 내내 밥도 먹지 않고 방에서 멍하니 우울함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집 밖의 벤치에서 세 시간씩 앉아있고 길거리에 멍하니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조차도 우울함의 근원지를 몰랐기에 해결할 틈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더 막막하고 이러다가 인생이 곧 끝날 것 같다는 착각도 했다.

 

처음에는 우울함을 피하려고 해봤다. 웃긴 영상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다 해보았지만, 너무 우울해서 결국 나는 극단의 선택을 할 요량으로 우울함을 그대로 더 심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더 깊게 가라앉아야 할 그때 나는 다시 살아났다. 우울함을 다른 감정으로 덮으려 노력하지 않고 우울함 그 자체로 인식하는 순간 나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스스로 항상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를 탓한 적도 많았었는데 이 일을 겪으며 ‘우울함’이 과연 많은 책에 나온 것처럼 극복해야 하는 층위의 감정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을 통해 내린 결론은 피하지도 짓눌려 살아가지도 말고 우울함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함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나를 피폐하게 할 수도 어지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정에 대비할 무언가를 만들어 놓아 이미 익숙해진 우울함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나 같은 경우는 누군가가 나에게 연락할 방도를 다 끊은 채 정처 없이 발을 따라 돌아다닌다.


이외에도 종이에 잘 그릴 생각 없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다던가 멍하니 앉아 눈물을 흘린다던가 평소라면 별거 아닐 일에도 쉽게 감정을 쏟아낸다던가, 하는 자신에게 맞는 모든 것 말이다. 평소라면 이상해 보일 이 행동을 자신이 우울할 때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스스로가 먼저 받아들이며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극도의 우울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더 와 닿을지도 모른다.

 

벼랑 끝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순간에 받아들이고 눈을 감았는데 바로 아래에 나뭇가지가 있어 살았을 때. 아니면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울어버렸을 때 두 손 사이로 이상하게 크게 보이는 꽃 한 송이. 그 찰나에 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면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우울함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괜찮다고 말을 건네고 싶다. 혹은 아직 우울함의 애매한 경계에서 자신조차 잃을까 무서운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글을 읽어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위태로운 순간에도 글을 읽어주어 고맙다는 말, 이 한 마디만 전하고 싶다.

 

 

[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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