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물원' 좋아하세요? [음악]

글 입력 2020.03.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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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을 좋아한다. 그 동물원도 좋아하고, 1988년 데뷔한 포크 밴드 ‘동물원’을 특히 좋아한다.


나는 어디 가서 자신있게 취향을 고백하기엔 다소 쑥스러운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바로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의 비음이 섞인 조금은 촌스러운 느낌의 창법과, 간지러워 미칠 것만 같은 아름다운 한글 가사들을 가진 ‘옛날 노래’들의 감성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동물원’의 노래는 큰 편차 없이 좋아하는 편이다.


‘동물원'은 심금을 울린다거나, 감정을 치닫게 하면서 엄청난 감동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몸을 들썩이게 하지도 않고, 기존의 음악에 비해 크게 혁신적이라는 느낌도 없다. 그저 읊조린다. 엄청난 서정성으로 무장한 멋있는 말들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읊조린다. 덤덤하게.


‘동물원’의 노래는 맑다. 맑아서 용감하다. 감정에 휩싸이지도, 스스로를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만들지도 않고, 자신의 지금 그리고 옛날을 어떠한 과장도 없이 그대로 들여다 보고 노래한다. 사랑이 시작하는 대로, 사랑이 끝나가는 대로.


그리고 어느덧 그 모든 게 옛날 이야기가 되어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바로 그 순간을 순수하게 몰입하여 살아간다. 그러면 나는 그냥 듣는다. 어떤 감정에 빠지지 않고, 그들이 읊조리는 가사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마치 그들이 그러하듯이, 한발짝 뒤에서 나의 언젠가를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맑아서 용감한 ’동물원’의 노래 중,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 네 곡을 소개한다.


 

 

1. 널 사랑하겠어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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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하겠어 언제까지나

널 사랑하겠어 지금 이 순간처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겠어>는 ‘동물원’의 가장 잘 알려진 노래 중 하나다. ‘동물원’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널 사랑하겠어’라는 가사를 흥얼거리기만 하면 바로 ‘언제까지가’를 이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나에게 이 노래는 ‘동물원’의 노래 중 드물게 싫어하는 노래였디.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거지, 거기에다 ‘사랑하겠다’는 다분히 의지적인 어미를 붙인다는 것이 너무 사랑을 생색내는 것 같기도 하고 ‘오글거린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억울하게도 그 어떤 절절한 다른 노래의 가사들보다도 ‘널 사랑하겠어’라는 한 마디에 그만 벅차오르고야 말았다.


언제부턴가 사랑을 시작하기까지 더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미처 아름답게 정리하지 못한 옛 사랑들 때문인지, 새로운 사람과 겪을 수많은 아픔들에 대한 때이른 걱정들 때문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수많은 생각과 계산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이르든 늦든 언젠가 새로운 사랑은찾아오고야 마는데, 그때 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뒤돌아 서서 외면할 것인가, 온몸으로 맞을 것인가. 그리고 한껏 웅크렸던 몸을 펴서 앞으로 겪을 수많은 아픔, 행복, 사랑 같은 것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널 사랑하겠어’는 그에 대한 선전포고다. 이때까지의 모든 사랑들, 혹은 모든 상처들을 뒤로 하고 ‘너’와 함께 보낼 앞으로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전포고. 지금 당장의 ‘너’를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어쩌면 더 무거운 무게를 지닌 고백의 노래다.




2.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2001)




나 오늘 떠나는 그대를 이토록 사랑하지만

묻고 싶던 그 수많은 이야긴 가슴에 묻어 두고

나를 사랑했었다는 그 확인이나 어떤 다짐도 약속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이별은 그것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때부터 그 이후 어느 순간에나 아프다. 이따금 찾아오는 행복한 순간들에 기대어 스러져가는 사랑을 버텨보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이 끝나간다는 조짐이 보이는 순간,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노력하는 순간, 인정하고 이별의 직전에 선 순간, 헤어짐을 말하는 바로 그 순간이 모두 다르게 아프고, 그 이후에 또 오랫동안 날마다 새로운 종류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는 ‘나’가 여전히 상대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것만으로 이 사랑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이성적으로 내린 후의 바로 그 순간을 노래한다. 덤덤하게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아픔을 겪어야 했는가. 우리의 이별이 다가와야 함을 알지만, 나는 널 계속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좋은 이별을 위해서는 입밖으로 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기까지의 아픔과, 그 이후의 아픔이 밀려온다.




3. 잊혀지는 것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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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사랑이 끝난다. 한동안은 그것을 돌아볼 수도 없이 그저 이별의 아픔에 허우적거린다. 중단되어버린 사랑을 하나 하나 되돌아보는 것은 그 정신 없는 아픔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얼마나 바보같이 더욱 아름다울 내일을 꿈꿨는지 곱씹는다. 어째서 멀어져야만 했는지, 그 어느 것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언젠간 이해가 되길 바라며 차근차근 그간의 사랑의 기억들을 거슬러 밟아 간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어디에 소리라도 치고 싶은 이별 직후의 시간은 지났지만, 담담한 듯, 체념한 듯 사랑을 되돌아보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


그렇지만 <잊혀지는 것>은 그 쓰라린 순간을 노래한다. 이 가망없고 침체된 순간마저 끝없이 이어질 나의 사랑의 일환이라는 듯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다.


 

 

4. 너에게 감사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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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감사해 지난 기억만으로도

초라한 내 모습이 밝게 빛날 수 있었지

너에게 감사해 너의 미소만으로도

무뎌진 내 영혼이 날아오를 수 있었지



사랑이 끝났다. 그 사랑으로 인한 힘듦도 지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괴롭히던 기억은 어느덧 추억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으로 다른 수많은 일들로 또다시 아파해야만 한다. 이때 이따금 견디기 힘든 아픔을 준, 바로 그 아름다운 사랑이 다시 돌이켜 생각이 난다.


<너에게 감사해>는 지금 나에겐 네가 없고, 너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도 지났지만, 행복의 한복판에서 행복을 느끼던 그 행복했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고 어떠한 미련도 없이 노래를 하고 있다.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언젠가 절실히 살아있었음을 느끼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전해지지 않을 노래를 부른다. 한없이 사랑하던, 사랑받던 그 시절로 잠시 되돌아 가보자. 그리고 다시 오늘을 살아갈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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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에는 작은 술집들이 많다. ‘힙’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낡은 술집들과 새로 생긴 예쁜 술집들이 아직은 뚜렷한 구분 없이 뒤섞여 있다. 가게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 신청만 하면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주는 곳이 찾아보면 좀 있다. 굴튀김과 하이볼을 팔던 작은 바에서, 내가 유일하게 신청했던 곡은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였다. 촌스러운 노래를 틀었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을 만큼, 자그마하고 조용한 술집이었다.


사랑이 다해가던 시절, 막을 겨를도 없이 흘러내리는 사랑을 잠시 붙잡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겁이 나면서도 두 팔 벌려 사랑을 시작하던 날들, 행복함에 허우적거리던 날들,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날들. 그리고 앞으로 겪을 길고 긴 아픔의 시간들을 하나씩 짚어 가면서도, 그저 노래를 듣던 그 공간에 멈춰있던 순간. 그리고 지금 나에게 ‘동물원’의 노래는 바로 그 순간을 상기시킨다.


이제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제대로 마주하면서 앞으로의 기약 없는 날들을 살아갈 수 있다. 여러분들에게도 ‘동물원’의 노래가 기억 저편에 묻어둔 사랑들을 여러 순간들을 꺼내어 주길 바란다.

 


[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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